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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코인 12년의 추적: 혁신적 화폐인가, 아니면 역사상 가장 정직한 '다단계 게임'인가?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노해인 · 진행 / 차우진 · 분석

1. '통화 유기체'에 매료되었던 낙관론자의 지적 변천사
2012년 10월, 비트코인이라는 전대미문의 '통화 유기체(monetary organism)'가 등장했을 때, 필자(JP Koning)는 이를 바라보며 학구적인 경외감에 사로잡혔습니다. '자유 은행(free banking)' 문헌을 섭렵하며 비국가적 지불 시스템에 대한 이론적 기대를 품고 있던 전문가로서, 비트코인은 사토시 나카모토가 제안한 혁명적인 '전자 현금'의 실현처럼 보였습니다. 당시 저는 "내가 은행가라면 비트코인을 두려워할 것"이라고 썼을 만큼 그 잠재력을 높게 평가했습니다.
저는 돈을 명사가 아닌 ' 한 형용사로서의 돈(money as an adjective)', 즉 통화성(Moneyness)이라는 렌즈를 통해 바라봅니다. 비트코인은 분명 처음부터 강렬한 통화성을 지닌 자산이었습니다. 그 후 12년간 'Moneyness' 블로그에 109개의 분석글을 남기고 코인데스크 등 주요 매체에 수십 개의 기사를 기고하며 그 궤적을 끈질기게 추적해 왔습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수많은 데이터가 증명하는 비트코인의 실체는 초기의 기술적 낙관주의를 냉철한 비판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12년의 기록은 비트코인이 화폐가 아닌, 전혀 다른 무언가로 변질되었음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2. 첫 번째 통찰: 관리자 없는 '재귀적 마인드 게임'의 탄생
비트코인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이를 화폐나 금, 예금이 아닌 '금융 게임(Financial Games)'의 카테고리로 재정의해야 합니다. 비트코인은 포커나 복권과 궤를 같이하는 제로섬 게임이며, 특히 먼저 진입한 자가 나중에 들어온 자의 돈을 가져가는 '얼리버드 게임(Early-bird games)'의 성격을 띱니다.
하지만 비트코인은 기존의 폰지(Ponzi)나 다단계 사기와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정직하다(Honest)'는 점입니다.
"비트코인은 계획된 범죄(Scheme)도, 사기(Scam)도 아니었다... 그것은 주도자(Schemer) 없이 자발적이었으며, 미리 정해진 규칙을 따르는 '정직한' 얼리버드 게임이었다."
여기서 '정직하다'는 수식어는 도덕적 우월함이 아니라 기술적 투명성을 의미합니다. 판돈을 들고 도망갈 관리자가 없으며, 모든 규칙이 코드로 자동화되어 누구나 감시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입니다. 비트코인이 속한 금융 게임의 계보는 다음과 같습니다.
제로섬 게임(Zero-sum games): 참여자의 이익이 다른 참여자의 손실에서 기인함 (포커, 룰렛).
얼리버드 게임(Early-bird games): 지속적인 신규 진입자가 판돈을 유지하며 초기 진입자가 이득을 보는 구조 (다단계, 연쇄 편지).
재귀적 마인드 게임(Recursive mind game): 실질적 기초 자산 없이 참여자들의 상호 신념과 상상력에만 의존해 가치를 유지하는 고도의 심리전.
3. 두 번째 통찰: '발판(Toe hold)'의 부재가 부른 치명적인 변동성
거시경제적 관점에서 비트코인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lethal problem)'는 가격을 지탱할 내재 가치, 즉 '발판(Toe hold)'이 전혀 없다는 사실입니다.
애플이나 넷플릭스 주식은 기업의 수익과 서비스라는 실질적인 발판이 있어 심리가 위축되어도 일정 수준에서 가격이 지지됩니다. 반면 비트코인은 100% '통화성(Moneyness)'으로만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는 유동성 위기나 공포가 시장을 덮칠 때 가격을 지탱할 물리적 지지대가 없음을 의미하며, 이론적으로 가격이 0으로 수렴하는 것을 막을 장치가 존재하지 않습니다. 비트코인의 가치는 순전히 타인의 상상력에 의존하는 재귀적 구조이기에, 이러한 변동성은 지불 시스템으로서의 기능을 근본적으로 방해합니다. 가치가 언제 폭락할지 모르는 자산을 안정적인 지불 수단으로 보유하려는 경제 주체는 없기 때문입니다.
