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S ORIGINAL · 원문 작성 · ARCHIVE 224461507209

70년 묵은 세금 문제를 풀기 위해 '로또 복권기'로 100명의 시민을 뽑았다: 코네티컷 민주주의 실험이 남긴 4가지 반전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글자
날짜판으로
원문 수록 이미지
원문 AI 제작 표시 보존

1. 정치인이 포기한 70년의 난제, '시민 배심원단'이 해결할 수 있을까?

미국 코네티컷주에서 중산층 가정의 주택 소유자가 부담하는 재산세는 연간 2만 달러에서 3만 달러(한화 약 2,700만~4,000만 원)에 달합니다. 지자체가 교외 지역 학교와 경찰, 소방, 도로 등 필수 공공서비스 예산의 대부분을 주정부 지원보다는 지역 재산세에 의존하다 보니 발생한 문제입니다. 이 엄청난 조세 부담은 수십 년간 주민들의 삶을 압박했지만, 선출직 정치인들은 지난 70여 년 동안 손조차 대지 못했습니다. 증세나 지출 감축 중 어느 쪽을 선택하든 표를 잃기 십상인 '정치계의 제3의 금류(Third Rail, 건드리면 감전되는 역린)'였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표 계산에 몰두하며 70년 동안 손을 놓고 있는 동안, 코네티컷주에서는 민주주의의 틀을 뒤흔드는 파격적인 실험이 시작되었습니다. 정치인 대신 무작위로 추출된 100명의 평범한 시민을 한자리에 모아 주 전체의 세구조를 개편할 정책을 직접 만들게 하는 '세금을 위한 시민 배심원단(Jury duty for taxes)'을 구성한 것입니다. 참석자들에게는 4번의 주말 오프라인 토론과 올데이 Zoom 세션에 참여하는 대가로 1,200달러(약 160만 원)의 시민 수당이 지급되었습니다.

전문적인 정책 지식도 없고 정치적 성향도 제각각인 100명의 무작위 시민들이 과연 복잡한 조세 제도를 이해하고, 뿌리 깊은 당파적 분열을 넘어 70년 묵은 난제를 풀 해법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요?

2. 로또 추첨기로 선발된 시민들, 고대 아테네 민주주의를 재현하다

이 무작위 시민 대표단은 어떻게 선발되었을까요? 과정부터 철저하게 '정치'를 배제했습니다. 주 당국은 우선 주 전역에 20만 통의 초청장을 발송했고, 이 중 참가를 희망한 1,500명의 자원자를 확보했습니다. 이어 컴퓨터 알고리즘을 활용해 주택 소유자와 세입자 비율, 학령기 자녀 유무, 지역적 분포 등 주 인구통계 비율을 정확히 재현하는 후보군을 구성했습니다.

마지막 최종 100명의 선발 과정은 코네티컷주 복권국 본부에서 생중계로 진행되었습니다. 실제 '파워볼' 추첨에 쓰이는 로또 추첨기에 노란색 공들을 넣고 돌려 최종 참가자를 한 명씩 뽑아낸 것입니다.

1단계: 코네티컷 주민 대상 무작위 초청장 20만 통 발송

2단계: 참여 의사를 밝힌 시민 자원자 1,500명 모집

3단계: 인구통계학적 비율(주택 소유/세입자, 자녀 유무, 지역)을 재현하는 컴퓨터 알고리즘 필터링

4단계: 주 복권국 본부에서 파워볼 로또 추첨기로 최종 100명 추첨

이 파격적인 시도의 이론적 배경에는 예일대학교 정치학과 교수인 헬렌 랜드모어(Hélène Landemore)의 연구가 있습니다. 저서 《정치인 없는 정치(Politics Without Politicians)》로 알려진 그녀는 고대 아테네의 '추첨제(Sortition)'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주요 공직자를 선거가 아닌 추첨으로 뽑아 교대로 맡김으로써 특정 개인이 권력을 독점하지 못하게 했습니다.

랜드모어 교수는 현대 선거 제도로 선출된 정치인들이 고유한 심리적 편향을 공유한다고 분석합니다. 과도한 자신감, 권력에 대한 집착, 재선에 대한 불안감, 부패 가능성 등의 특성을 지닌 이들이 정치 무대를 독점한다는 것입니다. 반면 표를 잃을까 두려워 인기 없는 필수 개혁안을 피하는 프로 정치인들과 달리, 재선 부담이 없는 무작위 시민들이야말로 공익을 위한 '집단 지성'을 발휘할 수 있다는 설명입니다.

