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S ORIGINAL · 원문 작성 · ARCHIVE 224421111945

당신의 부는 누군가의 희생인가? 미국 정치를 뒤흔드는 '제로섬 사고'의 실체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노해인 · 진행 / 차우진 · 분석

글자
날짜판으로

우리는 흔히 경제적 성공을 두고 소리 없는 전쟁을 치릅니다. "내가 더 많이 가지려면 누군가는 반드시 잃어야 하는가?" 혹은 "우리 사회의 부는 결국 정해진 크기의 파이를 나누는 게임인가?"와 같은 근본적인 질문들입니다. 인류학자 조지 포스터(George Foster)는 이러한 세계관을 '한정된 재화의 이미지(image of limited good)'라고 명명했습니다. 사회적 자원이 고정되어 있어, 한쪽의 이득이 필연적으로 타인의 손실을 초래한다는 믿음입니다.

최근 사힐 치노이(Sahil Chinoy), 네이선 너리(Nathan Nunn), 산드라 세퀘이라(Sandra Sequeira), 스테파니 스탠체바(Stefanie Stantcheva) 등 하버드와 LSE의 석학들은 20,400명의 미국인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를 통해, 이른바 '제로섬 사고(Zero-sum thinking)'가 현대 정치와 정책 선호도를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손임을 입증했습니다. 이 지적인 탐구는 우리가 왜 이토록 서로를 불신하며 다른 미래를 꿈꾸는지에 대한 서늘한 통찰을 제공합니다.

1. 정책 선호도를 결정짓는 보이지 않는 손

제로섬 사고는 단순한 심리적 경향을 넘어, 국가 정책에 대한 태도를 형성하는 결정적인 논리적 근거가 됩니다.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 제로섬 사고가 강한 이들은 사회적 상호작용을 '가치 창출'이 아닌 '자원 수탈'로 인식합니다.

재분배와 절차적 공정성(Procedural Fairness): 제로섬 사고가 강할수록 고소득층 증세나 보편적 의료 서비스, 인종/성별 할당제(Affirmative Action)에 강력히 찬성합니다. 이는 부유한 집단이 타인의 기회를 빼앗아 부를 쌓았다는 '외부효과 교정(Externality Correction)'의 관점에서, 정부가 그 부당한 이득을 환수해 피해자에게 돌려주는 것이 공정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배타적 이민 정책: 반면, 이민 정책에 대해서는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이들에게 이민자의 유입은 전체 파이를 키우는 활력이 아니라, 자국민의 일자리와 복지 혜택을 가로채는 침입으로 인식됩니다. 이민자의 이득이 곧 자국민의 손해라는 제로섬적 공포가 정책적 배타성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원문 수록 이미지
원문 수록 이미지

2. 당파성을 초월하는 심리적 기제

우리는 정당 지지 여부가 모든 가치관을 결정한다고 믿곤 하지만, 제로섬 사고는 이 이분법적 구도 내부의 미묘한 균열을 더 정확하게 설명해 줍니다.

"제로섬 사고는 단순히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의 문제가 아닙니다. 오히려 같은 정당 내에서도 왜 서로 다른 목소리가 나오는지를 설명하는 핵심적인 심리 기제입니다."

실제로 민주당원이라 하더라도 제로섬 사고가 강한 이들은 이민 정책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며 이민 제한을 지지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반대로 재분배에 비판적인 공화당 지지층 안에서도, 제로섬 사고가 강한 이들은 부유층의 부가 부당하게 축적되었다고 여겨 정부의 개입에 훨씬 전향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제로섬 사고는 정당의 공식 노선보다 더 깊은 곳에서 개인의 정치적 나침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원문 수록 이미지
원문 수록 이미지

