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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70만 년 역사에서 찾은 노동에 관한 5가지 반전의 진실: 우리는 왜 여전히 일에 시달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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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팬데믹 이후 우두커니 멈춰 서서 묻게 되는 질문

2020년 봄 이후, 우리의 일상은 커다란 전환점을 맞이했습니다. 재택근무와 원격 서비스의 급증, 그리고 끝없이 이어지는 줌(Zoom) 회의와 모니터 너머의 끊임없는 업무 알림 속에서 현대 오피스 노동자들은 깊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매일 화면 앞을 지키며 문득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지 않나요? "기술은 이렇게 눈부시게 발전했는데, 우리는 왜 과거보다 더 쉬지 못하고 일에 시달리는 걸까? 원격 근무라는 변화는 정말 노동의 혁신일까, 아니면 또 다른 형태의 굴레일까?"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얀 루카센(Jan Lucassen)은 그의 저서 《노동의 역사(The Story of Work: A New History of Humankind)》를 통해 이 지독한 질문에 대한 답을 인류 70만 년의 거대한 궤적 속에서 찾고자 합니다. 기술 사학자 에드워드 테너(Edward Tenner)의 서평에서도 주목했듯, 루카센은 인류가 거주해 온 가정, 부족, 도시, 국가 단위의 노동 방식을 통섭하며 우리가 '노동'에 대해 가진 오랜 통념을 뒤흔듭니다.

인류 70만 년 역사의 거대한 거울에 지금의 우리 모습을 비추어 보았을 때 발견하게 되는, 가장 놀랍고도 직관에 반하는 5가지 통찰을 함께 짚어보겠습니다.

2. 인류의 노동 역사가 말해주는 5가지 놀라운 통찰

Point 1. 원시 수렵채집인은 놀고먹지 않았지만, 현대인만큼만 일했다

흔히 고대 수렵채집 사회를 생각할 때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이어져 온 '아카디아적 황금기' 같은 유토피아적 환상을 품곤 합니다. 아무런 근심 없이 자연 속에서 쉬엄쉬엄 열매를 따 먹는 삶 말입니다.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라스코 동굴 벽화 앞에서 다음 그림으로 무엇을 그릴지 한가롭게 토론만 했던 것이 아니라, 맹수의 위협, 질병, 폭력에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었기에 그들의 삶은 결코 쉽거나 한가롭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사적 데이터가 보여주는 반전의 긍정적 측면도 존재합니다. 수렵채집인들의 사회는 상대적으로 평등했으며, 특히 아이를 양육할 때 '상호 조력(Mutual Aid)'의 가치를 철저히 지켰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그들의 일일 노동 시간입니다.

남성의 일일 노동 시간: 약 8시간

여성의 일일 노동 시간: 약 10시간

오늘날 현대 노동 운동의 결실로 평가받는 '주 40시간, 하루 8시간' 노동 체제가 실상은 70만 년 전 수렵채집인들이 매일 쏟아붓던 일일 노동 시간의 기준선으로 돌아간 것에 불과하다는 점은 참으로 묘한 시사점을 던져줍니다. 인류는 눈부신 문명을 일구었지만, 정작 하루 중 일에 바치는 시간의 비중 자체는 수렵채집인 시절의 테두리를 크게 벗어나지 못한 셈입니다.

Point 2. 노동의 역사는 '진보'의 직선이 아니라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변주'다

19세기 사회학자와 경제학자들은 노동의 역사를 거창한 하나의 선형적 서사로 설명하려 했습니다. 인구 증가가 자원을 초과하여 노동자가 점차 비참해진다는 토머스 맬서스(Thomas Malthus)의 비관론이나, 강제 노동에서 자유로운 시장 사회로 발전한다는 헨리 메인(Sir Henry Maine) 경의 "신분에서 계약으로(from status to contract)"라는 발전론이 대표적입니다.

하지만 얀 루카센은 이러한 거대 서사나 직선적 진보론을 거부합니다. 그가 보기에 노동의 역사는 예측 불가능한 변주의 연속이었습니다. 이미 기원전 2000년에서 1000년 사이 메소포타미아 문명 시대부터 오늘날과 같은 고용주, 피고용자, 자영업자, 그리고 강제 노동의 형태가 교차하며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는 국왕(신성한 군주)을 위해 모든 이가 일하는 '조세-재분배 사회(Tributary-redistributive society)' 형태였습니다. (훗날 비엔나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오토 노이라트는 이러한 이집트식 체제가 산업 사회를 운영하는 최선의 방식일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사라진 줄 알았던 강제 노동 체제는 정치적·기술적 변화에 따라 재발현되곤 합니다. 20세기 나치와 소련의 수용소 노동, 그리고 미국 남북전쟁 이후 시행된 죄수 대여제(Convict leasing)처럼 말입니다. 노동의 역사는 일직선으로 진보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정치적·기술적 조건에 따라 과거의 형태를 재구성하며 되풀이됩니다.

Point 3. 기술이 발전해도 '주 15시간 노동'이 오지 않은 이유

1930년,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유명한 에세이 《우리 손주들을 위한 경제적 가능성》에서 2030년이 되면 기술 발전 덕분에 인류가 주 15시간만 일하게 될 것이라고 장담했습니다. 그러나 2030년을 코앞에 둔 지금, 왜 그 예언은 틀렸을까요?

