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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경제를 바꿀까, 경제가 정치를 바꿀까?" 200년 데이터가 밝혀낸 제도 변혁의 5가지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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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Institutions)는 운명일까, 변혁의 대상일까?

"한 번 정해진 국가의 제도나 정치·경제적 체제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정 국가의 장기적인 가난이나 번영, 혹은 정치적 혼란을 접할 때 우리는 흔히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제도적 결정론'을 떠올리곤 합니다. 과연 국가의 제도적 틀은 한 번 형성되면 영구히 굳어지는 운명일까요, 아니면 역사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편되는 대상일까요?

영국 맨체스터 대학교의 안토니오 사보이아(Antonio Savoia) 교수 연구진(2026)은 이 근본적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세계적인 민주주의 다양성(V-Dem, Varieties of Democracy)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여 1800년부터 약 200년간 전 세계 161개국의 정치·경제 제도를 실증 분석했습니다.

연구진은 정치 제도 지표로 '선거 민주주의(Electoral Democracy)'와 '행정부 견제(Executive Constraints)'를, 경제 제도 지표로 '법치주의(Rule of Law)'와 '재산권 보호(Property Rights)'를 추출했습니다. 나아가 국가별 고유한 지정학적·문화적 특성(비관측 이질성)은 물론, 글로벌 경제 위기나 지정학적 충격이 여러 나라로 전파되는 '횡단면 의존성(Cross-sectional Dependence)'까지 엄격하게 통제한 패널 시계열 계량모형을 구축했습니다.

200년의 방대한 데이터가 밝혀낸 실증 결과는 제도의 변화와 지속성에 대한 기존 통념을 깨뜨리는 5가지 반전의 인사이트를 제시합니다.

1. 제도는 멈춰있지 않는다: '지속성'보다 '변화'가 디폴트인 이유

기존의 전통적 경제학 및 사회학 이론에서는 제도를 한번 정착되면 게임 이론의 균형 상태처럼 영구히 머무르거나(Stationary), 변화하더라도 극히 미세한 수준에 그친다고 보았습니다. 과거 연구들이 이러한 '제도 정체론'에 빠졌던 이유는 글로벌 경제 파급 효과나 지역적 전이 효과 같은 '횡단면 의존성'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연구진이 글로벌 충격을 통제한 패널 단위근 검정(CIPS test)을 수행한 결과, 분석 대상이 된 4가지 핵심 정치·경제 제도 지표 모두에서 수준 변수(Levels)의 비정상성(Non-stationarity)이 확인되었습니다. 이는 제도가 고정된 균형 상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끊임없이 궤도를 수정하며 변화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전쟁, 식민지화, 대형 경제 위기, 그리고 계층 간 사회적 갈등(Social Conflict)과 같은 '결정적 계기(Critical Junctures)'가 발생하면 제도의 변화는 일시적인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고, 사회의 구조적인 영구적 궤도 수정(Permanent change)으로 이어집니다. 즉, 제도의 정체(Stasis)는 착각이며, 변화야말로 제도의 본질이자 디폴트(Default)입니다.

"161개국 200년 데이터 분석 결과, 제도의 비정상성(Non-stationarity)을 기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는 제도의 장기적 변화가 예외가 아니라 오히려 '일상적인 규칙'임을 의미합니다."

2. 정치가 먼저인가, 경제가 먼저인가? 데이터의 확실한 대답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을 비롯한 자율 시장주의자들은 자유 시장과 재산권 보호 등 '경제적 자유'가 먼저 확립되면, 그것이 견인차가 되어 자연스럽게 민주주의라는 '정치적 자유'를 가져온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하지만 200년의 장기 데이터를 바탕으로 캐닝-페드로니(Canning & Pedroni, 2008) 그룹 평균(GM) 약외생성 검정(Weak Exogeneity Test)을 수행한 결과, 인과관계의 화살표는 정반대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분석 결과, 행정부 견제 -> 재산권 보호(p = 0.023), 선거 민주주의 -> 법치주의(p = 0.033) 방향으로 흐르는 장기적 인과성이 통계적으로 명확히 입증되었습니다. 반면, 경제 제도가 정치 제도를 변화시킨다는 역방향 인과성(Reverse Causality)은 모두 통계적으로 기각되었습니다(p = 0.629 sim 0.805).

