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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연준 150년의 성적표: 우리가 몰랐던 통화 정책의 '진짜' 실력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노해인 · 진행 / 차우진 · 분석

1. 결과가 좋으면 실력도 좋은 것일까?
경제 지표를 바라볼 때 우리는 대개 '인플레이션이 낮았는가' 혹은 '실업률이 낮았는가'와 같은 결과값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 접근법(Naive approach)은 매우 위험한 함정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평온한 바다를 항해한 초보 항해사가 거친 폭풍우를 뚫고 살아남은 베테랑 항해사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고 해서, 전자가 실력이 더 좋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시각에서 진정한 정책 실력은 결과가 아니라 반응 함수(Reaction Function)에서 드러납니다. 이는 정책 입안자가 마주한 초기 조건과 외부의 충격(에너지 가격 급등, 금융 위기 등)에 대해 얼마나 최적으로 대응했는지를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최근 레지스 바니숑(Régis Barnichon)과 헤르트 메스터스(Geert Mesters)는 '충격 반응 공간(Impulse Response Space)'에서의 회귀 분석이라는 혁신적인 방법을 통해 미 연준 150년의 '진짜 실력'을 검증했습니다. 이들이 제시한 최적 반응 조정치(ORA, Optimal Reaction Adjustment)는 "당시 연준이 금리라는 레버를 X만큼 더 혹은 덜 움직였다면, 경제적 고통을 얼마나 줄일 수 있었을까?"라는 반가상적(Counterfactual) 질문에 대한 답을 제공합니다.

2. 통계적 진실 1: 초기 100년 동안 발전은 없었다
대중의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경제학적 지식이 축적됨에 따라 통화 정책의 실력이 꾸준히 개선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본 연구에 따르면, 1879년 금본위제 시대부터 198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약 100년 동안 미 연준의 정책 반응 함수에는 실질적인 개선이 거의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이 100년의 정체기는 매우 충격적입니다. 인류가 금본위제라는 경직된 체제에서 벗어나 '중앙은행'이라는 정교한 제도를 설계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 경제적 충격에 대응하는 실력 면에서는 제자리걸음을 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연준은 설립 초기 수십 년 동안 금본위제가 가졌던 구조적 결함들을 그대로 '수입'해 온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우리는 초기 100년 동안 반응 함수에서 실질적인 개선을 발견하지 못했다.."

3. 통계적 진실 2: 1929년의 비극 vs 2008년의 대처 (버냉키의 약속)
2002년, 당시 연준 이사였던 벤 버냉키는 밀턴 프리드먼에게 "대공황은 연준의 실책 때문이었으며,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 이 약속은 지켜졌을까요? 데이터는 '그렇다'고 답합니다.
ORA 수치는 0에 가까울수록 정책이 최적이었음을 의미합니다. 1920-30년대 대공황 당시 연준의 금융 충격에 대한 ORA는 -1.2였습니다. 이는 연준이 금리를 너무 올리거나 충분히 내리지 않는 등 극도로 부적절하게 대응했음을 보여줍니다. 만약 당시 연준이 최적으로 대응했다면, 실업률을 무려 10%p 이상 낮출 수 있었습니다.
반면,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ORA는 -0.3으로, 통계적으로 0(최적)과 큰 차이가 없었습니다. 0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당시 모델이 제시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대응을 했음을 의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80년 만에 연준은 치명적인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실력을 갖추게 된 셈입니다.
4. 통계적 진실 3: 1970년대의 대인플레이션은 '대공황'만큼이나 나빴다
우리는 흔히 1970년대의 고물가를 '오일 쇼크'라는 외부의 불운 탓으로 돌립니다. 하지만 데이터 사이언티스트의 분석은 이 시기가 대공황만큼이나 끔찍한 '인재(人災)'였음을 지적합니다. 1960~70년대 연준의 인플레이션 기대 충격에 대한 ORA 수치는 1.2를 기록했습니다.
이는 대공황 당시의 실책(-1.2)과 절대적인 크기가 같습니다. 단지 방향만 반대였을 뿐입니다. 당시 연준은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가 치솟는 상황에서 금리를 충분히 공격적으로 올리지 않았으며, 이는 이른바 '테일러 원칙(Taylor Principle)'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었습니다. 70년대의 고통은 운이 나빠서가 아니라, 연준이 공급 충격에 너무나도 미온적으로 대응(Too weak reaction)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였습니다.
5. 통계적 진실 4: 연준의 창립이 반드시 '진보'는 아니었다
연준의 설립(1913년)이 통화 정책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는 통념 역시 데이터 앞에서는 무너집니다. 금본위제 시대(1879-1912)와 초기 연준 시대(1913-1941)를 비교해 보면, 연준 창립 직후의 성과가 오히려 수동적인 금본위제 시절보다 나을 것이 없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금본위제 시절의 '운'이 사실은 말 그대로 땅에서 금을 캐내는 '금광 발견(Gold mine discoveries)'에 의존했다는 사실입니다. 당시의 화폐 공급은 경제 논리가 아니라 우연한 금광 발견에 묶여 있었습니다. 연준은 이런 원시적인 시스템을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초기 수십 년간은 금광 발견에 의존하던 시절보다 더 나은 반응 체계를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기관의 존재 자체가 실력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냉혹한 진실을 보여줍니다.

6. 지난 30년의 '황금기', 실력인가 운인가?
미 연준 역사에서 진정한 '실력의 도약'은 폴 볼커 이후 지난 30년(1990-2019) 동안 비로소 나타났습니다. 이 시기의 가장 놀라운 특징은 정책 개선이 균일(Uniform)하게 나타났다는 점입니다. 연준은 수요 충격, 공급 충격, 금융 충격 등 모든 종류의 경제적 타격에 대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게 반응하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학계에서는 여전히 논쟁이 진행 중입니다. 이 시기의 안정기가 연준의 진화된 실력(Good Policy) 덕분인지, 아니면 그저 거대한 외부 충격이 적었던 운이 좋았던 시대(Good Luck)였는지에 대한 논의입니다(Clarida et al., 2000; Gali and Gambetti, 2009).
하지만 150년의 데이터를 관통하는 결론은 명확합니다. 연준은 긴 시간 동안의 실패를 거치며 학습했고, 적어도 최근 30년 동안은 과거의 치명적인 오류들로부터 멀어져 있습니다. 우리가 현재 누리는 상대적인 경제적 안정은 어쩌면 유능한 항해사가 거친 바다를 조용히 잠재우고 있는 '실력'의 결과일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진화한 연준과 함께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저 운 좋게 평온한 바다 위를 지나고 있는 것일까요?
Source: R´egis Barnichon and Geert Mesters, Evaluating Policy Institutions–150 Years of US Monetary Policy, Economics Working paper, University of Pompeu Fabra Barcelona, October 27, 20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