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S ORIGINAL · 원문 작성 · ARCHIVE 224460347511
명문대를 나오지 않아도 괜찮은 이유: 당신의 첫 직장을 결정짓는 뜻밖의 요소, '운(Luck)'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1. 학벌과 성공 방정식에 대한 질문 던지기
"좋은 대학에 가야만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 "부모의 재력과 인맥이 결국 자녀의 첫 직장과 계층을 결정짓는 것은 아닐까?"
대한민국은 물론 전 세계 취업 준비생과 학부모라면 누구나 한 번쯤 던져보았을 질문입니다. 특히 2008년 대침체(Great Recession)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거치며 사회적 불평등이 심화되었고, 2023년 기회인사이트(Opportunity Insights)의 연구 등 최신 데이터조차 극소수 엘리트 대학 출신들의 압도적 우위를 증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명문대 출신이 부모의 든든한 자본과 인맥을 바탕으로 좋은 직장을 독점하고, 그 격차가 일생 동안 굳어지는 세습적 사회가 점차 공고해지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하지만 과연 이 성공 방정식은 사회 전체의 모든 취업 시장에 동일하게 적용될까요? 사회학자 제시 스트라이브(Jessi Streib) 교수의 저서 '뜻밖의 평등가(The Accidental Equalizer: The Role of Luck After College)'와 이에 대한 저술가 에드워드 테너(Edward Tenner)의 서평은 우리가 정설처럼 믿어왔던 통념을 유쾌하게 뒤흔듭니다.
이 연구는 하버드, 스탠퍼드, 듀크 같은 극소수 엘리트 대학이 아닌, 미국 고등교육의 든든한 허리를 담당하지만 정상을 다투지는 않는 지역 주립대(Southern State University) 졸업생들이 부딪히는 실제 취업 시장 현실을 추적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계급 세습이나 치열한 스펙 싸움이 아닌, 바로 '운(Luck)'과 정보의 불투명성이 만들어낸 뜻밖의 평등이었습니다. 엘리트주의가 더욱 강화되는 시대 속에서, 대다수 보통 사람들의 첫 커리어를 결정지어 온 취업 시장의 숨겨진 반전 인사이트 4가지를 소개합니다.

2. 본론: 취업 시장을 뒤흔드는 4가지 반전의 인사이트
2.1. 첫 번째 반전: 명문대와 일반대의 채용 규칙은 완전히 다르다
우리가 미디어를 통해 자주 접하는 화려한 취업 성공기는 사실 극소수 엘리트 집단에 국한된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하버드 대학교 신문인 Harvard Crimson의 2023년 조사에 따르면, 하버드 졸업생의 41%가 미국 가구 소득 중위값보다 50% 이상 높은 시작 연봉을 받는 금융 및 컨설팅 분야로 진출합니다. 이 상위 1%의 세계는 철저하게 집안의 자본과 인맥, 하버드급 스펙이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 시장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엘리트 집단의 경쟁 방식이 사회 전체의 표준은 아닙니다. 하버드나 아이비리그 밖, 지역 주립대(Southern State University) 졸업생들이 진출하는 중위권 취업 시장의 규칙은 엘리트 시장과 완전히 다르게 작동합니다. 이미 2006년 Wall Street Journal은 기사 헤드라인을 통해 이러한 채용 시장의 이원화를 정확히 지적한 바 있습니다.
"'Any College Will Do': Nation's Top Chief Executives Find Path to the Corner Office Usually Starts at State University." (어떤 대학이든 상관없다: 최고의 CEO들로 가는 길은 보통 주립대에서 시작된다)
하버드식의 치열한 스펙 다툼과 인맥 전쟁은 전체 노동 시장의 아주 특수한 일부분에 불과합니다. 대부분의 청년들이 진입하는 중위권 취업 시장에서는 엘리트 집단의 규칙이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진짜 현실 분석이 시작됩니다.
2.2. 두 번째 반전: 기업은 '최고의 인재'가 아닌 '적당한 인재'를 찾는다
많은 취업 준비생이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더 뛰어난 스펙을 쌓기 위해 과외 코칭을 받고, 남다른 대외활동을 기재하며, 학점 올리기에 매달립니다. 하지만 중위권 주립대에서 채용을 진행하는 기업들의 판단 방식은 취업 준비생들의 상식과 크게 달랐습니다.
