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S ORIGINAL · 원문 작성 · ARCHIVE 224386677544
자본의 투쟁인가, 습관의 변이인가? 마르크스와 베블런이 바라본 경제 진화의 '진짜' 얼굴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노해인 · 진행 / 차우진 · 분석 / 문하람 · 반론

우리는 흔히 자본이라는 거대한 톱니바퀴 속에서 개인의 의지가 소멸되었다고 믿곤 합니다. "세상은 결국 돈의 논리로 움직이는 것 아니냐"는 냉소적인 질문이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죠. 하지만 사회경제학의 두 거인, 카를 마르크스와 소스타인 베블런은 그 톱니바퀴를 돌리는 '보이지 않는 손'이 다름 아닌 우리의 '사회적 관계'와 '뿌리 깊은 습관'이라고 말합니다. 아브람 L. 해리스의 고전적 통찰을 통해, 경제적 진화의 이면에 숨겨진 인간 본성의 지도를 다시 그려봅니다.
1. 마르크스는 '기술' 덕후가 아니었다 (사회적 관계의 우선성)
많은 이들이 마르크스를 기술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믿는 '기술 결정론자'로 오해하곤 합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에게 기술(도구) 그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그 도구를 둘러싼 '생산 관계'와 '사회적 조건'이었습니다.
기술은 단지 인간이 노동을 통해 자연에서 만족을 얻기 위한 물리적 기초이자 한계 조건을 설정할 뿐입니다. 정작 사회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은 '사회적 잉여'를 누가, 어떤 방식으로 통제하고 '펌프질(pumping out)' 하느냐의 문제입니다. 도구는 그 자체로 자본이 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소유 구조와 사회적 관계 속에서 비로소 자본으로 변모합니다.
"노동 과정은... 죽만 보고는 누가 귀리를 재배했는지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 자체만으로는 어떤 사회적 조건에서 진행되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Marx, Capital I)
인사이트: 오늘날의 플랫폼 경제를 떠올려 보십시오. 스마트폰이라는 기술 자체가 아니라, 그 플랫폼의 소유 구조와 데이터 권력을 누가 통제하느냐가 우리 사회의 계급 구조를 결정짓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2. 베블런의 '진화'는 목적지도, 계획도 없다 (제도적 변이론)
마르크스의 경제 진화가 사회주의라는 필연적 결말을 향해 나아가는 변증법적 과정이라면, 베블런의 관점은 철저히 다윈주의적입니다. 그는 이를 '제도적 변이론(Institutional Mutationism)'이라 불렀습니다.
베블런에게 경제적 변화는 어떤 원대한 설계나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한 여정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연한 변이와 선택, 그리고 생존의 과정일 뿐입니다. 새로운 상황이 닥치면 인간의 습관은 그에 맞춰 변이하지만, 이 변화가 반드시 삶의 질을 높이는 '진보'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경제는 단순히 환경에 적응하며 '변화'할 뿐입니다.
인사이트: 우리가 믿어 의심치 않는 현대의 경제 시스템이 실은 인류의 지성적 진보의 결과물이 아니라,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우연히 살아남은 습관들의 덩어리일 수 있다는 점은 매우 서늘한 통찰을 줍니다.
3. 성공은 개인의 노력이 아닌 '공동체의 유산'이다 (무형의 설비)
베블런은 현대 경제학의 근간을 뒤흔드는 주장을 펼칩니다. 그는 개인이나 기업의 성공이 오롯이 그들의 창의성이나 노력 때문이라는 신화를 부정합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핵심 개념이 바로 '무형의 설비(Intangible Equipment)'입니다.
산업적 효율성은 특정 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인류 공동체가 수천 년간 쌓아온 지식과 기술의 유산에서 나옵니다. 마르크스가 노동을 모든 가치의 원천으로 본 것과 달리, 베블런은 노동자나 자본가 모두 이 '공동체의 무형 자산'에 기대어 생산을 수행한다고 보았습니다.
금전적 직업 (Pecuniary): 소유권과 경영을 통해 이 공동체의 유산을 '독점'하고 이익을 챙기는 데 몰두합니다.