"권력은 위험한 것입니다. 너무 오래 쥐고 있으면 영혼을 파괴합니다." — 헬렌 랜드모어 (Yale 정치학 교수)

3. 난장판 소동에서 '유치원 규칙'과 벤앤제리스 아이스크림으로 피어난 우정

배심원단으로 선발된 100명의 시민들이 뉴헤이븐의 전기 노동조합 회관(Electric Hall)에 처음 모였을 때는 혼란 그 자체였습니다. 회의 절차와 발언 규칙을 정하는 과정에서조차 고성이 오갔고, 목소리 큰 참가자들이 회의를 주도하려 하자 다수의 조용한 참석자들은 깊은 좌절감을 느꼈습니다.

이 난장판을 수습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단순한 '유치원 규칙(Kindergarten rules)'이었습니다. "말하고 싶을 때는 손을 들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린다"는 기본 원칙을 도입하자, 내향적인 참석자들도 자유롭게 발언권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시민들은 전문가, 교수, 공무원들로부터 조세 체계와 지자체 재정에 대한 다채로운 강연을 들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시민들의 생생한 반응과 변화가 관찰되었습니다. 브루클린에서 이사 온 자스민 도슨(Jasmine Dawson)은 "오래된 똥차(hoopty/beater)까지 매년 재산세를 매기는 주정부 시스템에 충격을 받았다"며 현행 세제의 불합리성을 지적했습니다. 반면 자신을 "한 아내의 남편이자 여섯 자녀를 둔 평범한 중간 관리자"라고 소개한 밥 베일리(Bob Bailey)는 조세 정책의 매력에 빠져 스스로 "세율 정책 덕후(Tax policy nerd)"가 되었다며, 매일 관련 학술 기사를 찾아보는 열정을 보였습니다.

시민들은 코네티컷주가 169개의 독립된 시·군으로 파편화되어 있어, 각 지자체마다 급식, 버스, 특수교육 등을 제각각 운영하느라 막대한 재산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습니다. 더욱 극적인 변화는 인간관계에서 일어났습니다. 토론이 끝난 후 함께 벤앤제리스(Ben & Jerry's) 아이스크림을 나눠 먹고 점심 식사를 함께하며, 정치적 견해가 극단적으로 달랐던 이들이 깊은 친분을 쌓아갔습니다. 자스민 도슨은 카리브해 출신이라는 공통점을 계기로 연배가 높은 알린(Miss Arlene) 씨와 매번 점심을 함께하며 우정을 키웠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시민적 우정(Civic love)'이 현실에서 피어난 것입니다.

"화면 너머로, 당적을 넘어, 나이와 인종 차이로 서로 미워했을 사람들이 적절한 조건과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자 깊은 우정을 쌓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정치의 '사랑의 영역'입니다." — 헬렌 랜드모어 (Yale 정치학 교수)

4. 전문가도 놀란 10가지 실용적 해법, 그 안의 뜨거운 감자들

치열한 학습과 토론 끝에 시민 배심원단은 불필요한 수식어를 뺀 1~1.5페이지 분량의 명확하고 실용적인 정책 제안서 10건을 완성했습니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백만장자 세금 도입: 연 소득 100만 달러 이상의 고소득자에게 1%의 추가 세액 부과.

학교 및 공공 서비스의 지역 간 통합: 169개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운영하던 학교 급식, 버스 운행, 특수교육 등을 행정구역을 넘어 통합 운영함으로써 행정 낭비 절감.

고속도로 통행료(Tolls) 도입: 주외(州外) 통행 차량에 통행료를 거두어 주민들의 자동차 재산세를 감면하거나 전면 폐지.

하지만 이 과정이 아름다운 동화처럼 순탄했던 것만은 아닙니다. 현실 민주주의가 가진 진통과 절차적 불만도 고스란히 드러났습니다. 작업치료사인 스테이시 맥기버(Stacy MacGyver)는 "우리가 낸 아이디어 대부분이 과거 정치인들도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이라며 정치권의 무능에 깊은 환멸을 느꼈습니다. 그녀는 "매 세션이 끝날 때마다 완전히 맥이 빠진 채 집으로 돌아갔다. 정치인들에게 전달해 봤자 부결시키거나 돈을 다른 데 써버릴 텐데, 도대체 우리가 왜 여기 있는 걸까?"라며 민의가 왜곡될 가능성에 무력감을 호소했습니다.

