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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한부 90일 선고가 바꾼 것들: 전 미국 상원의원 벤 새스가 던지는 5가지 통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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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끝없는 업무와 과도한 일중독, 디지털 매체의 끊임없는 소음, 그리고 극단적인 정치적 분열 속에서 너무도 손쉽게 길을 잃곤 합니다. 날마다 쏟아지는 자극과 눈앞의 과업을 좇다 보면, 삶의 진짜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잊어버리기 일쑤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유한함과 사멸성을 직면하게 만드는 결정적인 순간이 찾아올 때, 우리는 비로소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근본적으로 재설정하게 됩니다.

전 미국 상원의원이자 플로리다 대학교 및 미드랜드 대학교 총장을 지낸 벤 새스(Ben Sasse)는 최근 말기 췌장암 4기 진단을 받았습니다. 암세포가 이미 5개 장기 시스템으로 전이되어 처음에는 단 90일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으나, 다행히 RAS 억제제라는 새로운 임상시험 약물 덕분에 현재 선고 기간을 넘어 7개월 가까이 삶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는 진행자 러스 로버츠(Russ Roberts)와의 '이콘톡(EconTalk)' 대담에서 정치, 교육, 디지털 문화,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은 인생의 명확한 통찰들을 담담하게 풀어냈습니다. 그가 전하는 메시지는 덧없는 세속적 우상을 벗어나 참된 삶의 의미를 되찾게 하는 깊은 울림을 줍니다.

의회의 '입법 포기'와 행정부 권력 오남용의 진짜 원인

현대 정치에서 행정부의 권력 남용과 독주는 심각한 문제로 지적됩니다. 하지만 새스 전 의원은 행정부 권력 오남용의 진짜 뿌리가 다름 아닌 의회의 '입법 책무 유기(Legislative underreach)'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의원들이 마땅히 수행해야 할 입법적 책임을 스스로 포기했기 때문에 행정부가 그 권력의 공백을 메우게 되었다는 분석입니다.

정치인들이 직접 법을 제정하기보다 행정명령에 의존하려는 이유는 유권자의 불만을 피하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함입니다. 예를 들어 찬반이 70 대 30으로 갈리는 민감한 안건이 있을 때, 의원이 직접 표결에 참여하면 30%의 반대파 유권자에게 분노를 사게 됩니다. 따라서 의원들은 직접 입법하는 대신 행정부에 행정명령을 내려달라고 로비합니다. 이렇게 하면 70%의 지지자에게는 결과를 이끌어냈다며 성과를 자랑하면서도, 30%의 반대파에게는 "이름 없는 관료들의 결정"이라며 비난의 화살을 떠넘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건국의 아버지들이 오늘날의 정치 지형을 본다면 깊은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유권자의 평가와 책임을 면하기 위해 자신들에게 부여된 입법 권한을 기꺼이 행정부에 넘겨주는 정치인들의 태도는 건국 당시의 인류학적·정치적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이한 현상입니다.

"의회의 선량한 의원이 법안을 직접 입법하지 않고 행정명령으로 처리해달라고 요청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표를 잃지 않고 책임을 이름 없는 관료에게 떠넘기기 위함입니다."

현대 대학 교육의 위기: '지연된 청소년기'와 불균형한 시스템

새스 전 의원은 소규모 미드랜드 대학교와 8만 5천 명의 캠퍼스 인구를 지닌 대형 주립대 플로리다 대학교의 총장을 두루 거치며 현대 고등교육이 처한 구조적 위기를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는 대학 시스템의 핵심 문제로 다음의 두 가지를 꼽습니다.

첫째는 대학이 능동적 배움터가 아닌 '지연된 청소년기(Delayed Adolescence)'의 연장선으로 전락했다는 점입니다. 오늘날의 18세 청년들은 과거 세대와 달리 한 번도 제대로 된 육체 노동이나 경제적 책임을 경험해 보지 않은 채 대학에 입학합니다. 그 결과 대학은 진리와 지혜를 탐구하는 자발적 공간이 아니라, 단지 성인이 되는 시기를 미루는 유예의 장소가 되어버렸습니다.

둘째는 극단적으로 불균형한 연구 구조와 방치된 교양 교육과정(Core Curriculum)입니다. 플로리다 대학교의 경우 연간 13억 달러의 연구비 중 95% 이상을 단 1.5%(약 80명)의 연구 중심 교수진이 유치해 옵니다. 그러나 수천 명에 달하는 중간 지대의 대다수 교수들은 실제 연구 성과가 거의 없음에도 60%에 달하는 연구 안식 시간을 제공받습니다. 더욱이 학내 정치와 기득권에 집착하는 교수회(Faculty Senate)의 영향력 아래에서, 대학의 본질인 교양 교육과정은 진정한 철학적 고민 없이 파편화된 채 방치되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현대 사회의 물질적 부와 대학 내부의 관료주의적 타성은 진리를 탐구하고 지혜를 전수해야 할 고등교육 본연의 목적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습니다.

소셜 미디어나 분열된 여론의 실체: '여론 조작 봇'과 무의미한 소음

디지털 시대의 공적 담론은 대중의 분열과 분노를 먹고 자랍니다. 새스 전 의원은 2017년 미국을 뜨겁게 달구었던 NFL 국가 연주 당시 의례 거부(Kneeling) 논란을 예로 듭니다. 당시 인터넷을 도배했던 '#standfortheanthem'과 '#taketheknee'라는 극단적 대립 해시태그 운동의 실체를 분석해 보니, 온라인상 분노의 70% 이상이 시민들 간의 증오를 부추기기 위해 외국의 봇 팜(Bot farm)에서 생성된 것이었습니다.

