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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영 싸움이 아니다: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뜻밖의 심리적 범인은?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1. 민주주의의 후퇴, 정말 정당 갈등 때문일까?
오늘날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경고음은 정치권과 학계를 넘어 사회 전반에서 더욱 높게 울리고 있습니다. 2021년 1월 6일 미국 연방 의회 의사당 난입 사태부터 2024년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두 차례의 암살 시도, 그리고 2025년 보수 활동가 찰리 커크와 멜리사 호트먼 전 미네소타주 하원의원의 피살 사건에 이르기까지, 미국 사회를 흔든 정치적 폭력 사건들은 대중에게 민주적 질서의 가파른 침식과 후퇴라는 깊은 불안감을 안겨주었습니다.
대중과 언론은 흔히 이러한 비자유주의적(illiberal) 태도나 민주적 규범의 훼손을 특정 정당(공화당 혹은 민주당)의 극단화나 진영 간 감정적 양극화의 부산물로 치부하곤 합니다. "상대 진영에 대한 증오가 민주주의를 망치고 있다"는 해석은 이제 익숙한 상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진범'으로 지목해 온 정파적 악의 배후에, 상식을 뒤엎는 완전히 다른 심리적 메커니즘이 숨어있다면 어떨까요?
2025년 3월, 미국 여론조사 기관 YouGov의 인구통계학적 할당 표집을 통해 미국 등록 가권자(U.S. registered voters) 2,397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최신 설문조사 실험 데이터는 우리의 통념을 정면으로 반박합니다. 민주주의적 규범을 흔드는 진짜 동력은 특정 정당에 대한 맹목적 충성심이나 당파적 수사가 아니라, 인간의 마음속 깊이 자리 잡은 훨씬 근본적인 심리적 프레임이라는 사실이 실증 데이터로 입증되었습니다.
2. 진영을 넘어선 진범—'제로섬 사고(Zero-Sum Thinking)'가 기본권을 위협한다
정치 심리학 및 데이터 사회과학 연구진이 밝혀낸 민주주의 위협의 핵심 원인은 정당 사상이 아닌 '제로섬 사고(Zero-Sum Thinking)'라는 기저의 심리적 대전제입니다. 제로섬 사고란 한 사람이나 집단의 이득이 반드시 다른 사람이나 집단의 손실로 이어지며, 사회적 삶을 승자와 패자만 존재하는 '승자독식의 싸움터'로 바라보는 인지적 신념을 의미합니다.
연구진의 데이터 분석에 따르면, 제로섬 사고는 민주당, 공화당, 무당파를 가리지 않고 비자유주의적 태도—즉, 존립적 위협을 이유로 시민의 기본권을 강제로 제한하는 조치에 대한 지지—를 유발하는 가장 강력하고 보편적인 예측 변수로 나타났습니다.

통계 수치는 이 심리적 드라이버의 파급력을 명확히 보여줍니다:
사분위수 범위(IQR) 증가 효과: 제로섬 사고 점수가 1사분위(하위 25%)에서 3사분위(상위 25%)로 상승할 때, 비상시 강제적 기본권 제한을 지지하는 비율은 정당 성향과 상관없이 11.43~12.71%p 상승했습니다.
극단적 구간 비교 (15% vs 85% 백분위수): 제로섬 사고가 하위 15백분위수에서 상위 85백분위수로 급증할 때, 기본권 제한 지지율은 18.07~19.96%p나 치솟았습니다.
쉽게 말해, 세상을 극단적인 제로섬 게임으로 인식하는 상위 15%의 시민들은 하위 15%에 비해 민주주의의 핵심인 기본권을 강제로 제한하는 데 동의할 확률이 무려 20%포인트가량 높은 셈입니다.
"제로섬 사고는 정치적 입장을 초월한다. 세상을 '승자독식의 싸움터'로 보는 사람들에게는 타인에 대한 강제적 권리 제한이 정파와 무관하게 타당하고 필요한 조치로 인식된다."
그렇다면 이 강력한 제로섬 사고는 정치적 정당성이나 진영 논리와 결합할 때 대중의 판단을 어떻게 교란하고 조종할까요?
