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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학들은 왜 적자를 보면서도 스포츠 사업에 사활을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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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내 130여 개 대학이 85명의 장학금 선수를 보유한 대형 미식축구팀을 운영하고 있으며, 300개가 넘는 대학이 13명의 장학금 선수를 둔 남성 농구팀을 통해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의 연례 토너먼트인 '마치 매드니스(March Madness)' 진출을 다투고 있습니다. 이 두 핵심 종목이 창출하는 연간 수익만 해도 100억 달러(한화 약 13조 원 이상)가 넘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 거대한 자금이 흘러 들어가는 주체는 대중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아닌, 학생 교육과 학문 탐구를 본업으로 하는 고등교육 기관입니다. 미국 어떤 대학의 설립 인가서(Charter)에도 스포츠를 대학의 사명으로 명시한 곳은 없습니다.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수십억 달러의 거대 수익에도 불구하고, 체육 부서 운영비를 자체 수익으로 전액 충당할 수 있는 대학 스포츠 프로그램은 20여 개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대형 경기장 건설비의 모기지나 보안, 유지보수 등 간접 비용까지 모두 포함하는 완전원가회계(Full-cost accounting)를 적용하면, 대부분의 대학이 학술 및 연구 프로그램에 쓰여야 할 예산과 기금을 스포츠 부문의 적자를 메우는 데 전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본업과 동떨어진 상업 스포츠 사업에 왜 미국 대학들은 그토록 사활을 걸고 있는지, 그 역사적 배경과 경제적 역설을 5가지 핵심 주제로 파헤쳐 봅니다.

1. 빈 교실을 채우기 위한 수단에서 시작된 거대 산업

미국 대학과 스포츠의 결합은 19세기 후반으로 올라갑니다. 1862년 연방 정부 소유 토지를 매각해 설립된 '모릴 법(Morrill Act)' 기반의 주립 대학(캔자스 주립대학교가 최초)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저렴한 고등교육 공급이 급증했습니다. 이후 40여 년간 대학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는 '학생 과잉 공급' 상태에 직면하자, 대학들은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고 스포츠에 열광하는 청년들을 유치하여 빈 교실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스포츠 프로그램을 적극 도입했습니다.

초기 미식축구 경기(1869년 프린스턴과 러트거스의 경기로 시작)는 통제되지 않은 난투극에 가까웠으나, 1905년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이 심각한 부상 문제 해결을 강력히 요구하면서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이에 1906년 NCAA의 전신 기관이 설립되었고, 이들은 미식축구 금지 위협을 막기 위해 스크리미지 라인에 최소 7명의 선수를 배치하도록 하는 규칙을 도입했습니다. 이는 공격 선수가 팔짱을 끼고 수비 라인으로 돌진하는 위험한 플레이를 막기 위한 조치였으며,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습니다.

이 시기부터 대규모 재정 투자가 본격화되었습니다. 1892년 시카고 대학교는 스프링필드 대학에서 활약하던 아모스 알론조 스태그(Amos Alonzo Stagg)를 최초의 유급 감독으로 채용했고, 1903년 하버드 대학교는 31,000석 규모의 최초 대형 전용 경기장을 건설했습니다. 감독 연봉과 시설 모기지 대금을 갚기 위해 대학들은 본격적으로 스포츠 재정에 사활을 걸기 시작했습니다.

대학 당국은 스포츠팀의 승률과 교육의 질을 동일시하는 마케팅을 바탕으로 신입생을 유치해 왔습니다. 그러나 스포츠팀의 승리가 전체 대학 진학률을 유의미하거나 지속적으로 늘린다는 경제학적 증거는 부족합니다. 이러한 승률 마케팅의 실제 효과는 전체 대학 진학 인구를 늘리기보다 대학 간에 학생들을 단순히 '재배치(Rearrange)'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들은 여전히 스포츠 승리를 대표적인 학생 유치 명분으로 내세우는 착시와 역설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2. 카르텔의 해체가 가져온 1,500% 중계권 수익의 대폭발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대학 스포츠는 폭발적인 성장기를 맞이했습니다. 제대군인 지원법(G.I. Bill)으로 대학 진학 인구가 늘어나며 충성스러운 졸업생(Alumni) 층이 두터워졌고, 1950년대 후반부터 60년대 초반에 이르는 베이비붐 세대의 청소년 인구 급증은 스포츠 관람 수요를 끌어올렸습니다.