산업적 직업 (Industrial): 실제 제작 현장에서 기술적 효율성을 구현하지만, 정작 그 결실인 '사회적 잉여'에서는 소외되기 쉽습니다.
인사이트: 현대의 지적 재산권이나 데이터 독점 문제는 결국 "우리 공동체의 지식 유산을 누가 독점하여 그 usufruct(사용 수익권)를 누릴 것인가"라는 베블런적 투쟁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4. 우리는 '평화로운 농부'와 '약탈적인 포식자'의 혼혈이다
우리는 왜 때때로 창의적인 제작에 몰두하면서도, 동시에 남을 이기고 과시하는 데 집착할까요? 베블런은 이를 '인종적 혼합(Hybridization)'으로 설명합니다.
그는 서구인의 내면에 평화로운 농경 문화를 가졌던 '선주민(Savage state)'의 본성과, 북유럽에서 침입해온 역동적이고 잔인한 '돌이초-블론드(Dolicho-blond)' 인종의 약탈적 본성이 섞여 있다고 보았습니다. 과거의 노골적인 piracy(해적질)와 marauding(약탈)은 현대에 이르러 '사기'와 '경쟁적 과시'라는 세련된 형태의 pecuniary(금전적) 습관으로 변모했습니다.
"서구 민족의 선천적인 구성은 이러하며, 서구 문명의 역사 또한 그러했다." (Veblen, Imperial Germany)
인사이트: 우리 내면의 '성취욕(제작 본능)'과 '소유욕(포식 본능)'은 단순한 개인 성향이 아닙니다. 그것은 인종적 역사가 남긴 유산이며, 사회 제도가 어떤 본능을 자극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흐르게 됩니다.
5. 합리적 선택? 아니, 우리는 '습관의 노예'일 뿐
마르크스는 노동자들이 자신의 계급적 이익을 깨닫고 합리적으로 혁명에 나설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베블런은 인간이 결코 그렇게 논리적이지 않다고 반박하며 마르크스의 '노동가치설' 자체를 비판합니다.
베블런에 따르면, 노동은 신성한 가치의 원천이라기보다 사회적 기술 수준에 종속된 활동일 뿐입니다. 또한, 노동자들이 항상 혁명적이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고용주에게 종속된 채 오랜 시간 '복종과 서열의 습관'을 훈련받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경제적 이익에 반하는 정치적 선택을 합니다. 그것은 이성이 아니라 뿌리 깊은 애국심, 관습적인 신념, 그리고 '훈련된 종속의 습관'이 지배하기 때문입니다.
인사이트: "왜 가난한 이들이 자신들을 더 힘들게 하는 정책에 투표하는가?"라는 현대 정치의 미스터리에 대해, 베블런은 그것이 계산의 오류가 아니라 '습관의 관성' 때문이라는 명쾌하고도 뼈아픈 답을 제시합니다.
결론: 변화는 진보를 보장하지 않는다
경제의 진화는 거대한 자본의 움직임이나 화려한 기술의 발전만으로 설명될 수 없습니다. 마르크스가 지적했듯 우리가 맺고 있는 '사회적 관계'가 무엇인지, 그리고 베블런이 강조했듯 우리가 매일 반복하는 '사고 습관'이 어떤 변이를 일으키고 있는지가 본질입니다.
우리는 한 가지 엄중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람 L. 해리스가 베블런을 통해 경고했듯, "변화가 반드시 더 나은 방향(진보)으로의 흐름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우리의 습관이 구태의연한 약탈과 과시에 머물러 있다면,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회는 퇴행할 수 있습니다.
미래의 경제 구조는 외부에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오늘 어떤 제도를 선택하고 어떤 사고의 습관을 기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오늘 당신이 반복하는 업무와 소비 습관은, 우리 공동체의 미래에 어떤 새로운 '변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까? 그것은 진보입니까, 아니면 단순한 적응입니까?"
Source: Abram L. Harris, Economic Evolution: Dialectical and Darwinian, Journal of Political Economy , Feb., 1934, Vol. 42, No. 1 (Feb., 1934), pp. 34-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