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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적 경영'은 전통이 아니라 '전쟁의 유산'이었다: 우리가 몰랐던 5가지 반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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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사람노해인 · 진행 / 차우진 ·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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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종신 고용은 일본의 오래된 문화일까?

오늘날 우리는 종신 고용과 연공서열을 '일본적 경영'의 상징이자, 일본의 유구한 정신문화가 투영된 결과물로 이해하곤 합니다. 이러한 고정관념의 뿌리는 1958년 미국의 인류학자 제임스 아베글렌(James Abegglen)이 펴낸 『일본의 경영(The Japanese Factory)』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일본 공장의 평생 고용(Lifetime Commitment) 체제를 일본 기업만의 독특하고 강력한 경영 기반으로 정의했고, 이는 곧 '일본 특수론'의 시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경제 사학의 관점에서 이를 냉정하게 해부해 보면 놀라운 반전이 드러납니다. 메이지학원대학의 오카자키 테츠지 교수는 비교제도분석을 통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본적 경영이 사실은 수천 년의 전통이 아닌, 불과 80여 년 전 인위적으로 설계된 시스템임을 입증했습니다. 이 글은 그 실체를 파헤치며 현대 기업 경영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2. 1920년대 일본은 지극히 '평범한' 자본주의 국가였다

놀랍게도 100년 전 일본의 경제 시스템은 현재 우리가 아는 모습과 극명하게 대비되는 오소독스(Orthodox)한 자본주의 시장 경제였습니다. 당시 일본 기업은 영미권 모델에 가까운 역동성을 보여주었습니다.

극심한 노동 유동성: 1920년대 일본의 이직은 매우 빈번했습니다. 실례로 1928년의 이직률은 무려 55%에 달했습니다. '한 우물을 파는 종신 고용'은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개념이었습니다.

철저한 주주 중심 경영: 기업 자금은 은행 대출이 아닌 주식과 사채 발행을 통해 조달되었습니다. 1900년 당시 오너 경영자의 비중은 62.5%였으며, 주주 총회는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했습니다.

시장 중심의 역동성: 대주주가 이사진을 장악하고 주주의 목소리가 경영을 좌우했으며, 적대적 매수(M&A)가 빈번하게 일어날 정도로 시장의 원리가 지배하는 구조였습니다.

즉, 우리가 '전통'이라 믿었던 시스템은 1920년대 일본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3. 현대 시스템의 진짜 뿌리는 '전시 총동원 체제'에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일본적 경영은 언제, 어떻게 생겨난 것일까요? 그 뿌리는 1930년대와 40년대, 태평양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 국가가 도입한 전시 총동원 체제에 있습니다.

당시 일본은 대공황과 금융 공황을 거치며 시장 경제에 극심한 환멸을 느낀 상태였습니다. 특히 1929년 제국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이 단 30%에 그칠 정도로 사회적 불안이 극에 달하자, 관료들은 시장의 자율성을 억제하고 통제 경제로 전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효율적인 자원 동원을 위해 다음과 같은 시스템이 '에코시스템'으로 설계되었습니다.

생활급과 보너스의 등장: 노동자의 사기를 고취하고 생존을 보장하기 위해 임금을 시장 가격이 아닌 '생활비' 기준으로 지급하기 시작했고, 상여금 제도가 널리 보급되었습니다.

메인뱅크 제도의 형성: 군수 물자 생산을 뒷받침하기 위해 은행이 기업의 자금줄을 전담하는 체제가 구축되었습니다.

"주주 권한의 제한은 1943년 군수회사법을 통해 법제화되었다. 이를 통해 경영자는 주주가 아닌 '국가 목표'를 위해 일하는 존재가 되었다."

4. 나치 독일과 소련의 계획 경제가 모델이었다?

여기서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일본 관료들이 벤치마킹한 대상입니다. 그들은 일본의 고유 전통을 살린 것이 아니라, 당시 가장 효율적인 자원 동원력을 보여주던 나치 독일의 전시 경제와 소련의 사회주의 계획 경제를 모델로 삼았습니다.

일본의 '전시 체제'는 외부의 사회주의적 계획 모델을 일본식으로 변형하여 도입한 일종의 제도적 하이브리드였습니다. 결국 일본적 경영은 문화의 산물이 아니라, 전쟁이라는 특수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선택된 인위적인 제도적 선택의 결과물이었습니다.

5. '문화'라는 핑계가 변화를 가로막고 있다

우리가 이 역사적 사실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는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 때문입니다. 오카자키 교수는 일본적 경영을 '바꿀 수 없는 고유문화'로 치부하는 순간, 시스템의 경직성이 발생하고 혁신이 가로막힌다고 경고합니다.

실제로 전시 체제를 거치며 일본 기업의 지배구조는 급격히 변했습니다. 1900년 5.5%에 불과했던 내부 승진형 경영자의 비중은 1962년 47.8%까지 치솟았습니다. 이러한 변화는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지, 혈관에 흐르는 유전자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1920년대와 30년대는 상당히 다른 시스템이 기능하고 있었다. 지금의 시스템 역시 시대의 산물일 뿐, 결코 바꿀 수 없는 것이 아니다."

6. '추격자'의 성공 공식이 '혁신가'의 발목을 잡는 이유

다론 아세모글루와 필립 아기온의 연구는 현대 경영진에게 준엄한 경고를 던집니다. 선진 기술을 모방하는 '추격(Catch-up)' 단계와 새로운 지평을 여는 '이노베이션' 단계의 전략은 근본적으로 달라야 하기 때문입니다.

추격형 전략: 선행 기술 모방과 대규모 투자가 핵심입니다. 전시 체제에서 확립된 관민 협조 및 인사이더(내부 승진자) 중심의 지식 공유 체계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이노베이션 전략: 뛰어난 경영자를 선발하는 '선별'과 창조적 파괴가 중요합니다. 하지만 과거의 성공을 경험한 인사이더들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정책 전환에 강력히 저항합니다.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은 바로 이 관민 분단에서 기인합니다. 과거에는 효율적이었던 인사이더 중심의 폐쇄적 지식 공유가 이제는 외부 지식의 유입을 가로막는 장벽이 되었습니다. 심지어 오늘날 일본의 관료와 기업들은 "어디에 정보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호소하는 반면, 해외 세력들은 첨단 기술을 동원해 일본 기업의 내밀한 정보까지 파악하고 있는 것이 서글픈 현실입니다.

7. 새로운 '협력의 장'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

우리는 과거 전후 부흥기 통산성(현 경산성)의 사례에서 돌파구를 찾아야 합니다. 당시 통산성은 자동차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기업 위에 군림하는 대신, "무엇이 필요한가"를 묻고 정책 금융이나 수입 설비 허가와 같은 구체적인 보틀넥(Bottleneck, 병목 현상)을 제거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민간과 정부가 대등한 정보를 바탕으로 '협력의 장'을 만든 것입니다.

현대 경영진에게 묻습니다. 당신이 "우리 회사의 문화"라며 고수하고 있는 경영 방식 중, 사실은 오늘날의 혁신을 가로막고 있는 '전시 체제의 유령'은 무엇입니까?

시스템은 문화라는 이름의 감옥이 아닙니다. 시대가 변했다면, 우리는 1920년대의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번 시스템을 재설계할 수 있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진정한 변화는 '전통'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나 '제도'의 실체를 직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Source: 広野 彩子,再訪・現代日本経済システムの源流 『日本的経営』の幻影をたどる

RIETI, 2026年8月12日 [リサーチインテリジェン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