이와 함께 등장한 결정적 변수는 TV 방송 기술이었습니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는 1940년에 이미 홈 경기를 중계하기 시작하여 1950년에는 15만 달러라는 거금을 중계권료로 벌어들였습니다. 미국 가구의 TV 보급률은 1950년 9%에서 1960년 90%로 급증했고, 이미 치러지고 있는 경기장에 카메라만 갖다 대면 되는 미식축구는 방송사에 매우 저렴한 고효율 콘텐츠였습니다.

위기감을 느낀 NCAA는 1951년 TV 중계가 경기장 입장수입을 감축시킬 것을 우려해 방송을 전면 금지하려 했으나, 펜실베이니아대의 반발과 독자 중계 시도로 난관에 부딪히자 1952년 독점적 카르텔인 'TV 플랜(Television Plan)'을 출범시켰습니다. 토요일 오후 단 한 경기(또는 지역별 한 경기)만 중계하고 각 팀의 방송 출연 횟수를 제한하여 수익을 나눈 이 시스템은 30년 이상 유지되었습니다.

하지만 1984년, 오클라호마 대학교가 제기한 소송에서 미국 연방법원(대법원)은 NCAA의 TV 플랜이 셔먼 반독점법(Sherman Antitrust Act)을 위반했다고 판결했습니다. 독점 카르텔이 해체되면서 초기에 방송 광고 단가는 3분의 2나 폭락했습니다.

그러나 시장 개방은 반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역 컨퍼런스들과 ESPN, Fox Sports 같은 케이블 스포츠 네트워크가 등장하면서 팬들이 지역 라이벌전에 열광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네트워크들이 지역별 중계권을 공격적으로 매입했습니다. 여기에 디지털 비디오 녹화기(DVR)의 보급으로 일반 프라임타임 녹화 시청 시 광고 건너뛰기가 일반화된 반면, 생중계 스포츠는 광고 스킵이 불가능해지면서 스포츠 방송 광고 가치가 일반 프로그램의 최대 3배까지 치솟았습니다.

"NCAA의 미식축구 방송 카르텔을 해체한 대법원 판결 이후, 대학 스포츠 방송권 수익은 놀랍게도 1,500%나 증가했습니다."

농구 분야에서도 NCAA의 독점적 권력 행사는 이어졌습니다. 1938년 뉴욕 스포츠기자 협회가 시작한 National Invitation Tournament(NIT)가 최고 권위의 대학 농구 대회였으나, NCAA는 1939년 경쟁 토너먼트를 창설한 뒤 1970년 NCAA 토너먼트 초대를 받은 팀의 NIT 참가를 전면 금지하는 보복 조치를 취했습니다. 장기간의 반독점 소송 끝에 2005년 NCAA는 NIT를 최종 인수하여 패자부활전 성격으로 축소시켰습니다. 또한 1982년 방송인이 붙인 '마치 매드니스(March Madness)'라는 명칭을 상표 등록하고 독점권을 행사함으로써, 현재 이 토너먼트 하나로만 연간 10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려 NCAA 조직 전체 운영비를 충당하고 있습니다.

3. '무급 선수' 카르텔에도 불구하고 수백만 달러가 증발하는 이유

프로 스포츠 리그(NFL, NBA)와 달리 대학 스포츠는 선수들에게 인건비를 주지 않는 독특한 저비용 인력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NCAA는 초기에 선수에 대한 보상을 '광기(Sanity)'로 규정하며 전면 금지(Sanity Code)했으나, 1951년부터 수업료, 숙식비, 교재비, 건강보험 등을 지원하는 장학금(Grants-in-aid) 제도를 정착시켰습니다. 1973년에는 팀별 장학금 수 한도를 제한(미식축구 105개 -> 1978년 95개 -> 1992년 85개)하고 1학년의 대표팀 출전을 허용하여 인건비를 엄격히 통제했습니다.

