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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의 고갈과 민주주의의 위기: 우리가 몰랐던 5가지 반전의 경제학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1. 왜 일자리 문제는 풀리지 않는 고르디우스의 매듭이 되었을까?
오늘날 세계 경제를 바라보면 답답한 마음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선진국에서는 오랜 세월 불평등을 완화해 온 복지국가의 틀이 무너져 내리고 있고, 이를 대체한다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 또한 극심한 양극화와 지역 간 격차라는 치명적 상흔을 남겼습니다. 개발도상국 역시 사정은 다르지 않습니다. 과거 성장의 보증수표였던 '수출 주도형 제조업' 모델은 동력을 잃었고, 경제가 성장하는 곳에서조차 고생산성 첨단 도시와 낙후된 지역 사이의 '이중 경제(Dual Economy)' 구조가 깊어지고 있죠.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처방을 내려왔을까요? 안타깝게도 우리가 상식처럼 여겨온 표준적 경제 정책들은 대부분 표면적인 증상만 건드렸을 뿐, 생산 구조의 깊은 이중성을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세금과 재분배 정책: 사후적으로 소득을 나누어 줄 뿐, 정작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생산성 구조의 격차는 그대로 방치합니다.
교육 투자 및 사회안전망: 노동자의 역량을 높여줄 수는 있지만, 그 자체만으로 일자리를 직접 창출하거나 이중 구조를 통합하진 못합니다.
경기 부양책(재정 지출): 단기적인 경기 침체 갭을 메울 수는 있어도, 사회를 분열시키는 구조적 일자리 기근을 해결하진 못합니다.
반트러스트(독점 금지) 규제: 거대 기업의 시장 지배력과 임금 눌림 현상을 제어할 수는 있지만, 불평등을 완전히 해소하기엔 역부족입니다.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합니다. 단순히 만들어진 부를 '어떻게 나눠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해야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참여할 수 있는 좋은 일자리를 직접 늘릴 것인가?'로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정부와 민간이 협력하여 동력 있는 생산 영역을 확장하는 '좋은 일자리 경제(Good-Jobs Economy)' 전략입니다.
여기서 '좋은 일자리'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안정적인 법적 노동 보호 아래, 중산층 수준의 생활을 누리고 자녀를 교육하며 은퇴를 준비할 수 있는 일자리를 뜻합니다. 과연 불확실성의 시대에 어떻게 '좋은 일자리 경제'를 구축할 수 있을까요? 우리 관념을 뒤흔드는 5가지 반전의 경제학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2. 나쁜 일자리는 경제가 아닌 정치와 사회를 병들게 한다
'좋은 일자리'는 개별 노동자의 통장에 찍히는 월급 이상의 가치를 가집니다. 사회 전체에 거대한 양의 외부효과(Positive Externality)를 제공하기 때문이죠. 반대로 좋은 일자리가 사라지고 양질이 낮은 일자리가 그 자리를 채울 때 발생하는 사회적 비용은 시장 메커니즘 안에서 결코 계산되지 않는 엄청난 음의 외부효과를 초래합니다.
"임금이 상승할 때 기업은 노동 절약형 기술을 도입해 대응한다. 그 결과 좋은 일자리와 고용 수준 사이에 바람직하지 않은 트레이드오프가 발생한다."
과거 산업혁명기에는 농업의 기계화로 밀려난 노동자들이 고생산성 제조업으로 흡수되면서 사회 전체의 생산성 향상이 고용 충격을 상쇄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후반 탈산업화 시대는 달랐습니다. 제조업 일자리가 급감하고 노동자들이 임금과 조건이 열악한 서비스업으로 내몰리면서, 기술 발전의 혜택은 극소수 첨단 구역에만 갇히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좋은 일자리 고갈'이 가져온 파급효과는 실로 참혹합니다.
지역사회의 붕괴 (MIT 데이비드 오터 David Autor 교수 연구): 중국과의 수입 경쟁 충격을 크게 받은 미국 지역사회를 분석한 결과, 일자리를 잃은 지역에서는 젊은 남성의 무직(idleness) 비율이 급증했습니다. 이는 약물 및 알코올 오남용, 에이즈(HIV/AIDS), 살인 등으로 인한 사망률 증가로 이어졌고, 미혼모, 결손가정, 아동 빈곤율의 급격한 상승을 가져왔습니다.
