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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풀면 인플레이션이 온다"는 진리? 통화주의 50년의 반전 드라마와 그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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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솟는 물가가 일상을 위협할 때, 우리는 자연스럽게 중앙은행을 바라봅니다. 하지만 중앙은행이 시중의 돈을 어떻게 관리하고 통제하는지 그 깊은 메커니즘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고전 경제학은 시중의 화폐량이 물가 수준을 결정한다는 화폐수량설(Quantity Theory of Money)에 기반을 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1930년대 대공황을 거치며 존 메이너드 케인스(John Maynard Keynes)는 극심한 불황 속에서는 돈을 풀어도 사람들이 소비하지 않고 쌓아두기만 하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당시 연준 의장 마리너 에클스(Marriner Eccles)가 미 의회 청문회에서 "줄을 당길 수는 있어도 밀어낼 수는 없다(pushing on a string)"고 비유했듯, 경제학계는 통화정책이 무력하며 정부의 재정 지출만이 유효하다는 케인스주의 도그마에 사로잡혔습니다.

이 판도를 뒤집은 인물이 바로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입니다. 그는 1963년 안나 슈워츠(Anna Schwartz)와 함께 집필한 대작 『미국 통화사(A Monetary History of the United States)』를 통해 대공황 당시 연준이 통화공급을 방치하여 통화량이 약 3분의 1(1/3)이나 폭락하게 만든 것이 단순한 경기후퇴를 역사상 최악의 대참사로 키운 결정적 원인이었음을 입증했습니다.

프리드먼은 "통화량을 꾸준하고 예측 가능하게 늘리는 것이 안정적 경제 성장의 열쇠"라는 통화주의(Monetarism)를 제시하며 현대 경제학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통화주의는 정책 당국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승승장구했으나, 금융 혁신의 파도 속에서 버려지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최근 거대한 인플레이션과 함께 중앙은행의 핵심 화두로 다시 부활하고 있습니다.

노벨상 수상부터 최근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행보까지, 롤러코스터 같았던 통화주의 50년 여정에서 찾아낸 가장 놀라운 5가지 핵심 반전을 정리합니다.

1. 노벨상 위원회조차 통화주의에는 미온적이었다

1976년 10월,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밀턴 프리드먼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로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통화주의의 기세가 하늘을 찌르던 당시에도 노벨위원회의 태도는 뜻밖에 미온적이었습니다.

위원회가 발표한 보도자료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은 프리드먼의 대표 이론인 통화 분석보다 다른 학술적 성과들을 훨씬 더 높게 평가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항상소득가설, 자연실업률, 변동환율제, 대공황의 원인 규명 등이 순수 과학적 관점에서 더 우수한 성과로 언급되었습니다. 위원회는 통화주의를 확립된 정설이라기보다는, 프리드먼이 독보적인 천재성으로 시작한 "활발하고 결실 있는 학술적 논쟁" 정도로 치부했습니다.

"순수한 과학적 관점에서 볼 때, 프리드먼의 다른 업적들이 그의 통화 분석보다 더 큰 학술적 관심 대상입니다."

프리드먼을 대중에게 가장 널리 알린 대표 이론이 정작 노벨상 수상의 결정적 주연이 아니었다는 점은 통화주의 역사의 첫 번째 역설입니다.

2. 폴 볼커의 통화주의는 거대한 '마케팅 전략'이었다

1979년 10월, 미 연방준비제도 의장으로 취임한 폴 볼커(Paul Volcker)는 치솟는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파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기준금리를 직접 조절하는 기존 방식 대신, 통화주의 원칙에 따라 은행의 지급준비금과 통화량 증가율을 직접 통제하겠다고 밝힌 것입니다.

이 정책은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10%를 훌륭히 넘던 인플레이션은 1983년 한 자릿수 낮게 떨어졌습니다. 비록 연이은 경기후퇴와 11%에 육박하는 실업률이라는 혹독한 대가를 치렀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볼커는 훗날 자신이 통화주의의 순수한 신봉자가 아니었음을 털어놓았습니다. 통화량 목표 설정은 무자비한 금리 인상을 정당화하고, 대중과 연준 내부의 정책 결정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채택한 소통 및 프레임 전략이었을 뿐이라는 고백이었습니다.

"금리를 인상해야 한다고 단순히 말하는 것보다, 인플레이션을 잡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을 설명하는 데 이 방식(통화주의 프레임)이 훨씬 더 효과적이었습니다."

3. 금융 혁신이 통화주의를 무너뜨렸고, 프리드먼도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폴 볼커가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선언하던 바로 그 시점, 역설적이게도 통화주의의 기반은 뿌리째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1980년대 들어 이자를 지급하는 당좌예금 계좌와 머니마켓펀드(MMF) 등 금융 규제 완화와 금융 기술의 발전이 본격화되면서 시중의 통화 유통속도(Velocity of money)가 불규칙하게 변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통화량과 총생산 사이의 안정적인 관계가 깨져버렸습니다.

프리드먼 역시 이러한 변화를 완벽히 읽어내지 못했습니다. 1983년 M1 통화량이 다시 급증하자, 그는 뉴스위크(Newsweek) 기고를 통해 곧 인플레이션이 재발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예견과 달리 인플레이션은 1986년 말 1.2%까지 하락했습니다.