프로 리그들과의 동맹은 대학의 구매자 독점(Monopsony) 체제를 완벽히 구축했습니다. NBA는 2007년부터 고교 졸업 후 최소 1년이 지나야 드래프트에 참가할 수 있도록 했고, NFL은 고교 졸업 후 3년의 대기 기간을 요구합니다. 18세 청년이 아프가니스탄 전쟁터에 참전하거나, MLB나 NHL 프로리그에 입단하고, NASCAR에서 시속 200마일로 달리는 것은 허용되면서도 오직 NFL과 NBA 진출만 막히는 이 기형적 구조는, 대학에 저렴한 비용의 인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독점적 카르텔 역할을 합니다.

스포츠 경제학자 앨런 샌더슨과 존 지그프리드는 흥미로운 비교를 제시합니다. 프로 스포츠팀(NFL, NBA)은 선수 노조와의 단체 협상 및 자유계약(FA) 제도로 막대한 선수 임금을 지불하고, 연고지 이전 위협을 통해 지자체 세금으로 전용 경기장을 지어내며 흑자를 냅니다. 반면 대학은 선수 임금이 장학금으로 캡(Cap) 씌워져 있고 선수 노조도 없으며 캠퍼스를 이전할 수도 없는데, 왜 대다수 대학 체육 부서는 막대한 적자를 낼까요? 그 원인은 3가지 구조적 요인에 있습니다.

과도한 시설 유지비 경쟁: 선수 임금이 통제되면서 생긴 여유 자금이 강의실보다 훨씬 화려한 최고급 훈련 시설과 경기장 건설 및 유지보수 비용으로 전파되어 소모됩니다.

스타 감독 연봉의 폭등: 선수에게 돈을 줄 수 없으니 우수 선수를 스카우트할 스타 감독에게 자금이 쏠립니다. 2017년 기준 77명의 대학 미식축구 감독 연봉이 100만 달러를 넘었으며, 앨라배마 대학의 닉 세이번(Nick Saban) 감독은 1,110만 달러를 수령했습니다.

타이틀 9(Title IX) 성평등 법안 준수 의무: 1972년 제정된 타이틀 9 법안에 따라 대학 체육 부서는 남성 농구나 미식축구처럼 수익을 내는 종목 외에도,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자원을 소모하는 다양한 여성 및 기타 스포츠팀을 의무적으로 함께 운영해야 합니다.

"남성 농구나 미식축구를 운영하는 대학의 체육 부서는 프로팀(NFL 등)과 달리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자원을 소모하는 다양한 스포츠팀들을 의무적으로 운영해야 합니다."

4. 재정적 적자를 넘어선 무형의 이념과 정치적 동맹

장부상의 재정적 적자에도 불구하고 대학 당국이 스포츠 사업을 전력으로 유지하는 배경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이득과 정치경제적 동맹이 존재합니다.

일반 학생들은 상업화된 스포츠팀의 승리를 통해 대리 만족을 느끼고, 타이틀 9으로 유지되는 비수익 종목에 직접 참가하는 혜택을 누립니다. 졸업생(Alumni)들은 미식축구나 농구를 매개로 모교와의 유대감을 지속하며 이는 성금과 기부금 수납으로 연결됩니다. 대학이 위치한 지역 사회 역시 경기 당일 특수를 누리며, 볼 게임(Bowl game)이나 토너먼트 유치는 지역 상권에 거대한 경제적 파급 효과를 가져옵니다.

무엇보다 주립 대학 예산권을 쥐고 있는 주 의원(State legislators)들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는 데 강력한 스포츠팀만큼 효과적인 수단이 없습니다. 주 의원들에게 모교나 주 대표 팀의 승리는 정치적 자산이 되며, 대학 총장들은 스포츠를 통해 예산 심의 과정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합니다.

