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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이 열리면 부패는 사라질까? 조선에서 일제강점기까지, 재정 부패의 역설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노해인 · 진행 / 차우진 ·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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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만 바꾸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는 착각

우리는 흔히 새로운 제도가 도입되거나 규제가 완화되면 고질적인 사회 문제가 마법처럼 해결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우리 사회에는 '시장 경제'와 '경쟁의 도입'이 부패를 척결할 만병통치약인 것처럼 인식되었습니다.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워질수록 사적 이익을 위해 제도를 이용하는 지대추구(rent-seeking) 행위가 설 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이론적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사는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조선 시대부터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장기적인 재정 제도의 변화를 살펴보면, '공납제에서 계약제로의 변화'라는 거대한 시스템의 전환 속에서도 부패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시스템의 변화는 부패의 종말이 아닌, 부패의 '유형'이 시대에 맞게 진화하는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2. 반전의 역사: 시장이 발달할수록 부패는 오히려 심화되었다?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조선 후기 시장 경제가 발달하고 갑오개혁을 통해 근대적인 계약제가 도입되었음에도 부패 수준은 일관되게 낮아지지 않았습니다. 대동법 실시와 금납화(세금을 현금으로 내는 것) 이후 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면서, 부패 문제는 해결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되는 양상을 보였습니다.

시장은 부패의 완벽한 대척점이 될 수 없었습니다. 시스템이 시장 친화적으로 바뀐다 하더라도, 그 시스템을 운용하는 권력의 성격과 정보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면 시장은 오히려 부패가 더 넓고 깊게 퍼지는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역사는 증명합니다. 왜 시장은 부패를 막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시장 자체가 정의로운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 정보가 집중되느냐에 따라 부패의 도구로 전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3. 이권 카르텔의 원조, '방납'의 거대한 수익 구조

조선 시대 공납 제도(특산물을 바치는 제도)에서 발생한 '방납'은 관료와 상인이 결탁한 거대한 이권 카르텔이었습니다. 방납인은 백성을 대신해 관청에 물건을 납부하고 그 대가를 백성에게 받아냈는데,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수탈의 규모는 가혹했습니다.

"민인의 부담 중에서 50-60%가 방납인에게, 30-40%가 사주인에게 귀속되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사주인(私主人)'의 존재입니다. 이들은 방납인의 배후에서 불법 행위를 비호하고 권력을 행사하던 왕실이나 고위 관료들이었습니다. 법적으로 엄격히 금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방납이 번성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지방관, 중앙 관청의 서리, 그리고 이들을 비호하는 권력층이 거대한 수익 구조에 촘촘히 얽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4. 대동법의 역설: 개혁이 낳은 또 다른 형태의 경쟁

방납의 폐단을 막기 위해 도입된 '대동법'은 획기적인 개혁이었지만, 부패의 양상을 바꾸었을 뿐 씨앗을 제거하지는 못했습니다. 대동법 실시 이후 국가에 필요한 공물을 조달하는 특권 상인인 '공인(貢人)' 제도가 생겨났고, 이는 또 다른 형태의 지대추구 경쟁을 낳았습니다.

당시 국가가 공인에게 지급하는 물품 대금인 '공가(貢價)'는 시장 시세보다 무려 4배에서 10배나 높게 책정되어 있었습니다. 이 거대한 차액(지대)을 차지하기 위해 공인과 관료 사이에는 새로운 결탁의 고리가 형성되었습니다. 결국 제도의 변화는 부패를 없앤 것이 아니라, 부패가 발생하는 지점을 '공납 과정'에서 '조달 계약 과정'으로 옮겨 놓았을 뿐입니다.

5. 계약제와 현대적 부패: '토목담합사건'이 보여주는 것

조선의 '공인'들이 누렸던 특권은 20세기 근대화 과정에서 '토목업자'라는 이름으로 계승되었습니다. 특권을 가진 상인들이 시대에 맞춰 간판만 바꿔 단 셈입니다. 근대적인 경쟁 입찰과 계약제가 도입되었음에도 부패는 더욱 정교해졌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31년의 '대구토목담합사건'입니다.

당시 대구의 토목업자들은 치밀한 담합을 통해 공공사업을 독점했습니다. 적발된 66건의 담합에서 담합금은 전체 계약 금액의 13.5%에 달했습니다. 당시 검사는 이들의 행태를 두고 다음과 같이 일갈했습니다.

"매우 계획적으로, 매우 조직적으로, 매우 질서적으로"

시장 경제 하에서 국가는 시장의 거대한 구매자가 됩니다. 하지만 가격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감시가 소홀하면, 경쟁 입찰이라는 형식은 부패를 가리는 정교한 허울로 전락합니다. 근대적 시스템 안에서도 정보의 독점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경쟁'은 그저 조직적인 약탈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6. 시스템의 핵심 문제: 주인-대리인 문제와 정보의 비대칭

이러한 역사적 현상들의 배후에는 경제학적인 '주인-대리인 문제'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국가(주인)와 관료(대리인) 사이의 심각한 정보 비대칭성이 부패를 고착화시킨 것입니다. 관료는 재정과 과세에 대한 정보를 독점했고, 국가는 이를 감시할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무엇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재산권 보호 시스템의 부재였습니다. 조선 시대에는 백성이 부패한 지방관을 고소하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금지된 '부민고소금지법(部民告訴禁止法)'이 존재했습니다. 공공의 감시가 원천 봉쇄된 구조 속에서 대리인인 관료는 국가나 대중의 이익보다는 자신의 사적 이익을 우선시하는 유인을 강력하게 갖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법적·구조적 결함이 해결되지 않는 한, 어떤 제도를 도입해도 부패는 시스템의 틈새를 타고 번식했습니다.

7. 맺음말: 100년 전의 부패가 오늘날 우리에게 묻는 것

조선에서 일제강점기에 이르는 재정 부패의 역사는 우리에게 서늘한 교훈을 남깁니다. 부패를 막는 것은 '시장 경제'나 '계약제'라는 화려한 간판이 아닙니다. 시스템의 이름보다 중요한 것은 그 시스템 내부를 흐르는 정보의 투명성과 대리인의 일탈을 막을 수 있는 견제 장치입니다.

시장 경제의 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서는 부패라는 장애물을 단호히 제거할 수 있는 권력의 의지와 투명한 정보 공개가 필수적입니다. 100년 전의 역사를 돌아보며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과거와 다른, 정말로 투명한 시스템 속에 살고 있는가?" 과거의 공인과 토목업자들이 그랬듯, 오늘날에도 누군가는 정보의 어둠 속에서 거대한 지대를 추구하고 있지는 않은지 끊임없이 살펴야 할 것입니다.

Source: 김재호, 재정제도의 변화와 부패, 1392-1945, 경제사학 제36호,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