프리드먼은 훗날 제자 다비드 레이들러(David Laidler)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 예측을 자신의 "대형 실수(major blooper)"라고 인정했습니다. 또한 2003년 파이낸셜 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는 다음과 같이 회고했습니다.

"통화량을 정책 목표로 삼은 것은 성공적이지 못했습니다. 오늘날이라면 예전만큼 그것을 강하게 주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시카고대학교의 랜달 크로즈너(Randall Kroszner) 교수는 진단은 정확했으나 처방은 미흡했던 프리드먼의 시도를 다음과 같이 명쾌하게 요약했습니다.

"그는 임금이 벌거벗었다고 지적했지만, 그가 임금에게 입히려 했던 옷 역시 그리 잘 맞지 않았습니다."

4. 팬데믹 이후의 인플레이션과 케빈 워시의 '부활 신호'

1990년대 이후 전 세계 중앙은행들은 통화량 목표를 버리고 금리와 인플레이션을 직접 목표로 삼는 정책으로 전환했습니다. 2006년 벤 버냉키(Ben Bernanke) 연준 의장 역시 통화량 지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고 단언했습니다.

이어진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앨런 멜처(Allan Meltzer) 등 일부 통화주의자들은 연준의 양적완화(QE)가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것이라고 경고했지만, 은행 대출이 활성화되지 않아 광의 통화가 늘지 않았고 인플레이션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COVID-19 팬데믹은 양상을 완벽히 바꾸었습니다. 중앙은행의 대규모 자산 매입에 더해 정부의 재정 지원금(PPP 대출, 재난지원금)이 예금 계좌로 직접 입금되면서 시중의 M2 통화량이 폭발적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리고 곧이어 40년 만에 최고치라는 기록적인 인플레이션이 세계 경제를 타격했습니다. 마이클 보도(Michael Bordo)를 비롯한 통화주의자들은 통화량이 인플레이션의 핵심 원인임을 입증했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모든 학자가 이에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폴 크루그먼(Paul Krugman) 같은 학자들은 인플레이션이 재정 지출과 공급망 혼란에 의한 것이라며 '속성 통화주의(vulgar monetarism)'의 부활을 경계했습니다.

그럼에도 정책 현장에서는 명백한 부활의 신호가 감지됩니다. 2026년 신임 연준 의장으로 취임한 케빈 워시(Kevin Warsh)는 통화량을 중앙은행의 대화 테이블로 다시 불러들였습니다. 연준은 의회 보고서에서 10여 년 만에 처음으로 M2 통화량 증가율을 언급했고, 워시는 이를 재치 있게 "이스터 에그(Easter egg)"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8월 잭슨홀 미팅에서 그는 다음과 같이 선언했습니다.

"돈은 중요합니다. 요즘은 유행하지 않는 생각이지만, 제 견해로는 돈은 통화 정책과 매우 중요한 관련이 있습니다."

5. 통화주의는 죽지 않았다, 현대 경제학의 DNA로 이식되었을 뿐

제임스 불라드(James Bullard) 전 세인트루이스 연은 총재의 분석에 따르면,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직접 목표로 설정하지 않더라도 프리드먼의 핵심 사상은 현대 통화정책의 정설인 '신케인스주의 합의(New Keynesian Consensus)'의 뼈대로 깊숙이 이식되어 있습니다.

프리드먼이 현대 중앙은행에 남긴 4가지 숨은 유산은 다음과 같습니다.

자연실업률 (Natural Rate of Unemployment):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가속하지 않고는 실업률을 인위적으로 이 수준 이하로 낮출 수 없다는 개념입니다.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Expectations): 인플레이션을 용인하여 경제를 부양하려는 시도는 무위로 돌아갑니다. 대중이 이를 간파하고 임금과 가격 요구에 반영하기 때문에, 결국 남는 것은 더 높은 인플레이션뿐이라는 원리입니다.

항상소득가설 (Permanent Income Hypothesis): 소비는 단기 소득이 아닌 장기적 예상 소득에 기반한다는 가설입니다. 이는 로버트 홀(Robert Hall)과 마이클 우드포드(Michael Woodford)가 발전시켜 노벨상을 수상한 현대 신케인스주의 소비 및 지출 모델링의 핵심 기초가 되었습니다.

준칙에 기반한 정책 (Rule-based Policy): 정책 당국의 자의적인 재량보다는 명확한 규칙(예: 인플레이션 타겟팅)에 따라 통화 정책을 운용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결론: 돈은 모든 것이 아니지만,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통화주의는 50년의 세월 동안 최고 존엄의 정책 교리에서 한순간에 폐기된 이론으로 떨어졌다가, 현대 경제학의 숨은 메커니즘으로 유연하게 스며들었습니다.

지난 반세기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단 하나의 명확한 교훈은 바로 이것입니다. "돈은 모든 것이 아니지만, 결코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다."

금리 조절과 통화량 관리라는 두 축 사이에서, 향후 중앙은행들은 변화무쌍한 세계 경제의 난관들을 과연 어떤 균형감각으로 헤쳐나가게 될까요?

Source: Peter Coy, Does Monetarism Still Have Currency? Becker Friedman Institute for Economics, Oct 19,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