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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경제 60년이 던지는 5가지 반전의 진실: 통화와 재정 정책의 숨겨진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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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거시경제정책: 60년 동안의 경제 쳇바퀴

금리를 결정하는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세금을 거두고 예산을 집행하는 백악관 및 의회 중, 거시경제의 방향을 틀어쥘 더 강력한 주도권은 누구에게 있을까요?

프린스턴 대학교 교수이자 전 연준 부의장,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을 지낸 거시경제학의 거장 앨런 블라인더(Alan Blinder) 교수는 저서 《미국의 통화 및 재정 정책 역사: 1961~2021(A Monetary and Fiscal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961-2021)》에서 이 질문에 대한 깊은 통찰을 제시합니다.

지난 60년간의 미국 경제사를 반추해 볼 때, 거시경제 정책의 역사는 한 방향으로 단순하게 직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톱니바퀴 속의 톱니바퀴(wheels within wheels)"처럼, 시간과 공간 속에서 끝없이 회전하고 거듭 반복되어 온 거대한 쳇바퀴와 같았습니다.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은 시대적 과제, 이념의 대립, 정치적 이해관계, 그리고 미증유의 위기 상황에 따라 끊임없이 주도권을 주고받았습니다.

수십 년간의 역사적 사건과 거시경제적 메커니즘 속에서 추출한, 우리의 직관을 뒤흔드는 가장 파급력 있고 흥미로운 5가지 반전의 진실을 통해 미국 경제의 숨겨진 기틀을 재조명합니다.

1. 케인스주의의 비대칭성: 침체기엔 환영받고, 과열기엔 외면받는 이유

케인스주의(Keynesianism) 경제학의 핵심 이론은 지극히 대칭적입니다. 경기가 침체될 때는 세금을 깎고 지출을 늘려 총수요를 자극하고, 반대로 경기가 과열될 때는 세금을 올리고 지출을 줄여 물가를 잡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 정치라는 그라운드에 적용되었을 때, 이 아름다운 이론은 치명적인 비대칭성을 드러냈습니다.

대표적인 비극적 사례가 린든 존슨(Lyndon Johnson) 행정부 시절인 1960년대 후반에 펼쳐졌습니다. 베트남 전쟁 수행으로 재정 지출이 폭증하고 경제가 가열되자, 월터 헬러(Walter Heller)와 아서 오쿤(Arthur Okun)이 이끄는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는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과감한 세금 인상(할증세, tax surcharge)을 강력히 권고했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표심을 의식한 존슨 대통령과 의회는 세금 인상을 수년간 미루며 저항했습니다. 뒤늦게 1968년에야 통과된 할증세는 이미 치솟은 인플레이션의 불길을 잡기엔 턱없이 늦은 시점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역사적 충돌이 발생했습니다.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William McChesney Martin) 당시 연준 의장은 인플레이션 바람을 차단하기 위해 통화 긴축에 나섰고, 이에 격분한 존슨 대통령은 마틴 의장을 해임하는 방안까지 심각하게 검토하며 거세게 압박했습니다. 정치인들은 경기 자극책(감세와 지출 확대)은 열렬히 환영하지만, 경기 냉각책(증세와 지출 축소)은 정치적 자살 행위로 여겨 거부한다는 진실이 드러난 순간이었습니다.

블라인더 교수는 이 현상을 다음과 같이 간결하게 요약합니다.

"Keynesianism turned out to be symmetric in theory but asymmetric in practice." (케인스주의는 이론상 대칭적이었으나 현실에서는 비대칭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현실에서의 비대칭적 적용은 케인스주의에 '본질적으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이론'이라는 억울한 오명을 씌웠습니다. 재정 정책을 통한 경기 냉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증명되자, 인플레이션 파수꾼이라는 고독한 임무는 온전히 연준의 통화 정책으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는 1990년대,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의 예상치 못한 대역전극으로 이어집니다.