정치학자 서바스찬 데 그라치아(Sebastian de Grazia)는 저서 《시간, 노동, 그리고 여가(Of Time, Work and Leisure)》에서 자동화의 역설을 지적했습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고대 철학자들은 여가를 지주 계급만의 전유물로 여겼으나, 토머스 제퍼슨이 "호메로스를 읽을 수 있는 농부를 가진 나라는 우리뿐"이라고 칭송했듯 고전적 여가는 원래 경제적 목적 없이 학문과 예술을 향유하는 '교양 있는 삶'을 의미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들은 자동화에도 불구하고 긴 통근 시간과 '소비 리추얼(Rituals of consumption)'에 갇혀 목적 없는 순수한 여가를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더해 얀 루카센은 현대 네트워크 사회가 새로운 노동 수요를 끊임없이 창출하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새롭게 증식하는 직종들: 컴퓨터 보안 전문가, 기술 지원 인력, 그리고 조직이 거대해짐에 따라 늘어나는 "감사관을 감사하는 감사관(auditors of auditors of auditors)" 같은 수직적 감시 계층.

슬림화된 조직의 착시: 네덜란드의 기술 기업 필립스(Philips)는 지난 반세기 동안 외주화를 통해 직원 수를 50만 명에서 3만 7천 명으로 대폭 줄였습니다. 그러나 이는 관료제와 업무를 외부로 하청 주었을 뿐, 사회 전체의 노동량이 줄어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Point 4. 우리는 물질적 생계뿐만 아니라 '자아존중감'을 위해 일한다

자동화로 기존 일자리가 사라져도 새로운 일자리가 계속 생겨나는 두 번째 이유는 인간 고유의 내재적 욕구인 '일하고자 하는 본능적 필요(essential need to work)' 때문입니다. 인간에게 노동은 단지 빵을 구하기 위한 물질적 수단에 그치지 않습니다. 일을 통해 얻는 '자아존중감(Self-esteem)'과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이 삶의 핵심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사회학자 베스 A. 루빈(Beth A. Rubin)의 연구는 이 점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약 10년 전 밀레니얼 세대 노동자들을 조사한 결과, 이들은 이전 세대보다 일자리의 불안정성이 높고 승진 기회가 적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일에 대해 뜻밖에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노동은 인간이 사회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인격적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최근 뉴욕타임스(NYT)가 모니터 너머로만 소통하는 20대 청년 노동자들을 취재하며 포착했듯, 실재하는 동료 관계가 사라진 채 화면으로만 일할 때 노동자들은 "화면을 통한 이 모든 대화 속에서 반박할 수 없는 지독한 외로움"을 고백하곤 합니다. 노동이 자아 정체성과 타인과의 연결감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파편화될 때, 인간은 깊은 존재론적 불안에 빠지게 됩니다.

Point 5. 원격 근무와 줌(Zoom)의 비극: 혁신인가, 과거 가내 수공업으로의 퇴보인가?

팬데믹이 가져온 원격 근무는 과연 노동의 해방일까요? 루카센의 빅히스토리 관점에서 보면 우려스러운 대목이 많습니다. 수천 년의 역사 동안 인간 노동을 떠받쳐 온 핵심 축은 동료 간의 '협력'과 '신뢰'였습니다. 그러나 화면을 통한 원격 환경은 이 오프라인 기반의 신뢰를 위협합니다.

하버드대의 정책 분석가 아서 C. 브룩스(Arthur C. Brooks)는 아틀란틱(The Atlantic)지에 게재된 줌 피로감(Zoom fatigue) 연구들을 분석하며, 화면에만 집중하는 환경이 물리적 공간에 함께 있을 때 발현되는 새로운 아이디어의 창출을 방해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브룩스는 다음과 같은 강력한 통찰을 남겼습니다.

"비디오 기반 기술은 삶의 가장 실재적인 부분인 인간 대면 상호작용을 가짜처럼 느끼게 만든다." - 아서 C. 브룩스 (Arthur C. Brooks)

더 나아가 루카센은 아마존 메카니컬 터크(Amazon Mechanical Turk)와 같은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 최저가 입찰자에게 원격으로 소일거리를 외주 주는 현상의 뼈아픈 아이러니를 꼬집습니다. 최첨단 IT 애플리케이션 플랫폼의 모양새를 취하고 있지만, 그 실상은 산업혁명 이전 개별 노동자들이 파편화되어 비참하게 착취당했던 '가내 수공업(Cottage labor)'의 나쁜 옛 시절로 되돌아간 것과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3. 미래의 노동을 향한 던짐

인류의 70만 년 노동 역사를 다룬 빅히스토리(Big History)는 우리에게 명확한 미래의 이정표나 정답을 제시해 주지는 않습니다. 사회학자 쇼샤나 주보프(Shoshana Zuboff)가 저서 《감시 자본주의 시대》에서 실증했듯, 지금까지 오피스 노동 현장에 도입된 대부분의 기술 혁신은 노동자의 자유를 확장하기보다 감시를 강화하고 조직 내 불평등을 가중시키는 방향으로 작동해 온 역사적 한계가 존재합니다.

그러나 역사가 주는 진짜 교훈은 다른 곳에 있습니다. 비록 노동의 형태는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형되었지만, 위기 때마다 인류를 구원하고 진보시킨 것은 '공동의 목표를 향한 인간 고유의 협력과 참여의 힘'이었습니다. 오늘날처럼 파편화되고 불안정한(precarious) 노동 환경 속에서도, 대면적 신뢰와 공동체적 협력을 회복하는 새로운 조직 형태를 고민하는 것이야말로 미래 노동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매일 아침 차가운 모니터를 켜고 업무를 시작하는 당신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지며 글을 맺습니다.

"당신이 매일 화면 앞에서 수행하는 노동은 인류 70만 년의 거대한 역사 중 어떤 페이지를 쓰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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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Edward Tenner, Why We Work, A review of The Story of Work: A New History of Humankind, Milken Institute Review, Sep 21, 2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