경제 제도는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사회적 자원의 배분 구조를 결정합니다. 다론 아세모글루와 제임스 로빈슨(Acemoglu & Robinson)의 정치경제학적 통찰처럼 "정치가 경제를 이끌며(Politics drives economics)", 정치적 권력 구조와 집단 행동이 경제 제도의 틀을 규정합니다. 정치적 권력 구조의 개혁이나 행정부에 대한 견제 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추진되는 단순한 경제 테크노크라트적 개혁이 결국 기득권 엘리트의 저항에 막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 '선거 민주주의'가 반드시 '재산권 보호'를 보장하지는 않는 까닭

공공 상관 효과 평균 그룹(CCEMG) 추정량을 활용한 겐겐바흐-위르뱅-베스털런드(Gengenbach, Urbain, & Westerlund, 2009) 코인티그레이션(공진화) 검정에 따르면, 정치 제도와 경제 제도는 장기 균형을 이루며 함께 진화합니다. 그러나 지표별 세부 분석에서는 흥미로운 불협화음이 관찰됩니다.

'행정부 견제'나 '선거 민주주의'는 '법치주의'와 강한 장기적 결합력을 보였으나, '재산권 보호'와의 장기적 연계성은 상대적으로 약하게 나타났습니다. 논문의 부록 표 A3(Appendix Table A3)에 제시된 국가별 오차수정계수를 살펴보면, 선거 민주주의와 재산권 보호 간의 장기 균형 관계는 161개국 전체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지 않고 국가별 맥락에 따라 통계적 유의성이 달라졌습니다.

왜 민주주의가 발전한다고 해서 재산권 보호가 자동으로 강화되지는 않을까요? 그 핵심 원인은 사회 내부의 자원 분배적 갈등(Distributive Conflict)에 있습니다(Bardhan 1999; Przeworski & Limongi 1993). 소득이나 자산 불평등이 심각한 사회에서 다수의 빈곤층이 투표권을 통해 정치적 권력을 얻게 되면, 기득권 소수 엘리트가 독점하고 있는 재산권을 위협하거나 급격한 재분배 정책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반대로 독재 정권이나 권위주의 정부가 엘리트와 기업의 재산권만 선택적으로 강력히 보호하면서 민주주의와 법치는 철저히 탄압했던 역사적 역설이 존재합니다. 민주화와 재산권 보호가 언제나 평화롭게 손을 잡고 가는 것은 아닙니다.

4. 일시적 이탈은 있어도 붕괴는 없다: 12~14%의 장기 균형 조정 속도

단기적으로는 정치 제도와 경제 제도가 서로 엇박자를 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 민주화는 후퇴했음에도 경제적 재산권 보호는 높게 유지되는 식의 불균형입니다. 그렇다면 두 제도는 결국 무한히 겉돌게 될까요?

연구진이 오차수정모형(ECM)을 통해 분석한 결과, 정치 제도와 경제 제도는 단기적인 이탈이 발생하더라도 장기 균형 상태를 향해 되돌아가는 강한 복원력을 보여주었습니다. 오차수정계수(EC coefficient) 분석에 따르면, 장기 균형에서 벗어난 오차는 매년 약 12~14%의 속도로 서서히 교정됩니다. (행정부 견제 -> 법치주의 13.6%, 행정부 견제 -> 재산권 보호 11.8%).

이 결과는 역사적 1인당 GDP(Maddison 프로젝트 데이터) 및 무역 개방도(Barbieri & Keshk 데이터)라는 핵심 거시경제 통제변수를 추가한 통제 모형(표 A4)에서도 매우 견고하게 유지되었으며, 잔여 횡단면 의존성 문제까지 완벽히 소거되었습니다.

비록 충격 이후 두 제도가 다시 장기 균형을 이루기까지는 오랜 시차가 걸리지만, 이 천천히 진행되는 조정 과정이 바로 제도의 '은근한 지속성'과 장기적 공진화를 만들어내는 진짜 메커니즘입니다.