2. 채권 시장의 반전: 세금을 올리고 지출을 줄였는데 일자리가 늘어난 내막

전통적인 케인스주의 관점에서 볼 때, 정부가 세금을 올리고 지출을 줄이는 재정 적자 감축 정책은 명백한 '긴축(contractionary)'이며, 단기적으로 총수요를 줄여 경기 침체를 불러와야 합니다. 하지만 1990년대 빌 클린턴(Bill Clinton) 행정부 시절, 기존 경제학의 상식을 뒤엎는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클린턴 정부는 막대한 예산 적자를 줄이기 위해 과감한 증세와 지출 축소를 단행했습니다. 전통적 이론대로라면 경기가 위축되어야 했으나, 실제로는 기업 투자가 폭증하고 수천만 개의 일자리가 창출되는 사상 최대의 대호황이 펼쳐졌습니다. 이 역설을 가능하게 한 경제적 메커니즘은 무엇이었을까요?

지연된 적자 감축(Backloading)과 금리의 기간 구조(Term Structure of Interest Rates): 클린턴의 적자 감축안은 당장의 급격한 지출 절감보다는 미래의 구조적 적자를 줄이는 데 중점을 둔 '이후 반영(backloaded)' 구조였습니다. 이 정책이 높은 정치적 신뢰를 얻자, 금융 시장은 미래의 단기 금리가 낮아질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금리의 기간 구조' 원리에 따라 미래 저금리에 대한 기대감이 현재의 장기 채권 수익률을 대대적으로 하락(채권 가격 상승)시켰고, 강력한 채권 시장 랠리가 유발되었습니다.

그린스펀 연준의 미세조정(Fine-tuning): 앨런 그린스펀(Alan Greenspan)의 연준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그린스펀은 1994년 2월 4일, 긴축 전환을 시작할 때 FOMC 위원 다수가 원했던 50bp 대신 정교하게 계산된 25bp 인상을 고집하며 시장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정교한 미세조정을 펼쳤습니다.

'신경제' 생산성 폭발의 간파: 그린스펀은 정보기술(IT) 혁명으로 생산성이 급증하여 물가 상승 압력 없이도 잠재 GDP가 높아졌음을 남들보다 먼저 간파했습니다. 그는 실업률이 하락함에도 금리 인상을 자제하며 경제의 노를 저었습니다.

결과적으로 클린턴의 재정 긴축이 유도한 장기 금리 인하 효과가 재정 긴축의 경기 위축 효과를 완전히 압도했습니다. 적자 감축이 채권 시장을 통해 민간 투자를 자극하는 '신뢰의 채널'을 입증한 이 사건은,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이후 재정 규율이 완전히 해체되는 개막작이 되고 말았습니다.

3. 적자를 바라보는 눈: 아이젠하워의 도덕적 분노에서 양당의 '기본값'이 되기까지

오늘날 미국 정치권에서 막대한 재정 적자는 당연한 일상이 되었지만, 불과 60년 전만 해도 적자는 국가적 '도덕적 죄악'이었습니다. 1950년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Dwight Eisenhower) 대통령 시절, 예산 적자는 재정적 무모함이자 후손에게 죄를 짓는 행위로 비난받았습니다.

이러한 건전 재정 기조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린 전환점은 1981년 로널드 레이건(Ronald Reagan)의 대규모 감세였습니다. 공급측 경제학을 내세운 레이건의 감세는 적자를 스스로 메울 것이라는 장담과 달리, 1981년 GDP 대비 2.5%였던 재정 적자를 1983년 6% 수준까지 폭증시켰습니다.

1990년 조지 H.W. 부시와 클린턴 행정부가 도입했던 최소한의 재정 규율인 'PAYGO(Pay-As-You-Go: 지출 확대나 감세 시 반드시 재원 조달 방안을 마련하는 제도)' 법칙은 2000년대 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조지 W. 부시(George W. Bush) 행정부와 의회는 PAYGO 체제를 공식 수몰시켰고, 2001/2003년 감세, 아프가니스탄·이라크 전쟁, 메디케어 처방약 혜택 확대를 모두 순수한 적자 채권 발행으로 조달했습니다.