민주주의와 정치적 극단화: 오터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충격이 컸던 지역일수록 온건파 의원을 선출할 확률이 급락했습니다. 2002년부터 2014년 사이 중국의 수입 침투율이 실제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면,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승리했을 것이라는 정량적 분석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유럽의 포퓰리즘 부상 (Dal Bó 연구 등): 스웨덴에서 보수 정부가 정부 이전지출과 사회보험을 줄이고 감세를 단행했을 때, 안정적 일자리를 가진 집단과 임시직·무직 집단 사이의 소득 격차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이 정치적 반발을 흡수한 것은 극우 우익 정당인 '스웨덴 민주당'이었습니다. 영국의 브렉시트(Brexit) 가결과 유럽 전역의 극우 정당 부상 역시 일자리 불안정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전통 경제학자들의 제언처럼 일자리에 '피구세적 보조금(Generalized Employment Subsidy)'을 주면 해결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기술 변화 방향조차 예측할 수 없는 극심한 불확실성(Deep Uncertainty) 환경에서는, 기술적 기회가 고정되어 있지 않고 기업과 노동자가 어떻게 반응할지 사전에 알 수 없습니다. 단순히 돈을 쥐여주는 방식으로는 양질의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없는 이유입니다.
3. 거대 기업 유치 잔치가 매번 비극으로 끝나는 이유
지역 경제를 살리겠다며 대기업에 막대한 세제 혜택과 보조금을 퍼붓고 공장을 유치하는 장면, 익숙하실 겁니다. 하지만 이 '연기뿜는 공장 유치전(Smokestack Chasing)'은 오늘날 지극히 위험한 도박에 불과합니다.
이 방식이 매번 실패하는 결정적 이유는 '정적 계약(Static Contracts)'의 한계에 있습니다. 급변하는 시장과 기술 환경 속에서 몇 년 뒤의 고용 인원과 보조금 조건을 사전에 완벽하게 고정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측 불가능한 변화가 닥쳤을 때 계약을 재협상하거나 수정할 여지가 없으니, 결국 천문학적인 혈세만 낭비한 채 파행으로 끝납니다.
거대 기업 유치 방식 vs. 진화형 혁신 모델 비교
구분
기존의 거대 기업 유치 방식 (정적 계약)
새로운 혁신 모델 (진화형 지배구조)
핵심 접근법
대규모 세제 혜택 및 일시적 현금 보조금 지급
맞춤형 지원 서비스 및 민관 협력 네트워크 구축
계약 구조
사전에 고용 인원과 조건을 고정 (재협상 불가)
지속적인 상호 검토와 학습을 통해 목표를 유연하게 수정
불확실성 대응
기술·시장 변화 시 계약 이행 불능 및 법적 갈등 발생
환경 변화에 맞춰 현장 중심으로 전략을 계속 적응
대표적 사례
위스콘신주 팍스콘(Foxconn): $45억 보조금 대가로 1.3만 개 일자리 약속했으나 수요·기술 변화로 무산<br>뉴욕주 아마존(Amazon HQ2): $30억 보조금 대가로 2.5만 개 일자리 약속했으나 지역사회 반발로 철수
DARPA / ARPA-E, 아일랜드 낙농업 수질 규제, Project Quest 등 지속적 학습 체계 모델
4. 미 국방성(DARPA)과 아일랜드 낙농업에서 찾은 불확실성의 해법
기술도, 시장도, 지역적 환경도 불확실하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목표를 사전에 고정하지 않고, 실행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학습하며 목표와 수단을 교정해 나가는 '진화형 지배구조(Iterative Governance)'에 있습니다. 전혀 달라 보이는 첨단 기술 R&D와 농업 규제 사례가 놀랍게도 동일한 해법을 제시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자리 정책이 맞닥뜨리는 두 가지 불확실성을 이해해야 합니다. 바로 기술적 프론티어의 불확실성인 '화이트 스페이스(White Spaces)'와, 지역 특수적 불확실성인 '화이트 닷(White Dots)'입니다.
