WEST ASIA / ARCHAEOLOGY, CRAFT & EXCHANGE · 쿠라이야·타부크,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로고 없는 도자기가 3,200년 전 시장을 건넜다, 쿠라이야의 흙은 어떻게 ‘브랜드’가 됐나
쿠라이야 가마의 도편과 요르단·팀나 표본을 광물·화학·형태로 맞추자, 수백 년 이어진 현지 기술이 표준화된 QPW 4와 역외 유통으로 연결됐다. 연구진은 이를 브랜드 형성이라 부르지만 문자 상표나 모든 유사 도편의 원산지를 찾은 것은 아니다.
이야기하는 사람한서진 · 진행 / 류도윤 · 취재·해설

쿠라이야의 이중실 가마에서 나온 검정·붉은 도편이 분석대에 놓이자, 깨진 가장자리 안의 광물과 반복 무늬가 서로 다른 세기를 이었다. 글자도 로고도 없는 그릇을 연구자들은 왜 3,200년 전의 ‘브랜드’라고 부를까.
PLOS ONE이 8월 19일 공개한 연구는 층위가 확인된 초기 Qurayyah Painted Ware, QPW 1–2 도편 36점과 뒤 시기의 표본을 형태 관찰·암석박편·중성자활성화분석으로 살폈다. 연구진은 쿠라이야와 요르단의 텔엘켈레이페·펠라, 팀나 등 외부 유적 자료를 비교해 흙과 제작법, 장식, 이동경로를 한 계보로 묶었다.
쿠라이야는 사우디아라비아 북서부 타부크의 사막 오아시스다. 후기 중기청동기부터 이곳 장인들은 현지 점토와 철이 많은 암석을 골라 두 빛깔 그릇을 구웠고, 가마는 하향식에서 상향식 구조로 바뀌었다. 비슷해 보이는 요르단 펠라의 도자기와도 광물·화학 조성이 달라 단순한 외부 모방으로 설명되지 않았다.
약 300~400년 뒤인 후기청동기 말 QPW 4에서는 변화가 더 선명해졌다. 같은 현지 원료와 기술 계보 위에 대량생산, 시각적 표준화, 한 생산중심, 역외 유통, 외부 모방이 겹쳤다. 연구진은 시각 정체성·원료 일관성·기술 연속성·중앙생산·수출·모방·의도적 상품생산·문화적 평판이라는 여덟 기준으로 이를 ‘brand-making’이라 해석했다.
그 말은 세계 최초 상표나 3,600년 된 로고를 뜻하지 않는다. QPW 1–2 장인이 처음부터 몇 세기 뒤의 브랜드를 계획했는지는 논문도 알 수 없다고 적었다. 외부 유적에서 쿠라이야의 화학군과 맞은 표본 수도 제한돼, 비슷한 무늬의 모든 도자기가 이 오아시스에서 수출됐다고 말할 수도 없다.
이 결과로 고고학자는 예전에 ‘미디안 도기’라 묶었던 물건을 모양만이 아니라 생산지·기술·시기별로 다시 나눌 기준을 얻는다. 쿠라이야는 변방의 소비지가 아니라 수백 년 동안 기술을 바꾸며 상품을 보낸 생산중심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반면 박물관과 연구팀은 오래된 분류표와 출처 추정을 새 비교자료에 맞춰 다시 검증해야 한다.
다음 질문은 더 많은 외부 유적의 도편이 쿠라이야 기준군과 실제로 맞는지, QPW 4의 모방품과 수출품이 어느 시장에서 갈리는지다. 분석자료가 넓어질수록 ‘브랜드’라는 현대어의 설명력도 함께 시험받는다. 그래서 지금 달라진 점은 눈에 띄는 무늬만으로 이어 붙였던 도자기 역사가 현지 흙·가마·수백 년의 기술 연속성과 제한된 수출 증거를 가진 생산 이야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오늘 무엇이 달라졌나
그래서 지금 달라진 점은 눈에 띄는 무늬만으로 이어 붙였던 도자기 역사가 현지 흙·가마·수백 년의 기술 연속성과 제한된 수출 증거를 가진 생산 이야기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확인한 출처
PLOS ONECreating a brand: Genesis, transformation and diffusion of Qurayyah Painted Ware ↗Crossref / PLOS ONEPLOS ONE article DOI record ↗News.at / APAKeramik aus der arabischen Wüste war schon in Bronzezeit eine Marke ↗취재 민재원 · 검증 서미로 · 문장 남해원 · 시각 구도연 · 최종 편집 최류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