이후 적자는 당파를 초월한 미국 정치의 '기본값(Default)'이자 '엄마의 젖(mother's milk)'이 되었습니다.

조지 W. 부시 (공화당): 감세 및 전쟁 수행으로 적자 구조화

바락 오바마 (민주당):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대규모 재정 부양책 단행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완전 고용 상태이던 2017년 대규모 법인·개인세 감세 강행

조 바이든 (민주당): 2021년 1조 9,000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구조 계획(ARP) 등 대폭적 재정 지출

정치권의 이중잣대 역시 정착되었습니다. 공화당은 야당일 때는 재정 적자의 위험성을 강력히 비판하다가도, 여당이 되면 감세를 위해 적자를 적극적으로 확대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변화의 결과는 가공할 수치로 나타납니다. 1960년 균형 예산에 가까웠던 미국 재정은 코로나19 직후인 2021년 연간 재정 적자가 GDP의 12%를 초과하는 기염을 토했고, 2021 회계연도 말 기준 미국 총 국가 부채는 GDP 대비 96%라는 역사적 수치에 도달했습니다. 재정 적자가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지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의 시선은 이를 통제할 유일한 기관인 연준의 독립성 문제로 쏠리게 되었습니다.

4. 중앙은행 독립성의 반전: 좌파와 우파 거장 모두가 반대했던 역사

오늘날 중앙은행의 독립성(CBI: Central Bank Independence)은 거시경제 정책의 절대적 신조이자 통화 정책의 성경으로 여겨집니다. 연준이 단기적인 정치적 압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금리를 결정해야 한다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1961년 당시만 해도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절대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놀랍게도 이념적으로 극과 극에 서 있던 경제학계의 두 거장이 연준의 독립성에 한목소리로 반대했습니다.

밀턴 프리드먼 (Milton Friedman - 우파/통화주의자): 통화량은 정해진 규칙에 따라 늘려야 하며, 연준의 재량적 독립성에 반대.

제임스 토빈 (James Tobin - 좌파/케인스주의자): 연준이 정부의 경제 정책 기조와 겉돌아서는 안 된다며 독립성에 반대.

심지어 베테랑 연준 의장이었던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조차 연준을 독립된 정부 위에 선 기관이 아닌 정부 '경제 팀의 일원(part of the economic team)'으로 정의했습니다.

연준 독립성이 역사상 최악으로 추락한 시점은 닉슨(Richard Nixon) 대통령 시절이었습니다. 닉슨은 자신의 오랜 친구인 아서 번즈(Arthur Burns)를 1970년 연준 의장에 앉힌 뒤, 1972년 재선을 위해 인플레이션 경고를 무시하고 금리를 낮추도록 노골적이고 강력한 정치적 압력을 행사했습니다. 번즈의 연준이 이에 굴복하여 통화 공급을 폭발시킨 결과는 1970년대를 덮친 참혹한 스태그플레이션이었습니다.

추락한 중앙은행 독립성을 반전시킨 구원자는 1979년 등판한 폴 볼커(Paul Volcker)였습니다. 지미 카터 대통령의 방임 속에서 출범한 볼커는 강력한 독립성을 무기로 정치권의 비난과 대중의 시위를 뚫고 기준금리를 20%까지 올리는 극단적 처방을 내렸습니다. 혹독한 경기 침체를 감수하고 인플레이션을 잡으면서 CBI의 가치는 비로소 승리했습니다.