특히 '백만장자 세금'을 둘러싼 충돌은 거셌습니다. 일부 보수 성향 참석자들은 "이 제안이 통과되면 뉴욕처럼 사회주의 국가가 될 것"이라거나 부유층이 주를 이탈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습니다. 더욱 큰 마찰은 최종 투표 직전에 일어났습니다. 시민들은 당초 4%의 백만장자 세율안에 대략적인 합의를 이뤘으나, 표결 직전 충분한 토론 없이 세율이 1%로 기습 수정된 채 안건에 올려졌기 때문입니다. 이에 다수 시민들이 절차적 미숙함과 조급한 수정에 불만을 표출하며 거세게 항의했지만, 결국 표결을 통해 1%안을 최종 권고안에 포함시켰습니다.

5. 가장 큰 장애물은 복잡한 세금이 아니라 '정치인의 계산'이었다

시민들이 내부 진통을 딛고 최종 권고안을 확정한 후, 주 의사당 앞 대규모 기자회견을 하루 앞둔 전날 밤 뜻밖의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기자회견이 전격 취소된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를 처음 제안하고 첫날 시민들에게 열변을 토했던 션 스캔런(Sean Scanlon) 코네티컷주 감사관(Comptroller)이 권고안 발표를 막아섰기 때문입니다. 중간선거를 불과 2주 앞둔 시점에서 권고안이 공개되면, 상대 당(공화당)에게 공격의 빌미("민주당이 세금을 올리려 한다")를 제공해 선거판의 '정치적 공풀이(Political football)'가 될 것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스캔런 감사관은 자당(민주당)의 선거 승리와 표 계산을 우선시하여 권고안 발표를 선거 이후로 미루자고 주장했습니다.

여기서 대의제 정치의 씁쓸한 단면과 시민 배심원단의 극명한 대조가 드러납니다.

시민 배심원단: 당파성을 넘어 주말을 반납하고 치열한 토론을 거쳐 타협안을 도출함. 선거 일정과 무관하게 민의를 즉시 주민들에게 공개하고 공론화하길 요구함.

선출직 정치인 (션 스캔런 감사관): 위험 회피와 당리당략에 몰두함. 중간선거를 2주 앞두고 상대 당에 공격거리를 주지 않기 위해 시민들의 합의물을 은폐·연기하려 시도함.

션 스캔런의 일방적인 발표 취소 소식에 분노한 랜드모어 교수와 시민 대표들은 비상 회의를 소집해 정치인의 당파적 계산에 강력히 항의했습니다. 결국 스캔런 감사관이 한발 물러서면서, 주 의사당 현장 행사 대신 온라인 Zoom을 통해 기자회견이 개최되었습니다.

기자회견 당일, 시민 대표인 도리스 고메즈(Doris Gomez)와 라이리 자노(Riley Jano)가 직접 나서 권고안을 담대하게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이 판을 깔았던 션 스캔런 감사관은 기자회견장에 끝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모든 노력을 다 쏟아붓고 모두의 의견을 모았는데, 마지막 순간에 일방적으로 바꾸려 한 것은 거의 무례한 처사입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한 일의 전체 전제를 훼손하는 느낌입니다." — 라이리 자노 (시민 대표)

6. 민주주의의 재창조, 새로운 정치는 구정치를 넘어설 수 있을까?

코네티컷의 시민 의회 실험은 우리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적절한 정보와 투명한 토론 환경, 그리고 서로의 의견을 경청할 규칙만 주어진다면, 무작위로 뽑힌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인보다 훨씬 더 합리적이고 당파성을 초월한 정책 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실험은 동시에 숙의 민주주의가 직면한 거대한 벽을 보여주었습니다. 아무리 시민들이 집단 지성을 발휘해 70년 묵은 난제의 해법을 찾아낸다 하더라도, 최종 입법권과 집행권을 독점하고 있는 기득권 정치인들이 자신들의 표 계산에 따라 이를 거부하거나 왜곡한다면 시민의 노력은 무력화될 수밖에 없습니다.

선거와 정당 정치에 의존하는 현대 대의민주주의는 극단적인 양극화와 정책적 마비 상태에 빠져 있습니다. 과연 제비뽑기로 시민을 뽑아 국정을 논했던 고대 아테네의 '추첨제 민주주의'는, 구정치의 높은 벽을 넘어 현대 민주주의를 치유할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정치의 주권을 정치인에게서 다시 시민에게로 가져오기 위한 이 위험하고도 아름다운 실험은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입니다.

Source: Erika Beras, Politicians are afraid to fix taxes. So 100 citizens tried. NPR Planet Money, Oct 28,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