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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경제학자가 말하는 '우리가 여전히 가난하고 비합리적인 이유': 리처드 세일러와의 대화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노해인 · 진행 / 차우진 · 분석

1. 우리는 정말 '합리적'인 존재인가?
우리는 왜 필요 없는 물건을 충동구매하고, 은퇴 준비를 자꾸 내일로 미룰까요? 전통 경제학은 인간을 완벽하게 합리적인 존재인 '이콘(Econ)'으로 정의해 왔지만, 현실의 우리는 유혹에 흔들리는 평범한 '인간(Human)'일 뿐입니다. 행동경제학의 개척자 리처드 세일러(Richard Thaler)는 경제학이 설계한 이 가상의 우상들이 어떻게 현실의 우리를 가난과 비합리성에 가두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더 인간적인 경제를 만들 수 있는지에 대해 냉철한 통찰을 제시합니다.
2. 지능의 군비 경쟁: 경제학이 '수학적 유혹'에 빠진 이유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학은 '수학적 형식화'라는 거대한 흐름에 올라탔습니다. 폴 사무엘슨(Paul Samuelson)과 켄 애로우(Ken Arrow) 같은 거장들이 주도한 이 시대에는 모델이 수학적으로 우아할수록 더 높은 가치를 인정받았습니다. 세일러는 이를 '사각형 면적 계산'에 비유합니다. 면적을 구할 때 '높이 x 너비'라는 공식은 수학적으로 가장 단순하고 아름다운 모델입니다. 실제 인간의 판단에는 '너비 혐오' 같은 복잡한 편향이 섞여 있을 수 있지만, 경제학자들은 모델의 명료함을 위해 이를 무시했습니다.
더 큰 문제는 80년대와 90년대에 벌어진 '지능의 군비 경쟁'이었습니다. 학계에서는 "내 모델 속 인간이 당신 모델보다 똑똑할 때 내 모델이 더 우월하다"는 기묘한 규범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 정점은 로버트 배로(Robert Barro)의 모델이었습니다. 이 이론 속 인간은 세금 변화에 반응할 때 자신의 자녀, 심지어 증손주 세대까지 고려해 완벽한 최적화를 수행합니다. 현실의 인간은 자신의 한 달 예산도 헷갈려 하는데 말입니다.
"내 모델의 요인이 당신 모델의 요인보다 더 똑똑할 때 내 모델이 더 낫다고 평가받았다. 이는 마치 체스 챔피언들만이 사는 세상을 모델링하는 것과 같았다."
밀턴 프리드먼(Milton Friedman)은 인간이 실제로 똑똑하지 않더라도 '마치 똑똑한 것처럼(as-if)' 행동한다고 주장하며 이 모델들을 옹호했습니다. 하지만 세일러는 단호하게 말합니다. "아니요, 인간은 전혀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3. '조카와 조카딸'의 방어기제: 이론을 수호하기 위한 지적 곡예
과거 데이터가 부족했던 시절, 전통 경제학자들은 이론적 우위를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지적 곡예'를 펼쳤습니다. 세일러는 게리 베커(Gary Becker)와의 일화를 소개합니다. 세일러가 "저소득층의 저축률이 낮다"는 데이터를 제시하자, 베커는 "그들은 자녀의 인적 자본[Human Capital: 교육 등을 통해 개인의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것]에 투자하는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에 세일러가 "그럼 자녀가 없는 빈곤층은 왜 저축하지 않느냐"고 묻자, 베커는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그들에게는 조카나 조카딸이 있을 것"이라며 억지 논리를 폈습니다. 세일러의 동료 아모스 트버스키(Amos Tversky)는 이 광경을 보고 이렇게 평했습니다. "상대방이 조카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면, 자네가 이미 이긴 걸세. 다만 그들은 절대 패배를 인정하지 않을 뿐이지."
사실 제프 베이조스(Jeff Bezos) 같은 부자가 베네치아에서 수차례 결혼식을 올려도 돈이 남는 것처럼, 소득이 높을수록 저축률이 올라가는 것은 당연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오늘날 수백만 명의 행동을 증명하는 빅데이터는 이런 억지스러운 '조카 논리'를 무너뜨리고 행동경제학의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4. 로젠왈드 홀의 20달러: 보이지 않는 손과 보이는 돈
세일러가 시카고 대학교 교수직 면접을 위해 로젠왈드 홀을 나오던 날, 길바닥에는 20달러짜리 지폐가 떨어져 있었습니다. 세일러는 망설임 없이 그 돈을 주웠습니다. 하지만 함께 걷던 전통 경제학자들은 그 돈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의 '효율적 시장 가설'에 따르면, 시장이 효율적이라면 누군가 이미 그 돈을 주웠어야 하므로 거기 지폐가 존재할 리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일화는 이론의 완벽함에 눈이 멀어 눈앞의 현실을 외면하는 기존 경제학의 맹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세일러는 이 20달러 지폐처럼, 시장의 빈틈과 인간의 비합리적 선택이 실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진짜 경제학이 시작된다고 믿습니다.