정치학자 허버트 사이먼(Herbert Simon)은 인간의 의사결정 유형을 '최적화(Maximizing)'와 '만족화(Satisficing)'로 구분했습니다. 엘리트 기업들이 지원자 중 최고의 인재를 샅샅이 찾아내는 '최적화' 전략을 쓴다면, 일반 중위권 기업들은 최소한의 요건만 충족하면 만족하는 '만족화' 전략을 취합니다.
이러한 기업들의 채용 형태는 조직이론에서 말하는 '쓰레기통 결정 모형(Garbage Can Model of Decision-Making)'과 맥을 같이 합니다. 제한된 시간과 정보 속에서 기업들은 지원자가 업무를 수행할 기본 자격을 갖추었는지 확인하면 더 이상 최고의 학점이나 화려한 대외활동, 상류층 특유의 매너나 사외 코칭 여부를 따지지 않습니다. 지원자가 최소 기준선만 넘어서면 "이 정도면 충분하다(Good-enough)"고 판단하여 신속하게 채용을 마무리합니다.
이러한 채용 방식이 취업 준비생들에게 주는 메시지는 매우 명확합니다. 중위권 기업들이 주도하는 취업 시장에서는 남들보다 압도적인 스펙을 쌓기 위해 자신을 갉아먹으며 쏟아붓는 추가 노력이 실제 취업 성과로 이어질 확률이 매우 낮다는 사실입니다. 최소 요건을 넘어선 상태에서 벌이는 끝없는 '스펙 쌓기 경쟁'은 이 시장에서 실질적인 무용지물에 가깝습니다.
2.3. 세 번째 반전: 정보의 불투명성이 가져온 '뜻밖의 평등'
그렇다면 부모가 부유하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학생들은 부모의 인맥을 활용해 알짜배기 중위권 기업을 싹쓸이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제시 스트라이브 교수는 여기서 매우 흥미로운 '정보의 공백(Informational Vacuum)' 현상을 발견합니다.
중위권 기업들은 직무 내용(예를 들어 인사팀 직원들이 실제로 매일 어떤 업무를 처리하는지)이나 정확한 시작 연봉 등 구체적인 일자리 정보를 외부로 거의 공개하지 않습니다. 기업의 상당수가 비상장 기업인데다, 지역 신문이나 지역 비즈니스 잡지의 쇠퇴로 인해 기업 정보가 미디어를 타고 유통되지 않으며, 기업 자체 웹사이트조차 불친절하기 짝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회학자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는 유명한 '약한 유대의 힘(Strength of Weak Ties)' 이론을 통해 사람들이 친한 친구보다는 건너 아는 인맥을 통해 결정적인 직업 정보를 얻는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에 따르면 부유층 부모가 고급 컨트리클럽 등에서 기업 CEO들과 교류하며 자녀를 위해 유용한 취업 정보를 사적으로 수집해 줄 것으로 기대하기 쉽습니다. 실제로 부유한 집안의 학생들은 이러한 전략을 적극적으로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중위권 시장에서는 정보 자체가 워낙 캄캄한 '정보의 공백' 상태이다 보니, 부유층 부모들이 컨트리클럽에서 얻어낸 사적 정보나 인맥조차 정작 자녀의 실질적인 취업에는 거의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했습니다.
결국 취업 시장 전체에 팽배한 정보의 불투명함이 역설적으로 계급적 특권을 무력화하는 강력한 방화벽 역할을 해낸 것입니다. 정보의 부재는 부유층 학생이나 비부유층 학생 모두를 동일한 깜깜이 상태로 만들었고, 이로 인해 아이러니하게도 부모의 배경과 상관없이 모두가 동일한 출발선에 서게 되는 "뜻밖의 평등기(Accidental Equalizer)"가 형성되었습니다.