5. 극단적 쿠데타와 정권 붕괴가 증명한 제도의 자국(Footprint)

논문은 200년간의 실증 데이터를 구체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인도네시아와 칠레라는 두 나라의 선명한 역사적 케이스 스터디를 비교 제시합니다.

📌 인도네시아: 과두제 연관망에서 민주적 공진화로

구조적 초기 상태: 네덜란드 식민지 시절 극단적 수탈을 겪은 후, 1945년 독립 헌법을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1950년대 수카르노의 '교도 민주주의(Guided Democracy)' 하에서 외국 자산의 급진적 국유화와 폐쇄적 경제 정책이 단행되었고,이는 1960년대 초 하이퍼인플레이션과 경제적 붕괴로 이어졌습니다.

결정적 계기 및 변혁: 1965년 수하르토의 군사 쿠데타로 '신질서(New Order)' 정권이 출범했고, 1980년대 석유 파동 이후 무역 및 금융 규제 완화가 단행되었습니다.

제도적 불균형: 신질서 정권은 행정부 견제와 법치주의를 극도로 후퇴시켰으나, 정권 친화적 과두재벌(politico-business oligarchies)과 정경유착 정관(patron-client networks)의 재산권만을 선택적으로 강력히 보호하는 독특한 불균형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장기적 공진화 결과: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로 과두층의 정경유착 연관망이 파산하며 수하르토가 퇴진했습니다. 이후 와히드(1999), 메가와티(2001) 정권을 거치며 중앙은행 독립, 독립 선거관리위원회, 전면 선출제 의회, 2003년 대통령 직선제가 도입되었습니다.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법치/재산권이 동반 상승하며 전형적인 장기 '공진화'를 증명했습니다.

📌 칠레: 엘리트의 기득권 수호와 제도의 세습

구조적 초기 상태: 1833년 보수적 과두층 합의 헌법 이후, 1930~1960년대 라틴아메리카에서 예외적으로 다당제 민주주의를 유지하며 산업화와 사회 개혁을 모색했습니다.

결정적 계기 및 변혁: 1970년 민주 선거로 출범한 아옌데 사회주의 정부의 토지 개혁과 대규모 산업 국유화가 기득권 엘리트의 재산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했습니다.

제도적 불균형과 권력의 동학: 아옌데는 헌법상 제도적 권력(de jure political power)을 가졌으나, 위기의식을 느낀 엘리트와 피노체트 군부는 물리적 실력 행사(de facto political power)로 쿠데타를 일으켰습니다. 군부는 민주주의와 행정부 견제를 바닥으로 추락시킨 반면, 사적 재산권 보호는 강제로 극대화했습니다.

장기적 공진화 결과: 피노체트 정권은 한시적인 de facto 권력의 한계를 인식하고 1980년 신헌법을 개정했습니다. 좌파 세력이 강한 도시 지역의 의석 표현성을 체계적으로 축소하고 보수적인 농촌 지역을 과대 대표(Gerrymandering)하도록 설계하여, 민주화 이후에도 소수 엘리트의 경제적 기득권을 침해할 수 없도록 구조화했습니다.

마치며: '포용적 정치' 없이 '지속 가능한 경제'는 없다

200년간 축적된 161개국의 데이터는 우리에게 명확한 결론을 제시합니다. 제도는 결코 멈춰있지 않고 지속적으로 변하며, 정치가 경제 제도의 포용성과 성격을 결정짓는 핵심 동력이라는 사실입니다.

정치적 권력 구조의 개혁이나 행정부 견제 장치 확립 같은 '포용적 정치 개혁' 없이, 수탈적(extractive) 정치 균형을 그대로 둔 채 추진되는 단순한 경제 개혁은 결코 지속 가능한 성장을 담보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매일 목도하고 있는 수많은 정치적 진통과 권력 구조를 둘러싼 갈등은, 과연 10년 뒤 우리 사회의 경제적 제도를 어떤 방향으로 새롭게 재편하게 될까요? 그리고 우리는 포용적 정치 구조의 확립 없이 지속 가능한 경제적 번영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Source: Savoia A, Sen K, Tagem AM. Institutional change and persistence: what does the long-run evidence tell us? Journal of Institutional Economics. 2026;22:e53. doi:10.1017/S174413742610087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