이후 연준의 성공 모델은 글로벌 표준으로 확산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뉴질랜드가 가장 먼저 지적·제도적으로 중앙은행 독립성을 법제화하며 변혁을 이끌었고, 영국을 거쳐 1992년 마스트리히트 조약과 1999년 유럽중앙은행(ECB) 출범으로 이어지며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전 세계 거시경제의 골간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5. 경제 위기의 법칙: 이념을 넘어선 '재정 + 통화' 총력전

"참호 속에는 무신론자가 없다"는 군대 격언처럼, 거시경제학의 세계에는 "대침체 앞에서는 비케인스주의자가 없다"는 불문율이 존재합니다. 평소에는 정부 지출을 비판하고 시장 자율을 외치던 학자나 정치인들도, 시스템 파국이라는 거대한 참호 속에서는 예외 없이 케인스주의적 정책으로 대동단결했습니다.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은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의 관계를 완전히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시켰습니다. 2008년 위기 당시 벤 버냉키(Ben Bernanke)의 연준은 기준금리를 0~0.25%까지 낮추며 명목 금리 하한선(Zero Lower Bound)에 부딪혔습니다. 양적완화(QE) 같은 비전통적 수단을 동원해도 심각한 수요 공백을 채우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버냉키는 과거 볼커나 그린스펀과 달리 핵심적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통화 정책 혼자서는 이 깊은 수렁에서 벗어날 수 없으며, 반드시 대규모 재정 정책과의 공동 대응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2020년 팬데믹이 지구촌을 덮치자 이 같은 재정·통화 대합작은 비상사태 수준(Defcon One)으로 폭발했습니다. 연준은 금리를 제로로 낮춤과 동시에 미 재무부의 손실 보증을 바탕으로 수조 달러 규모의 비상 유동성 기구를 가동했고, 의회는 CARES 법안 등을 통해 총 5조 달러라는 전대미문의 재정 지출을 단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훌륭하게 작동한 정교한 법적·제도적 경계선이 있었습니다. 제롬 파월(Jerome Powell) 연준 의장이 끊임없이 강조했듯, "연준은 지출하는 기관이 아니라 대출하는 기관(The Fed is in the business of lending, not spending)"이었기에 원금 손실이 발생하는 재정 지출을 직접 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의회는 소상공인 급여보호프로그램(PPP) 대출 과정에서 발생하는 채무 불이행 손실을 중소기업청(SBA)이 전액 흡수하도록 설계했습니다. 연준은 손실 위험이 제거된 PPP 대출 채권을 담보로 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함으로써, 중앙은행의 원칙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정부의 재정 지출과 통화 발행이 완벽하게 결합하는 '모든 수단을 동원한(all hands on deck)' 총력전을 완성했습니다.

결론: 역사는 반복된다

지난 60년 동안의 미국 거시경제사를 돌아보면, 통화 정책과 재정 정책 중 어느 하나가 영원한 승자로 남은 역사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1960년대 케인스주의 재정 정책의 찬란한 부흥과 씁쓸한 비대칭적 실각, 1970년대 정치적 유착과 스태그플레이션, 1980년대 볼커가 이끈 통화 정책의 독주, 1990년대 클린턴과 그린스펀이 보여준 재정 긴축과 통화 완화의 정교한 앙상블, 그리고 21세기 거대 위기 속에서 펼쳐진 재정·통화 총력전에 이르기까지, 정책의 주도권은 시대의 과제와 경제적 환경에 따라 쉼 없이 회전해 왔습니다. 역사는 선형적으로 진보한 것이 아니라, 끝없이 돌고 돌며 서로를 보완하는 톱니바퀴의 역사였습니다.

이제 미국 경제는 국가 부채가 GDP의 96%를 돌파하고, 오랜 시간 잊혔던 인플레이션이 다시 번성하는 새로운 역사적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60년의 역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마지막 질문은 정교하면서도 묵직합니다.

"막대한 국가 부채와 새로운 인플레이션이 공존하는 다가올 시대, 과연 다음 턴의 주도권을 쥐고 미국 경제의 쳇바퀴를 돌릴 주인공은 연준의 금리 정책일까요, 아니면 정부와 의회의 재정 지출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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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urce: Alan Blinder, A Monetary and Fiscal History of the United States, 1961-2021, Milken Institute Review, Jan 24,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