1) ARPA-E: 기술적 미개척지('White Spaces')의 극복
미국 에너지첨단연구프로젝트국(ARPA-E)의 미션은 현재 기술로 불가능한 지식의 빈 곳, 즉 '화이트 스페이스'를 채우는 것입니다. 풍력이나 태양광만으로 24시간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배터리 개발 같은 과제죠.
유연한 목표 수정: ARPA-E는 지원금을 주고 뒷짐 지지 않습니다. 연구 진행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에 따라 목표를 끊임없이 수정합니다.
밀착형 프로젝트 관리: 연구자와 기관 담당자가 밀착 협력하며, 설정한 이정표(Milestone)에 미달하면 즉시 개입해 사업 방향을 조정합니다. 수동적 자금 지원이 아닌 지속적 상호 검토를 통해 불확실성을 관통하는 이 시스템은 타 기관 대비 독보적으로 높은 특허 출원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아일랜드 낙농업: 지역 맞춤형 불확실성('White Dots')의 극복
아일랜드는 세계 분유의 15%를 공급하는 낙농 강국이지만, 환경오염을 막아야 하는 EU의 엄격한 수질 지침("좋은 물" 유지)에 직면했습니다. 문제는 토양과 지질 구조가 농가마다 제각각인 '화이트 닷' 환경이었다는 점입니다.
일괄 규제의 실패: 일률적인 비료 사용 제한이나 중앙집권적 일괄 지침은 지역마다 다른 토양 특성 때문에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지역 맞춤형 협력 네트워크: 아일랜드는 획일적 처벌 대신 하천 수계(Catchment) 단위별로 지역 농가, 기술 전문가, 공공기관이 참여하는 모니터링 협력 네트워크를 만들었습니다.
성과: 현장 데이터를 공유하며 지역 특성에 맞는 수질 오염 방지 대책을 스스로 도출해냈습니다.
좋은 일자리 창출 전략 역시 이 두 가지를 동시에 풀어야 합니다. 미개척 기술을 도입하는 '화이트 스페이스' 문제이자, 지역 노동자와 기업의 특성에 맞게 조정해야 하는 '화이트 닷'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5. 단순한 기술 교육을 넘어: Project Quest와 CUNY ASAP의 성공 비결
흔히 직업 훈련이라고 하면 국비 지원 학원에서 기술을 가르쳐주는 장면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왜 수많은 직업 훈련 프로그램이 실패로 끝날까요? 취약계층이 직면한 금융·가정·사회적 장애라는 복합적인 현실을 외면했기 때문입니다. 성공한 프로그램들은 완전히 다른 길을 걸었습니다.
샌안토니오의 'Project Quest'
1992년 공장 폐쇄로 일자리를 잃은 히스패닉계 주민들을 위해 지역 종교 단체와 지자체가 힘을 합쳐 만든 이 프로그램은 일자리 정책의 전설이 되었습니다.
포괄적 지원 서비스(Wraparound Services): Quest는 단순 수강료 지원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보육비, 임대료(주거비), 교통편, 보건 의료, 심지어 가정폭력 대응 서비스까지 종합 패키지로 제공하여 학습자가 중간에 포기하지 않도록 도왔습니다.
MIS 기반 지속적 개선 문화: 미군 출신 리더들이 이식한 지속적 개선 문화와 dedicated MIS(경영정보시스템)를 통해 학생 개개인의 추적 데이터와 조직 성과를 매주 모니터링하고 지원책을 즉시 수정했습니다.
압도적 결과: 프로그램 참여 9년 후, 참가자들은 대조군 대비 약 10% 더 높은 소득을 올렸습니다. 특히 나이가 많고 자녀가 있으며 복잡한 가정적 부담을 안고 있던 최취약층에서 소득 증가 효과가 가장 컸습니다.
뉴욕시립대의 'CUNY ASAP' 및 기업 파트너십
전담 고문(Dedicated Adviser) 배치: 뉴욕시립대의 ASAP 프로그램은 모든 학생에게 전담 고문을 붙여 이탈 위험 신호를 사전에 감지하고 삶의 문제를 함께 해결했습니다.