죽음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바라본 디지털 세상의 댓글과 온라인상의 격분은 한낱 환상이자 무의미한 소음에 불과했습니다. 정작 현실의 삶을 위협하는 시한부 선고 앞에서는 인터넷 댓글창에 마음을 쓰는 일이나 타인의 디지털 비난에 연연하는 것이 얼마나 헛되고 허망한 것인지 명확히 깨닫게 됩니다.

"온라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분노와 갈등의 거대한 지분은 실제 대중이 아닌, 우리가 서로를 미워하도록 만들기 위해 외국 정보기관이 조작해 낸 '봇(Bot)'에서 나옵니다. 죽음 앞에서는 이러한 디지털 소음과 댓글에 연연하는 것이 완전히 무의미해집니다."

죽음 앞에서 일중독과 명예는 우상이자 환상일 뿐이다

스스로를 '회복 중인 일중독자(recovering workaholic)'라고 부르는 새스 전 의원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의 일과와 운동, 수면 시간을 15분 단위로 기록할 만큼 치열하게 성과를 좇으며 살아왔습니다. 상원의원과 대학교 총장이라는 화려한 이력과 성취는 그가 세상을 살아가는 중요한 동력이었습니다.

그러나 "상반신 몸통 전체에 암세포가 가득 차 있다"는 시한부 판정은 그동안 쌓아 올린 직함, 정치적 지위, 성취라는 우상을 한순간에 산산조각 냈습니다. 전도서의 표현대로 인간의 모든 세속적 몸부림은 결국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질주"일 뿐이었습니다.

오늘날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레이 커즈와일 같은 이들이 주장하는 의식 업로드나 '특이점(Singularity)'을 통한 불멸의 집착이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새스 전 의원은 이러한 시도가 인간의 신체성과 유한성을 부정하는 헛된 환상일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인간은 음식을 나누고, 서로를 안아주며, 제한된 시간 속에서 몸으로 존재하는 인격적 존재입니다. 임종의 순간에 그 누구도 "사무실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걸" 혹은 "더 큰 지위와 명예를 쌓을걸" 하고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이 거스를 수 없는 진실입니다.

고통 속에서 비로소 만나는 참된 기도와 관계의 소중함

새스 전 의원은 암 진단 전, 췌장 암세포가 척추를 압박하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극심한 신체적 통증을 겪었습니다. 밤마다 통증을 견디기 위해 샤워실 바닥에 앉아 척추 위로 뜨거운 물을 계속 흘려보내야 했던 시련은 그의 신앙과 기도 생활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는 3년 전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장로교 목사 팀 켈러(Tim Keller)의 '췌장암 환자의 기도'를 언급합니다. 육체적 약함과 극한의 통증은 자신을 속이던 모든 자만과 위선을 벗겨내고, 하나님 및 사랑하는 이들과의 순수하고 진실된 관계 속으로 들어가게 만듭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핵심인 '죄, 은혜, 감사(Guilt, Grace, Gratitude)'의 구조처럼, 자신의 유한함과 결핍을 인정할 때 비로소 참된 은혜와 감사가 삶에 찾아옵니다.

인생의 궁극적인 의미는 자기중심적인 야망이나 성취가 아니라, 스스로를 내려놓는 자기부정과 봉사, 그리고 진정한 관계에서 나옵니다.

31년간의 결혼 생활과 아내(멜리사)와의 깊은 우정: 세속적 성취보다 인생에서 가장 자랑스럽고 값진 것은 아내와 33년간 이어온 우정과 31년의 결혼 생활에서 쌓아 올린 깊은 인격적 유대입니다.

세 명의 자녀들: 성취욕과 일중독을 닮아 치열하게 살아가면서도 타인을 섬길 줄 아는 성숙한 인격체로 자라준 자녀들과의 관계는 축복입니다. 최근 미 공군 소위로서 전투기 편대 비행 체크라이드(10피트 거리의 밀착 편대 비행)를 통과한 딸을 보며 느끼는 자부심과 사랑은 그 어떤 세속적 지위와도 비교할 수 없습니다.

결론: 제한된 시간이 선물하는 '진실의 시약'

죽음은 분명 인류에게 두렵고 가혹한 적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유한한 존재임을 겸허히 인정하고 "우리 날 수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라는 오래된 고백을 되새기는 순간, 죽음은 삶의 덧없는 환상을 깨뜨리는 강력한 '진실의 시약(Truth serum)'이 됩니다. 우리는 시한부라는 제한된 시간을 통해 비로소 매일에 대한 깊은 감사함을 느끼고, 타인을 섬기며, 참으로 중요한 본질에 집중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우리의 삶 역시 언젠가 끝에 다다른다는 명확한 사실 앞에서, 여러분은 오늘 하루 무엇에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쏟고 계십니까?

끊임없이 우리를 자극하는 스크린 속의 디지털 소음과 덧없는 성취욕을 조금 내려놓고, 지금 곁에 있는 사랑하는 사람의 눈을 바라보며 온전한 온기를 나누는 일부터 시작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Source: Ben Sasse on Faith, Family, and Facing Death, Econ Talk Podcast, Aug 10,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