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THOR’S ORIGINAL · 원문 작성 · ARCHIVE 224412624131

인문학을 구하려다 오히려 망치고 있는 8가지 논리적 오류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노해인 · 진행 / 차우진 · 분석

글자
날짜판으로
원문 수록 이미지
원문 AI 제작 표시 보존

오늘날 인문학은 전례 없는 위기에 직면해 있습니다. 예산 삭감과 학과 통폐합이라는 거센 파도 앞에서 학계는 인문학의 존립 근거를 증명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인문학을 수호하기 위해 동원되는 그들의 방어 논리는 오히려 인문학의 고유한 가치를 떨어뜨리는 자가당착에 빠져 있습니다. 타인의 주장을 검증하는 '비판적 사고'를 가르친다고 자부하는 이들이, 정작 자신을 변호할 때는 지적 태만과 논리적 허점을 노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문학의 위기를 심화시키는 8가지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를 냉철하게 짚어봅니다.

1. 구성의 오류: 교묘하게 뒤섞인 범주

인문학의 실용성을 방어할 때 흔히 쓰이는 수법은 인문학의 범주에 수익성이 높은 인접 학문을 슬쩍 끼워 넣는 것입니다. 취업률이나 소득 통계를 제시하며 경제학이나 경영학 같은 사회과학, 혹은 법학이나 실용 예술 전공자들의 성취를 '인문학적 성과'로 둔갑시키곤 합니다. 이는 전형적인 '구성의 오류'입니다. '창조 산업'이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통계 역시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연극이나 문학보다는 소프트웨어 산업의 비중이 압도적입니다. "이들 중 하나는 다른 것들과 다르다"는 냉소적인 지적처럼, 이러한 통계 왜곡은 단기적인 방편은 될지언정 장기적으로는 인문학에 대한 대중의 신뢰를 무너뜨릴 뿐입니다.

2. 복권 당첨자의 증언: 스타 플레이어의 착시 효과

학과 존폐 위기 때마다 유명 소설가나 예술가들이 등장해 인문학 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들은 인문학이라는 생태계에서 극소수에 불과한 '복권 당첨자'일 뿐입니다.

"가장 카리스마 넘치는 대변인을 내세우는 캠페인 방식은 이해할 수 있으나, 유명 소설가들이 영문학과의 몰락을 한탄하며 등장할 때 우리는 그들의 경험이 과연 평범한 졸업생의 삶을 얼마나 대변하는지 자문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고전적인 인문학 분야는 소수의 스타가 영광을 독식하는 구조입니다. 대다수 졸업생이 처한 현실을 외면한 채 '성공한 소설가'의 서사로 학과의 유망함을 홍보하는 것은 정직하지 못한 기만입니다.

3. 수상쩍은 경제학: 부풀려진 통계의 함정

최근 영국 아카데미(British Academy)의 보고서는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10개 부문 중 8개 부문이 인문·사회과학 졸업생을 더 많이 고용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언론은 이를 두고 인문학 전공자가 이공계만큼 취업이 잘 된다고 대대적으로 보도하지만, 이는 교묘한 도구주의적 변명에 불과합니다. 이 통계는 해당 일자리의 질이나 인문학적 소양이 실제 업무에 가치를 더했는지에 대해서는 함구합니다. 단순히 저숙련 서비스직이나 인문학과 무관한 일반 사무직에 종사하는 수치를 '경제적 효용'으로 포장하는 것은 지적 나태함의 산물입니다.

4. 비판적 사고의 전유화: 학문적 오만

인문학 옹호자들이 가장 흔히 내세우는 방패는 인문학이 '비판적 사고(Critical Thinking)'의 유일한 산실이라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깊이 있는 사유와 검증의 과정은 인문학만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오히려 통계와 과학적 증거를 다루는 사회과학과 자연과학이야말로 현대 시민에게 필수적인 고도의 비판적 사고를 요구합니다. 양적 데이터를 해석하는 능력이 결여된 인문학적 사고가 과연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비판적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수 있는지에 대한 성찰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5. '동등성'이라는 허구의 수사

인문학계는 종종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분야와의 '동등한 대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이는 현실을 외면한 공허한 수사입니다. 모든 선진국에서 STEM 연구는 인문학보다 최소 수십 배 이상의 예산을 지원받으며, 실제 교육 비용 역시 훨씬 비쌉니다. 만약 두 분야가 진정으로 동등하다고 믿는다면, 예산과 자원 역시 산술적으로 평등하게 배분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지만 이를 진지하게 주장하는 이는 드뭅니다. 이는 '동등성'이라는 주장이 설득력 없는 '선의의 헛소리(benign bullshit)'에 불과함을 방증합니다.

6. 형평성 논리에 가려진 계급적 이해관계

비명문 대학의 인문학과 폐지를 두고 '엘리트주의'나 '불평등'의 잣대를 들이대는 비판도 존재합니다. 가난한 집안의 학생들이 인문학을 배울 기회를 박탈당한다는 논리입니다. 그러나 취업 전망이 불투명한 학과로 저소득층 학생들을 유인하는 것이 진정 그들을 위한 길인지 자문해야 합니다. 이는 오히려 특정 학문 분야의 다양성 지표를 높여 해당 학계의 권위를 유지하려는, 학생보다는 학문의 계급적 이해관계가 투영된 비정한 논리일 수 있습니다.

7. 윤리적 판단의 오만한 독점

기술 윤리나 정책적 의사결정에 인문학자가 반드시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경계해야 합니다. 인공지능이나 생명공학의 윤리적 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학문적 연구자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가치 판단과 트레이드오프(trade-off)의 결정은 정치인, 판사, 그리고 깨어 있는 시민들의 몫입니다. 특정 학문적 배경을 가진 전문가 그룹에게 윤리적 주도권을 위임해야 한다는 발상은 전문가주의에 함몰된 오만이며, 민주적 대의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8. '인간성'에 대한 편협한 정의

인문학만이 "인간이 된다는 것의 의미"를 가르친다는 주장만큼 오만한 것은 없습니다. 환자를 돌보는 간호학, 문명을 건설하는 토목공학, 우주의 질서를 탐구하는 수학 역시 인간 본연의 욕망과 가치를 아름답게 구현하고 있습니다. '가웨인 경과 녹색 기사'를 읽는 것만이 인간다운 삶의 핵심이라는 태도는 자기기만적 특권 의식에 불과합니다. 인간성을 탐구하는 길은 학문의 수만큼이나 다양합니다.

결론: 인문학의 진정한 가치를 향한 제언

인문학을 방어하기 위해 동원된 도구주의적이고 실용적인 변명들은 오히려 인문학을 궁색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취업률이나 경제적 지표, 혹은 윤리에 대한 독점권 같은 논리는 인문학의 본질과는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인문학 그 자체가 가진 '내재적 가치(Intrinsic worth)'를 당당히 인정하는 것이 더 강력한 옹호가 될 수 있습니다. 인문학은 다른 목적을 위한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아름답고 탐구할 가치가 있는 학문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스스로에게 솔직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우리는 인문학이 '쓸모'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자체로 가치 있기 때문에 지켜야 하는 것일까요?"

Source: John Uskglass, ARGH: the Association for the Rebuttal of Garbage about the Humanities, Wayback Machine, July 2, 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