4. 세 번째 통찰: '디지털 유즐리스테이늄'—실패한 서사의 분칠
초기 비트코인 옹호자들의 '전자 현금' 비전은 이제 처참히 실패했습니다. 실제 사용자들이 비트코인을 지불보다는 '매집(Hoarding)'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사실이 수많은 설문 데이터를 통해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결제 수단으로서의 활용도가 바닥을 치자, 옹호론자들은 '가치 저장 수단(Store of Value)'이나 '디지털 금'이라는 새로운 서사로 실패를 포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가치 저장'이라는 개념 자체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가격이 이토록 요동치는 자산을 가치 저장 수단이라 부르는 것은 기만입니다. 현재 비트코인은 '디지털 유즐리스테이늄(Digital Uselesstainium)'이라 불러야 마땅합니다. 살비아(salvia)나 크라톰(kratom) 판매자처럼 기존 금융망에서 퇴출당한 극히 좁은 니치 마켓에서나 겨우 숨을 붙이고 있을 뿐입니다.
"비트코인의 '운명'이 달(Moon)에 닿는 것이라고 믿는 이들에게, 비트코인을 시장 가격으로 소매점에서 지출하는 것은 가치를 낭비하는 일로 여겨진다."
이처럼 '대박'을 노리는 투기적 심리가 화폐의 순환을 가로막는 이상, 비트코인이 안정적인 경제적 토대가 될 가능성은 전무합니다.
5. 네 번째 통찰: 금지가 아닌 규제—비트코인을 '라스베이거스'처럼 다뤄라
비트코인이 위험하다고 해서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비트코인은 블록체인이라는 새로운 데이터베이스 기술에 이식된 '무해한 도박 장치'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미 온라인 도박이나 스포츠 베팅을 금지하기보다 양지로 끌어올려 규제하는 것이 더 효과적임을 알고 있습니다. 비트코인을 혁명적 기술이 아닌 하나의 '금융 게임'으로 인정하고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처럼 엄격히 규제해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규제 도구들을 적용해야 합니다.
범죄 대응 및 제재: 랜섬웨어 대응을 위해 '애국법 311조'와 '이차 제재(secondary sanctions)'를 활용하여 범죄에 연루된 거래소의 자금줄을 차단해야 합니다.
피구세(Pigouvian tax) 도입: 비트코인 채굴이 초래하는 막대한 에너지 오남용과 환경적 외부 효과를 해결하기 위해 구매 및 보유 단계에서 세금을 부과하여 사회적 비용을 내재화해야 합니다.
이용자 보호 프레임워크: 가상자산 거래소를 주식 거래소 수준으로 규제해야 합니다. 실제로 일본의 엄격한 규제 덕분에 FTX 붕괴 당시 'FTX Japan' 고객들은 전 세계에서 거의 유일하게 자산을 안전하게 보호받을 수 있었습니다. 규제는 도박 문화에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를 제공합니다.
6. 다섯 번째 통찰: 국가적 비축이 초래할 디스토피아적 경고
비트코인 자체보다 더 진실로 두려운 것은 국가가 이 게임에 직접 뛰어드는 상황입니다. 최근 논의되는 '전략적 비트코인 비축(Strategic Bitcoin Reserve)' 정책은 정부가 국민의 세금으로 포커 대회에 참가하거나 로또 번호를 전략적으로 수집하는 것만큼이나 비윤리적이고 위험한 발상입니다.
만약 정부가 이 게임에 관입하게 된다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디스토피아를 맞이할 것입니다.
'비트코인 가격 부양 부서(Department of Bitcoin Price Appreciation)'에 국가 예산의 50%가 투입되어 오직 '숫자를 올리는 것'에만 자원이 집중됩니다.
비트코인 가격 방어에 예산이 낭비되는 동안, 도로와 병원, 치안 같은 실제 사회 기반 인프라는 무너져 내립니다.
국가가 생산적인 활동 대신 집단적 도박에 집착하게 되며, 결국 국가 시스템 전체가 황폐화되는 '오렌지 코인 바이러스'의 종말을 보게 될 것입니다.
7. 결론: 강요된 게임에 참여할 것인가?
비트코인은 이미 "가방 밖으로 나온 동전(coin out of the bag)"입니다. 개인의 자유로운 의사 결정에 따라 이 게임에 참여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으며, 도박을 즐기고 싶다면 절제하는 선에서 참여하면 그만입니다. 그러나 내가 사랑하는 게임이라는 이유로, 혹은 개인의 이익을 위해 타인이나 국가 전체의 미래를 이 게임에 강제로 끌어들여서는 안 됩니다.
한 경제 칼럼니스트로서 저는 우리 사회에 마지막 질문을 던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