3. '아메리칸 드림'의 유무와 비대칭적 이동성

세상을 바라보는 렌즈는 가문의 경제적 궤적에 의해 닦여집니다. 연구진이 4대에 걸친 방대한 가계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세대 간 상향 이동(Upward mobility)의 경험은 제로섬 사고를 억제하는 가장 강력한 해독제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관계가 비대칭적(Asymmetric)이라는 사실입니다. 조상으로부터 본인에 이르기까지 경제적 지위가 상승한 경험은 '노력하면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긍정합(Positive-sum)의 세계관을 심어주어 제로섬 사고를 현저히 낮춥니다. 그러나 경제적 지위가 하락한 경험(Downward mobility)이 반드시 제로섬 사고를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높이지는 않았습니다. 즉, '성공의 경험'만이 세상을 제로섬의 굴레에서 벗어나 보게 만드는 핵심 동력인 셈입니다.

4. 역사의 상흔: 노예제와 이민의 유산

개인의 경험을 넘어 조상의 역사적 환경 역시 현재의 세계관에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특히 노예제는 한쪽의 자원을 완전히 수탈하는 극단적인 제로섬 시스템의 전형입니다.

연구에 따르면, 흑인 응답자들이 통계적으로 가장 강한 제로섬 사고를 보이는 배경에는 단순한 개인적 불행을 넘어선 구조적 인종주의의 역사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는 단지 조상이 직접 노예였는지 여부의 문제를 넘어섭니다. 바지(Bazzi) 등의 연구가 지적하듯, 과거 남부 백인들의 대이주와 함께 퍼져나간 '연맹국 문화 지수(Confederate Culture Index)'—린치, 기념비, KKK 등—는 노예제의 제로섬적 속성을 미국 전역의 제도와 문화에 이식했습니다. 이러한 구조적 억압 아래서 자란 이들에게 세상은 빼앗기지 않으면 빼앗는 약육강식의 장으로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1860~1920년 대이민 시기에 이민자가 많았던 지역에서 자란 조상을 둔 경우 현재의 제로섬 사고가 낮았습니다. 이민자들의 성공이 주변 공동체의 파이를 키우는 과정을 목격한 경험이 세대 간 전승을 통해 '공존의 감각'으로 남은 것입니다.

5. 왜 젊은 세대는 더 '제로섬적'인가?

통계적으로 미국의 젊은 세대는 기성세대에 비해 훨씬 강한 제로섬 사고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세대 차이가 아니라, 그들이 태어나고 자란 시대의 경제 성장률이 빚어낸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1970년대 이전 출생자들은 하위 50% 소득 성장률이 12%에서 88%에 달하던 풍요의 시대를 경험했습니다. 파이가 비약적으로 커지는 것을 보며 자란 이들에게 세상은 기회의 땅이었습니다. 하지만 1970년대 이후 출생자들은 성장률이 -5%에서 14% 사이를 오가는 정체된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성장이 멈춘 시대에 태어난 이들에게 타인의 성공은 나의 몫을 뺏어가는 위협으로 다가옵니다. "정체된 파이"를 두고 싸워야 했던 유년기의 경제적 풍경이 그들을 더 제로섬적인 사고방식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원문 수록 이미지
원문 수록 이미지

결론: 성장의 시대에서 공존의 시대로

결국 우리의 정치는 "세상의 파이가 커질 수 있다고 믿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의 모음일지도 모릅니다. 제로섬 사고는 개인의 편견이 아니라 가계의 이동성, 역사의 상흔, 그리고 시대적 성패가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제로섬적 세계관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정치는 오직 '누가 더 많이 뺏어올 것인가'를 다투는 전쟁터가 됩니다. 하지만 우리가 직면한 기후 위기와 글로벌 불평등은 더 이상 제로섬적 사고로는 해결할 수 없는 과제들입니다. 당신이 믿는 세상의 파이는 지금 커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누군가에 의해 빼앗기고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답이 당신이 지지하는 정책, 그리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습니다.

Source: Sahil Chinloy et al., Zero-Sum Thinking and the Roots of US Political Differences, American Economic Review 2026, 116(3): 1052–10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