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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던 '경제'는 틀렸다: 동양과 서양이 '돈'을 바라본 반전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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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매일 쓰는 '경제'라는 단어, 원래 무슨 뜻이었을까?

오늘날 현대인에게 '경제(Economy)'라는 단어는 주식 차트, 부동산 시세, 금리 향방, 그리고 개인의 자산 관리와 재테크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는 매일 아침 경제 뉴스를 읽고, 경제적 자유를 꿈꾸며, 경제학적 원리로 세상을 이해하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공기처럼 사용하는 '경제'라는 단어의 태생을 추적해 보면 아주 신선한 반전을 만나게 됩니다. 전근대 동아시아에서 이 단어는 결코 개인의 돈벌이나 자산 관리를 뜻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거대한 국가 통치 이념이자 도덕적 담론이었던 단어가 오늘날 '시장과 자산 관리'를 뜻하는 용어로 변모하게 되었을까요? 동양과 서양이 '돈'과 '사회'를 바라보았던 치열하고도 흥미진진한 개념사(Conceptual History)의 궤적을 따라가 봅니다.

2. '경제'는 원래 재테크가 아니라 '세상을 구하는 정치 이념'이었다

서양어 'Economy'의 어원이 된 고대 그리스어 Oikonomikos(크세노폰)나 Oeconomica는 본래 '가정 관리' 또는 '가정 경제(齊家, 家政, 家計)'를 의미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체계에서도 가정 관리(oikonomike)는 도시국가(polis)를 다루는 정치학의 기초 구성 요소이자 하위 영역이었습니다. 즉, 서양의 'Economy'는 개인과 가정이라는 사적 영역의 관리술에서 출발하여 국가 전체의 부를 다루는 'Political Economy(정치경제학)'로 확장되어 간 역사를 가집니다.

반면, 동아시아에서 이에 대응하는 '경제(經濟)'의 출생 성분은 전혀 달랐습니다. '경제'는 '경세제민(經世濟民)', '경국제민(經國濟民)', '경국제세(經國濟世)'의 약어로, "국가를 올바르게 다스리고(治事) 수렁에 빠진 백성을 구제한다"는 유교적 정치 이상 그 자체였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동서양의 개념 확장 방향이 완벽한 '대칭적 반전'을 이룬다는 사실입니다. 서양이 '가정 관리(oikonomike)'라는 사적 단위에서 출발해 '국가 관리(political economy)'로 확장해 나간 반면, 동양은 '경세제민'이라는 거대한 국가 통치 담론으로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훗날 조선 후기에 이르러 《산림경제(山林經濟)》나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처럼 국가 관리론이었던 '경제' 개념을 역으로 민간의 삶과 가정 관리(사적 영역)로 확장시켜 적용했습니다.

다만 '경세제민'의 '제민(濟民)' 속에는 백성의 물질적 욕구를 충족시키고 민생을 안정시킨다는 실질적 의미가 깊게 내포되어 있었기에, 훗날 19세기 말 서구의 근대적 시장 경제 개념을 수용하는 훌륭한 저수지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3. "돈을 버는 것은 끝(末)이다" - 도덕(義理)과 실리(功利)의 치열한 육탄전

전통 성리학(주자학)의 세계관에서 최고의 가치는 도덕적 수양(修身)과 의리(義理)였습니다. 《대학(大學)》의 가르침에 따르면 국가 통치에서 도덕과 교화가 근본(本)이고, 재물과 이익은 마땅히 뒤로 밀려나야 할 끝(末)이었습니다.

그러나 송대(宋代)에 이르러 주희의 성리학파와 현실적 실리를 중시하는 공리학파(왕안석, 진량, 엽적 등) 사이에 치열한 육탄전이 벌어집니다. 공리학파는 관념적 도덕론을 비판하며 현실 문제를 해결하는 '사공(事功, 일의 성과)'과 사회적 실리를 적극 주창했습니다. 주희는 이러한 공리학파의 실리주의를 향해 매서운 경계의 눈빛을 보냈습니다.

"마음을 다스리지 않고 몸을 수양하지 않은 채 오직 사공(事功, 일의 성과)만을 탐한다." — 주희(朱熹), 공리학파의 실리주의에 대한 비판

명·청대의 '경세치용학파'와 조선 후기의 실학자들(유성룡, 유형원, 김육, 홍대용 등)을 거치며, '경제'의 중심축은 도덕적 교화에서 물질적 삶의 안정과 실질적 정책 중심으로 크게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유성룡: 상업의 가치와 부국론을 중시하며, 실무적 역량으로서의 '리재(理財)'를 강조했습니다.