여기에 NCAA의 거대한 관료 조직, 대학 스포츠를 무료 선수 훈련소로 활용하는 프로 리그(NFL, NBA), 중계권을 통해 프로듀서 여유(Producer's surplus)를 얻는 방송 네트워크, 브랜드 로고 의류 판매로 이윤을 남기는 스포츠 용품 업체들이 결탁하여, 대학 스포츠라는 공룡을 멈출 수 없게 만드는 견고한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5. 균열의 시작: 법원 판결, 코드커팅, 그리고 대안적 선택

오랫동안 견고했던 이 상업화 모델도 지속 불가능성에 직면하고 있으며, 3가지 거대한 미래 위험 요인이 균열을 만들고 있습니다.

첫째, 사법부의 법적 판결 위험입니다. NCAA의 '학생 선수' 보수 한도 설정과 프로 입단 연령 제한에 대한 반독점 소송이 법원에서 진행 중입니다. 법원이 선수 보수 캡을 위법으로 판결할 경우 선수 확보를 위한 입찰 경쟁이 벌어져 운영 비용이 폭증할 것입니다.

둘째, 코드커팅(Cord-cutting)과 중계권 가치 하락입니다. 케이블 TV 탈퇴 현상과 스트리밍 서비스로의 전환이 가속화되면서 그동안 독점적 중계권을 높게 사주던 케이블 방송사들의 재정 능력이 약화되어 중계권 수입이 감소할 수 있습니다.

셋째, NCAA 카르텔의 분열 가능성입니다. 수익성이 높은 5개 파워 컨퍼런스가 NCAA 틀을 벗어나 선수 보상 규정을 완화한 독립적 프로 리그 형태로 분리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이 경우 남겨진 대학들은 수익을 맞추지 못해 체육 부서의 예산과 규모를 강제로 축소해야만 합니다.

대학 교육과 상업 스포츠의 결합이 절대 불가피한 것은 아닙니다. 보스턴 대학교(Boston University), 뉴욕 대학교(NYU), 조지 워싱턴 대학교(George Washington), 칼텍(Caltech), 그리고 UC 계열 일부 대학(산타바바라, 어바인, 리버사이드)은 미식축구팀 없이도 세계적인 명성과 학술 성과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MIT, 시카고 대학교, 존스 홉킨스 대학교, 워싱턴 대학교, 에모리, 카네기 멜런 등은 장학금을 지급하지 않는 비장학금 레벨(Division III)에서 스포츠를 순수한 아마추어리즘으로 운영합니다. 1960년 NCAA가 잇따른 부상 문제를 이유로 복싱 종목을 전면 폐지했을 때도 대학 교육 체계는 아무런 타격을 입지 않았습니다.

결론: 상업 스포츠의 환상 너머, 대학의 참된 역할을 묻다

미국 대학과 상업 스포츠의 거대한 결합은 고등교육 기관에 본질적으로 부여된 영원한 운명이 아닙니다. 이는 19세기 후반의 학생 유치 경쟁, 제2차 세계대전 이후의 인구통계학적 변화, 방송 기술의 발달, 그리고 저렴한 무급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구축된 카르텔 구조가 만들어낸 역사적 우연의 산물일 뿐입니다.

겉으로는 화려한 중계권 수입과 열광적인 경기장의 함성이 대학의 위상을 높여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완전원가회계의 차가운 눈으로 바라본 진실은 다릅니다. 경기장 유지비와 스타 감독의 몸값을 대기 위해 정작 학문 탐구와 학생 교육에 쓰여야 할 귀중한 예산이 스포츠 적자를 메우는 데 낭비되고 있습니다.

대학 본연의 목적인 학문과 교육보다 스포츠의 흥행이 우선시되는 현실에서, 과연 고등교육 기관이 가져야 할 참된 역할은 무엇인가? 이제 대학 당국과 우리 사회는 상업 스포츠라는 거대한 환상 너머의 구조적 진실을 냉철하게 성찰해야 할 때입니다.

Source: Allen Sanderson and John Siegfried, Why American Universities Sponsor Commercial Sports, Milken Institute Review, July 31,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