3. 프레임의 함정—진영 논리는 '낮은 제로섬 사고자'에게만 통한다
정치적 주장은 결코 추상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지 않으며, 늘 구체적인 정책 이슈를 통해 명분화됩니다. 연구진은 정파적 이슈 프레임이 시민들의 비자유주의적 태도에 미치는 영향을 엄밀히 측정하기 위해 참가자들을 3가지 무작위 실험 처치 집단(Treatment Conditions)에 배정했습니다.
통제 집단 (No specific threat): "일부 이슈는 기본권을 강제로 제한할 만큼 존립적 위협이 된다"는 일반적 명분 제시.
진보 프레임 (Liberal frame): "기후 변화와 같은 이슈는 기본권을 강제로 제한할 만큼 존립적 위협이 된다"는 명분 제시.
보수 프레임 (Conservative frame): "불법 이민과 같은 이슈는 기본권을 강제로 제한할 만큼 존립적 위협이 된다"는 명분 제시.
실험 결과는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기후 변화나 불법 이민 같은 정파적 프레임에 반응하여 민주주의적 원칙을 타협하려는 정파적 자율성을 보이는 집단은 오직 제로섬 사고 수준이 낮은 사람들(하위 85% 미만)뿐이었습니다. 이들은 민주당원의 경우 '기후 변화' 프레임이 주어질 때, 공화당원의 경우 '불법 이민' 프레임이 주어질 때만 선택적으로 기본권 제한을 지지했습니다. 자신이 속한 정당이 우선시하는 이슈(Issue Ownership)일 때만 비상 조치를 용인하는 경향을 보인 것입니다.
반면, 제로섬 사고가 높은 이들에게는 이러한 정치적 프레임이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습니다.
구분
낮은 제로섬 사고자 (< 85th percentile)
높은 제로섬 사고자 (≥ 85th percentile)
정파적 프레임 반응성
높음 (민감함): 자신이 속한 정당의 우선 이슈(민주당-기후변화, 공화당-이민)가 제시될 때만 선택적으로 반응함
없음 (불감함): 명분의 종류와 상관없이 '위협 천장 효과'에 도달하여 일관되게 높은 지지를 보임
기본권 제한 지지 메커니즘
당파적 이슈 소유권 및 자당 프레임의 정합성에 따른 선택적·가변적 지지
세상을 사생결단의 공간으로 인식하는 근본적 세계관에 따른 일관된 지지
이 유의미한 차이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제로섬 사고로 물든 사람들에게 어떤 심리적 현상이 일어나는지 더 깊이 탐구하도록 이끕니다.

4. '위협 천장' 효과와 기후변화를 인정하게 된 공화당원들의 반전
제로섬 사고가 매우 높은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특이 현상을 연구진은 '위협 천장(Threat Ceiling) 효과'라고 부릅니다. 이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이슈가 명분으로 제시되든—기후 변화든, 불법 이민이든, 아니면 아무런 명분이 주어지지 않은 통제 집단이든 간에—이미 세상을 존재론적 위협이 가득한 사생결단의 공간으로 인식합니다. 따라서 자극의 종류와 상관없이 기본권 제한에 대한 지지율이 이미 인지적 최댓값(천장)에 도달해 있어 프레임 효과가 무력화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조사 분석 결과 중 가장 충격적이고 파격적인 반전이 드러납니다.
일반적으로 공화당 지지층은 기후 변화의 심각성을 낮게 평가하거나 인간에 의한 원인을 부정하는 정당 교리를 따르는 경향이 강합니다. 그러나 제로섬 사고 점수가 매우 높은 공화당원들의 경우, 당의 공식 입장과 완전히 배치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이들은 기후 변화가 인간에 의해 발생했다는 사실과 그 심각성을 강하게 인정했을 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 해결을 위한 강제적 기본권 제한 지지율에서 민주당원들과 사실상 차이가 없어질 정도로 긴밀히 일치했습니다.
정당 교리마저 뛰어넘는 이 같은 현상은 심리학적으로 다음과 같은 2가지 핵심 메커니즘을 통해 설명됩니다.
적대적 세계관의 보편화 (Universalization of an Adversarial Worldview): 제로섬 사고가 강한 사람들은 세상 자체를 누군가가 이득을 보면 내가 손해를 보는 적대적 공간으로 인식합니다. 이러한 거시적 인지 틀 때문에 기후 변화와 같은 거대 환경 위기조차 '누군가(인간)가 의도를 갖거나 방치하여 일으킨 긴급하고 비제로섬적인 위협'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여 받아들입니다.