5. 세상을 바꾸는 '겸손한' 설계: 넛지라는 정치적 타협
세일러는 자신을 '겸손한 정책 제안자'라고 부릅니다. 그는 강제적인 법률보다 선택의 환경을 살짝 바꾸는 '넛지(Nudge)'가 훨씬 현실적이라고 주장합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06년 미국 은퇴 연금법입니다.
당시 세일러는 공화당 의원을 설득해 혁신적인 거래를 성사시켰습니다. 기업이 직원들을 연금에 '자동 가입(Default)'시키고 기여금을 자동으로 인상하는 ' prudent fund(신중한 펀드)'를 운영하는 조건으로, 복잡하고 까다로운 '차별 금지 규정(non-discrimination rules)' 서류 작업을 면제해 주기로 한 것입니다. 강제 저축 법안은 정치적 반대에 부딪혀 실패했겠지만, 이 '넛지'는 기업의 비용을 줄여주면서 동시에 수백만 명의 노후 자금을 확보하는 성과를 거두었습니다.
또한 그는 최근 "가입할 때 클릭 한 번이었다면, 구독 취소(Opt-out[선택적 탈퇴])도 클릭 한 번으로 가능해야 한다"는 단순한 원칙을 제안했습니다. 거창한 사회 개혁보다 이러한 작은 설계의 교정이 실질적인 삶의 질을 바꿉니다.
6. '슬러지(Sludge)'와 공포의 브랜딩: 당신의 선택을 방해하는 검은 설계
넛지가 우리를 이로운 방향으로 유도한다면, '슬러지(Sludge)'는 그 반대입니다. 기업들은 인간의 게으름과 기본 설정[Default: 사용자가 변경하지 않았을 때 적용되는 값] 선호를 악용합니다. 구글이 애플에 매년 수십억 달러를 내며 기본 검색 엔진 자리를 지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심지어 공공 정책에서도 슬러지는 발견됩니다. 오바마 케어(Affordable Care Act) 설계 당시, 경제학자들은 고공제액 보험 플랜에 '재앙적 보험(Catastrophic Insurance)'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경제학적으로는 큰 사고를 대비한다는 의미였지만, 일반 대중에게 '재앙적'이라는 단어는 공포를 유발해 오히려 자신에게 유리한 플랜임에도 가입을 꺼리게 만드는 '언어적 슬러지'로 작용했습니다.
7. '위대한 단일 이론'은 죽었다: 현실의 무질서함을 껴안기
인간의 모든 행동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위대한 이론'이 나올 수 있을까요? 세일러의 답은 "절대 불가능하다"입니다. 폰 노이만이 설계한 '기대 효용 이론[Expected Utility Theory: 불확실한 상황에서 합리적 의사결정의 기준이 되는 이론]'은 우리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에 대한 훌륭한 이정표이지만, 실제 인간의 행동은 공정성, 자제력 부족, 과잉 확신으로 가득 찬 '무질서함(Messy)'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세일러는 후배 학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메타 교훈을 남깁니다. "당신은 매몰 비용[Sunk Cost: 이미 지불되어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무시하되, 다른 모든 이들은 그것을 절대 무시하지 못한다고 가정하라." 이 유연함이야말로 행동경제학의 정수입니다. 그가 노벨상 상금을 어떻게 쓸 거냐는 질문에 "가능한 한 비합리적으로 쓸 것이다"라고 답한 것은, 이론의 엄격함보다 인간의 유쾌한 불완전함을 긍정하는 그의 철학을 보여줍니다.
8. 결론: 'Meh vs. Meh'의 미학
리처드 세일러는 자본주의가 완벽하지 않으며,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시스템들은 대개 '그저 그런 것들 사이의 선택(Meh vs. Meh)'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시스템은 조금씩 개선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모두 로봇처럼 완벽했다면 세상은 더 효율적이었겠지만, 동시에 인간미 없는 삭막한 곳이 되었을 것입니다.
경제학이 인간을 로봇으로 보지 않고, 불완전하지만 따뜻한 존재로 대할 때 비로소 우리는 더 나은 세상을 설계할 수 있습니다. 완벽함보다는 인간적인 무질서함 속에 우리가 살아가는 진짜 경제가 숨 쉬고 있습니다.
Source: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가 말하는 경제 모델이 실패하는 이유 - 리처드 탈러 출연, Capitalisn't,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