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 NEWS · 2026년 8월 17일
가족을 갈라놓은 파일 곁에 방음실이 생겼다, 기록은 읽는 사람에게 돌아간다
뉴사우스웨일스가 ‘도둑맞은 세대’ 생존자와 후손을 위한 첫 전용 기록 열람실을 열었다. 통제의 문서는 친족을 찾는 실마리가 됐지만, 누락과 사생활의 경계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시드니 카메이갈 컨트리의 한 사무실 안에는 소리를 막은 벽, 작은 도서관, 생존자 증언 패널과 퍼스트 네이션스 예술작품이 놓였다. 이 방에서 가족을 떼어놓던 정부의 오래된 파일을 다시 펼친다면, 기록을 쓴 기관과 그 기록 속 사람 가운데 누구의 방식으로 읽어야 할까.
뉴사우스웨일스 원주민사무국은 7월 16일 ‘도둑맞은 세대’ 생존자와 후손이 정부 보유 가족 기록을 열람할 수 있는 첫 전용 공간 Ngalambay Room을 열었다. 생존자들과 함께 설계한 방에는 사생활을 위한 방음과 조명, 도서관이 마련됐고 직원이 기록의 맥락과 접근을 지원한다. ‘Ngalambay’는 Dhawaral어로 돌이나 물고기가 물에 만든 물결을 뜻한다.
이 자료는 평범한 가족앨범이 아니다. 1882년부터 1969년까지 뉴사우스웨일스의 원주민보호위원회와 복지위원회는 원주민의 이동·노동·거주와 아동 분리를 폭넓게 통제했고, 그 과정에서 편지·보고서·학교 기록·임금 장부와 아동시설 문서를 남겼다. 당시에 사람을 분류하고 감독하던 종이가 지금은 부모와 형제, 출생지와 이동 경로를 찾는 흔적이 됐다.
국가 기록에 대한 접근은 적어도 30년 된 미완의 약속이다. 1997년 호주 인권위원회의 ‘Bringing Them Home’ 조사는 관련 기록을 보존하고, 원주민 이용자가 덜 상처받는 절차와 문화적으로 적절한 지원을 갖추며, 장기적으로 공동체가 자기 역사 문서를 관리할 기회를 넓히라고 권고했다. 새 방은 그 권고를 종이 신청서가 아니라 공간의 구조로 옮긴 변화다.
그렇다고 문이 모든 파일에 무제한으로 열린 것은 아니다. 가족기록서비스는 주로 1940~1969년 자료를 다루며, 생존해 있는 친족의 동의와 신청자의 신원·직계 관계를 확인한다. 1940년 이전의 개인 기록은 매우 적고 1970년대 중반 이후 자료도 거의 없으며, 식민 행정의 편견이 적힌 문서는 가족의 완전한 역사가 될 수 없다.
생존자와 후손은 일반 정보공개 절차만으로는 얻기 어려운 맥락 지원과 사생활 보호를 같은 자리에서 받을 수 있다. 기록을 보관한 정부에는 접근을 넓히는 책임과 제3자의 개인정보를 지키는 책임이 함께 남고, 가족에게는 찾은 이름을 반드시 화해나 완전한 계보로 바꾸지 못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다음에 볼 것은 이용 건수뿐 아니라 대기시간, 공개되지 못한 자료의 범위, 공동체가 운영과 평가에 계속 참여하는지다.
Ngalambay Room은 오래된 문서를 새로 쓰지 않지만 누가 문서에 다가가고 어떤 지원 속에서 읽는지는 바꿨다. 통제의 파일을 보관기관의 서가에서 꺼내 가족의 질문 앞에 놓았다는 점에서, 이 작은 방은 기록 접근 자체를 하나의 공공정책으로 만들었다.
오늘 무엇이 달라졌나
그래서 지금 달라진 점은 뉴사우스웨일스의 가족 기록 접근이 일반 창구를 넘어 생존자와 후손이 설계에 참여한 방음·맥락 지원 공간을 갖췄고, 다음 평가는 파일 수가 아니라 실제 접근의 속도와 통제권을 보게 됐다는 것이다.
확인한 출처
Aboriginal Affairs NSWCommunity focused 'ngalambay' space created ↗NSW GovernmentAboriginal Family Records Service ↗Australian Human Rights CommissionBringing Them Home — Chapter 16: Family separation records ↗Associated PressAboriginal people seek information to reconnect with their heritage ↗취재 민재원 · 검증 서미로 · 문장 남해원 · 시각 구도연 · 최종 편집 최류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