졸업률 폭증: 대조군의 졸업률이 22%에 불과했던 반면, ASAP 참가자의 졸업률은 39.6%(약 40%)로 2배 가까이 상승했습니다.
확장성: 이 성공 모델은 오하이오주 지역대학들로 확산되었으며, 아마존(Amazon) 같은 거대 기업과의 파트너십으로 이어졌습니다. 아마존은 학비 지원과 유연한 근무 시간표를 제공하고, 대학 과정을 마친 이들에게 관리직 승진 사다리를 열어주었습니다.
결국 양질의 인재를 양성하고 좋은 일자리로 연결하는 핵심은 단발성 자금 지원이 아니라, 노동자의 삶 전체를 돌보는 밀착형 종합 지원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습니다.
6. '정치적 의지'는 이미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는 것이다
많은 정책 학자들이 "정부 주도의 일자리 정책 중 성공한 역사가 없다"며 패배주의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정답이 정해진 만병통치약이 없다는 것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완벽한 정책 설계도가 아니라, 성공 사례를 축적해 나가는 '단계적 지배구조(Governance Regime)'의 구축입니다.
강력한 연대와 '정치적 의지(Political Will)'는 정책을 시작할 때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민관이 함께 실험하고 성공을 맛보며 만들어지는 '결과물'입니다. 정부는 다음과 같은 3단계 스케일업 메커니즘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1단계: 당근과 지원 서비스를 통한 자발적 참여 유도 (Carrots) 정부는 일자리 확대를 위한 법적 의지를 선언하고, 인센티브 지원책과 함께 맞춤형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여 뜻있는 민간 기업과 시범 사업(Pilot)을 시작합니다.
2단계: 현장 모범 사례(Good Practice)의 축적 시범 사업을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고 유연하게 교정하면서, 불확실성을 낮추고 다양한 현장에 맞는 성공적인 '좋은 일자리 모범 사례'를 데이터로 입증합니다.
3단계: 제재 및 참여 의무화로의 단계적 확장 (Penalty Defaults) 성공적인 모범 사례가 확립되면, 이에 동참하지 않고 '나쁜 일자리'를 고수하는 기업들에 대해 시장 접근 제한이나 자율권 제한 등의 제도적 의무(Penalty Defaults)를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합니다.
이 진화형 모델은 지구적 과제인 그린 뉴딜(Green New Deal)과 결합할 때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합니다. 그린 뉴딜은 단순히 탄소 배출에 세금을 매기는 차원을 넘어, 친환경 기술 투자와 좋은 일자리 창출을 결합하는 대전환 전략입니다. 그린 뉴딜이 좋은 일자리 경제의 지배구조와 만날 때, 기후 위기 극복과 민주주의 사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거대한 정치적 동맹이 탄생하게 됩니다.
7. 결론: 민주주의를 구하는 좋은 일자리 경제
지금 우리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포퓰리즘과 사회적 분열의 뿌리에는 '좋은 일자리의 고갈'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비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불쌍한 이들에게 베푸는 시혜적 복지 사업이 아닙니다. 국가의 생존과 사회적 통합을 지켜내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국가 경제 전략입니다.
대기업에 보조금을 주고 일자리를 애걸하는 정적 계약의 시대는 끝났습니다. 사후적 소득 재분배로 나쁜 일자리의 상처를 메우는 임시방편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기술과 지역의 불확실성을 인정하고, 정부와 기업이 지속적인 학습을 통해 수정해나가는 진화형 협력 시스템만이 답입니다.
결국 정책의 성공을 가르는 것은 예산의 규모가 아닙니다. 불확실성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학습하고 교정할 수 있는 지배구조를 갖추었는가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는 시장의 자율이라는 미명 하에 민주주의를 병들게 하는 '나쁜 일자리'의 폭주를 방관할 것인가, 아니면 지속적인 민관 협력과 혁신을 통해 '좋은 일자리 경제'를 구축하는 대전환의 길로 나아갈 것인가?"
Source: Dani Rodrik and Charles Sabel, Jobs jobs Everywhere (and not a good one in sight), Milken Institute Review, July 30,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