2.4. 네 번째 반전: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마태 효과가 아닌 '운명주의(Tychocracy)'
사회학자 로버트 머튼(Robert K. Merton)은 1968년 Science지에 발표한 저명한 논문에서 초기 자원이 풍부한 과학자가 더 많은 기회와 성과를 독점하며 격차를 벌려나가는 현상을 '누적적 이점(Cumulative advantage)'이라 분석하고, 이를 성경 구절(마태복음 25장 29절: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을 인용해 '마태 효과(Matthew Effect)'라고 명명했습니다.
이 마태 효과의 관점대로라면, 같은 주립대를 졸업하더라도 부유한 집안의 자녀가 우량 기업의 정보를 선점하여 더 좋은 첫 직장을 얻고 누적적 이점을 누려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일반 주립대 취업 시장에서는 이 마태 효과 공식이 완전히 깨져버립니다. 구체적인 일자리 정보의 노이즈가 너무나 심한 탓에, 학생들은 자신이 갖게 된 첫 직장이 향후 성장의 발판이 될지 혹은 커리어의 막다른 골목(Dead end)이 될지 채용 시점에는 전혀 알 수 없습니다.
에드워드 테너는 시스템 내부의 이러한 과도한 노이즈와 불확실성을 관찰하며, 그리스어로 '유쾌한 운 또는 기회'를 뜻하는 단어 tyche를 가져와 사회학적 개념 하나를 새롭게 제안합니다.
"옛 아이비리그 출신으로서 감히 제안하건대, 그리스어로 '운'을 뜻하는 tyche에서 유래한 '운명주의 사회(Tychocracy)'라는 단어를 '부유정치(Plutocracy)'처럼 정치경제학 용어 사전에 정식으로 추가해야 한다."
테너가 강조하듯, 엘리트 대학의 좁은 문 밖에서 펼쳐지는 대다수의 취업 시장은 계급적 우위나 부유정치가 아닌, 오직 예측 불가능한 운과 우연이 승패를 나누는 '운명주의(Tychocracy)' 체제에 의해 지배받고 있습니다. 첫 직장의 성패라는 주사위는 계급의 무게와 상관없이 모두에게 동등하게 던져지는 셈입니다.
3. 우리에게 남겨진 질문과 마지막 생각
제시 스트라이브 교수와 에드워드 테너가 전하는 인사이트는 현실의 막막함에 지친 우리에게 깊은 위안과 동시에 날카로운 질문을 동시에 던집니다.
취업 시장의 구조적 불투명함과 예측할 수 없는 운(Luck)은, 아이러니하게도 부모 세대의 부와 지위가 자녀 세대로 그대로 세습되는 것을 막아주는 방화벽으로 기능하고 있었습니다. 명문대를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혹은 부모의 든든한 사회적 배경이 없다고 해서 첫 출발선에서부터 패배의식을 가질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입니다.
다만 이 연구는 사회학적으로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과제를 우리에게 던져줍니다. 과연 중위권 기업에서 '운'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한 청년들이 이후 개인의 노력과 실력으로 상위권 기업으로 도약하는 계층 이동을 이뤄낼 수 있을까요? 아니면 미국의 기업 구조 자체가 고등교육 시스템처럼 또 다른 형태의 견고한 신분제(Caste-like)로 고착되어 버린 것일까요?
에드워드 테너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 영국의 유명 다큐멘터리 'Seven-Up!' 시리즈가 7년마다 다양한 배경의 청소년들의 삶을 장기 추적 관찰했듯, 제시 스트라이브 교수가 이 주립대 졸업생들의 커리어를 평생에 걸쳐 계속 추적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입니다. '운명주의(Tychocracy)'가 작동하는 취업 시장이 청년들에게 전하는 마지막 메시지는 명확합니다. 불확실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끝없는 스펙 쌓기 경쟁으로 자신을 탕진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의 첫 직장이 오롯이 당신의 무능 때문도, 부모의 재력 부족 때문도 아니라 그저 예고 없이 찾아온 '운'의 결과였다면, 오늘 밤 당신 마음속을 짓누르던 조급함과 자책감은 조금 내려놓아도 괜찮지 않을까요?
Source: Edward Tenner, The Accidental Equalizer: The Role of Luck After College(Jessi Streib), Milken Institute Review, May 24, 20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