외집단 타자화 및 국가안보적 프레임 재해석 (Hawkish & Out-group Framing): 이들은 기후 변화를 생태계 보전이나 기후 정의 같은 진보적 가치로 이해하지 않습니다. 대신 거대 기업, 외국(Out-groups) 등 적대적 집단과의 대립 구도, 혹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강경한 '국가안보적 위기'로 재해석하여 인지합니다. 그 결과, 적대 세력을 제압하기 위한 강력한 국가적 강제력 행사(기본권 제한)에 주저 없이 동의하게 되는 것입니다.

5. 당신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제로섬 사고를 측정하는 4가지 질문
그렇다면 연구진은 참가자들의 가슴속에 잠재된 이 강력한 심리적 기제를 어떻게 측정해 냈을까요? 연구에 사용된 진단 도구는 특정 정책에 대한 정치적 호불호를 묻지 않습니다. 대신 인간 사회의 상호작용을 바라보는 가장 기초적인 세계관(Mindset)을 측정하는 다음의 4가지 질문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성공은 다른 사람의 실패를 의미한다.
인생에서 누군가 이득을 본다면, 다른 누군가는 잃어야만 한다.
인생은 테니스 경기와 같다: 상대가 져야만 내가 이긴다.
누군가 남을 위해 많은 일을 하면, 결국 본인이 손해를 보게 된다.
이 4가지 문항은 학술적으로 영역 특이적(Domain-specific) 선호가 아닌 일반적 인지 프레임(General Cognitive Mindset)을 진단하도록 고도로 정제된 도구입니다. 세부 정책 이슈(기후변화, 이민, 세금 등)는 가변적이지만, 이 문항들이 측정하는 '제로섬 세계관'은 개인의 삶 전반에서 타인과의 관계를 해석할 때 작동하는 매우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해석의 렌즈입니다.
자신이 세상을 '서로 협력하여 파이를 키울 수 있는 공간(Non-zero-sum)'으로 보는지, 아니면 '누군가를 짓밟아야만 생존하는 승자독식의 외나무다리(Zero-sum)'로 보는지 진단하는 이 질문이야말로 한 시민의 민주주의적 수호 의지를 가늠하는 진짜 척도인 셈입니다.
6.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우리가 진짜 싸워야 할 대상
이번 데이터 기반 사회과학 분석이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는 명백합니다. 민주주의의 후퇴와 비자유주의의 확산은 단순히 정치인들의 자극적인 수사나 정당 간의 진영 갈등 때문만이 아닙니다. 그 밑바탕에는 정파를 불문하고 세상을 적과 나의 사생결단으로 해석하게 만드는 '정치적 제로섬 사고'라는 기저의 심리적 불씨가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이슈의 유행과 가시성(Salience)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끊임없이 변합니다. 따라서 이슈 프레임에만 민감하게 반응하는 낮은 제로섬 사고자들의 비자유주의적 태도는 정치적 국면에 따라 상승과 하강을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지적 틀로 자리 잡은 제로섬 사고는 쉽게 바뀌지 않는 강력한 지속성을 가집니다. 제로섬 사고자들은 이슈의 변화와 상관없이 언제나 민주적 규범을 타협할 준비가 되어 있는 내재적 위험성을 품고 있습니다.
결국 상대 진영을 향한 도덕적 비난이나 일시적인 정책적 대응만으로는 민주주의의 민주적 침식을 막아낼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진정한 싸움은 상대 정당과의 싸움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번져가는 제로섬적 세계관이라는 인지적 원인을 해소하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지금의 민주주의 위기를 살아가는 우리 스스로에게 중요한 질문을 던져보아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과연 정치적 상대방과 함께 성장하는 비제로섬의 세계를 만들 준비가 되어 있는가, 아니면 스스로를 승자와 패자만 존재하는 외나무다리로 몰아넣고 있는가?"
Source: Morrier, J., B. Magistro, and R. M. Alvarez. 2026. “ The Convergence of Zero-Sum Thinking and Illiberalism in the United States.” Social Science Quarterly 107, no. 5: e70194. https://doi.org/10.1111/ssqu.70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