유형원: 《반계수록(磻溪隨錄)》을 통해 성리학의 도덕 우위론을 넘어 물질적 인센티브를 통찰했습니다.

"이익을 좇고 손해를 피하는 것이 만고천하의 공통된 인정이다." — 유형원(柳馨遠), 《반계수록(磻溪隨錄)》

김육: 대동법 시행과 동전 통용 등 백성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경제 정책을 평생의 임무로 삼았습니다.

이처럼 동아시아 내부에서도 "도덕이 먼저인가, 실리가 먼저인가"를 두고 벌어진 수백 년의 논쟁을 통해 '경제'는 관념적 정치학에서 점차 실질적 경제 정책으로 그 내실을 바꾸어 갔습니다.

4. 도쿠가와 일본, 유교적 도덕을 버리고 '물리(物理)'를 택하다

동아시아 삼국 중 서양의 'Political Economy'를 가장 선제적이고 빠르게 수용한 곳은 도쿠가와 시대의 일본이었습니다. 그 배경에는 유교적 도덕 규범으로부터 개념을 완전히 탈피시킨 사상적 대전환이 있었습니다.

1729년, 일본의 사상가 다자이 춘대(太宰春台)는 《경제록(經濟錄)》에서 '경제'를 천하를 다스리는 것으로 정의하되, 유교적 도덕 원리인 '도리(道理)'가 아닌 인과적 법칙인 '물리(物理)'의 관점에서 파악해야 한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경제록습유》에서 명언을 남깁니다.

"무릇 경제의 술(術)은 의사가 병을 고치는 것과 같다. 국가에 제도를 세우는 것이 근본이다." — 다자이 춘대(太宰春台), 《경제록습유(經濟錄拾遺)》

1822년 사토 노부히로(佐藤信淵) 역시 《경제요략(經濟要略)》에서 "경제란 국토를 경영하고, 물산을 개발하며, 관내를 풍부하게 하고, 만민을 구제하는 것"이라 정의하며, '경제'를 명확한 실질적 경제 정책의 영역으로 재정립했습니다.

일본이 이토록 과감하게 '경제'에서 도덕을 떼어낼 수 있었던 바탕에는 구조적 반전이 있었습니다.

무사 중심의 봉건제: 문관 중심의 중앙집권 유교 국가였던 조선·중국과 달리, 일본은 무사 중심의 봉건 사회였습니다. 따라서 유교적 도덕관만으로 사회 전체를 통합하기 어려웠습니다.

시장 중심의 경제 통합: 국가적 재분배보다 각 번(藩)의 전매제 도입과 시장을 통한 상품 경제 통합이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다누마 오키츠구(田沼意次)의 중상주의 정책이 대표적입니다.

그 결과 일본은 동아시아 국가 중 '경제'라는 단어에서 유교의 도덕적 규범(의리)을 가장 먼저 털어내고, 객관적 법칙과 실질 정책으로서의 개념으로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5. '경제학' 탈락 후보들의 반란: '리재', '식화', 그리고 '이용후생'

19세기 말, 서구의 'Political Economy' 및 'Economics'라는 학문이 유입되었을 때, 이를 번역하기 위해 한자 문화권의 지식인들은 치열한 단어 경합을 벌였습니다.

번역 후보어

원의 및 학문적 매칭 특징

채택 사유 및 탈락 원인

이용후생 (利用厚生)

공업·상업 발전과 삶을 풍요롭게 함(서경). 마셜(A. Marshall)의 '복지 및 물질적 수단 연구' 정의와 가장 부합.

4글자라는 한계. 동아시아 학 학명(學名) 조어 관습(2글자 선호)에 밀려 탈락.

리재 (理財)

재화 및 재정의 효율적 관리(주역). 로빈스(L. Robbins)의 '희소 자원 관리' 정의와 일치.

국가 재정이나 수치 관리에 치우쳐 의미 범위가 다소 협소함.

식화 (食貨)

식량과 화폐 등 재화를 통칭(한서 식화지). 국가 관점의 종합적 경제 정책.

민간 영역의 자발적 이윤 추구와 시장 자율 관점이 결여됨.

부국학 / 부국양민

국가와 백성을 부유하게 함(국부론 초창기 번역어).

'부국'이 단순 국가 재정 증대(환관/군주 재정)로 오인될 위험성.

생계 (生計) / 계학 (計學)

량치차오(梁啓超)의 '생계', 엄복(嚴復)의 '계학'. 삶의 유지 및 측정 강조.

학문의 거대 담론을 담아내기에 차원이 다소 낮게 평가됨.

평준 (平準)

사마천 《史記》 평준서. 물가 안정 및 경제 조절 기법.

사회 전체의 공공적 부를 다루기엔 특정 정책 기법에 편중됨.

경제 (經濟)

국가를 치세하고 백성을 구제함(경세제민).

최종 승리. 자원 배분 테크닉을 넘어 '국가 부강과 백성 안녕'이라는 거대 담론을 담아냄.

당시 지식인들이 원했던 학문은 단순한 자원 배분의 수리적 테크닉이 아니라, 국가를 부강하게 하고 백성의 삶을 살릴 수 있는 거대 국가 관리술이었습니다. 그 결과, 다소 불완전함에도 불구하고 거대한 정치·사회적 가치를 내포한 '경제(經濟)'가 최종 승리자가 되었습니다.

6. 이슬람은 '중용'을, 인도는 '마키아벨리적 정치학'을 경제라 불렀다

동아시아를 넘어 다른 주요 문명권에서는 'Economy'를 어떻게 번역하고 이해했을까요? 각 문명의 깊은 사상적 궤적이 단어 속에 그대로 녹아있습니다.

이슬람권 (Iqtisād)

코란의 어원에서 유래한 Iqtisād의 뿌리 단어(muqtasid)는 원래 '신앙적으로 어정쩡한 사람'이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러나 알 가잘리(Al-Ghazali)와 이븐 카임 알 자우지요 같은 중세 학자들을 거치며, 이 단어는 낭비와 인색함 사이에 위치하는 '중용(Golden Mean)과 절제'라는 드높은 종교적 덕목으로 승화되었습니다. 소비와 지출에 있어 지나치지 않는 절제가 곧 신의 축복을 받는 경제 행위였던 것입니다. 훗날 1903년, 무하마드 이크발이 우르두어로 《Ilm Al-Iqtisād》(경제학 연구)를 출판하면서 이 단어는 근대 'Economics'의 명확한 번역어로 안착했습니다.

인도권 (Arthashastra)

고대 마우리아 왕조의 재상 카우틸랴가 지은 서적에서 유래한 Arthashastra는 '부와 복지의 학문' 또는 '국가 관리술'을 뜻합니다. 유교의 경세론보다 훨씬 과감하고 공리주의적이었으며, 정치공학 및 마키아벨리적 군주론의 성격을 띠고 있었습니다. 12세기 이후 실전되었던 이 문헌은 1904년에 드라마틱하게 재발견되었습니다. 이후 생계를 뜻하는 vartta나 부의 학문을 뜻하는 sampatishastra를 제치고, 인도권에서 'Political Economy'를 대표하는 학문명으로 확립되었습니다.

7. 2,000년의 언어 여행이 남긴 질문

'경제'라는 단어는 참으로 격동적인 언어의 여행을 거쳐왔습니다.

카를 야스퍼스(Karl Jaspers)가 말한 제1차 축의 시대(Axial Age)에 그리스의 Oikonomikos, 인도의 Arthashastra, 동아시아의 '경세(經世)' 개념이 성립하며 고대 국가 관리술의 기틀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리고 라인하르트 코젤렉(Reinhart Koselleck)이 주창한 안장의 시대(Sattelzeit, 1750~1850년)라는 개념사적 제2차 축의 시대를 거치며, 서구의 시장 경제 체제와 부딪힌 동양의 전통 개념들은 파괴되고 재정립되어 오늘날의 '경제학'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고대 국가 통치술에서 시작하여 도덕과 실리, 국가와 가정, 물리와 제도를 거쳐 온 이 2,000년의 개념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묵직한 화두를 던집니다. 오늘날 우리의 '경제'는 오직 지수, 수익률, 자산 가치라는 단편적인 숫자로만 환원되곤 합니다. 단어의 뿌리를 되찾은 오늘, 우리는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져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오직 이윤과 자산 가치로만 매몰되어 가는 현대의 '경제' 속에서, 과거 선현들이 담고자 했던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살린다(經世濟民)'는 도덕적·사회적 가치를 우리는 어떻게 다시 되살려낼 수 있을까요?"

Source: 李憲昶, アジアにおいてpolitical economyの翻訳語として登場した 諸用語の原義とその進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