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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역설: 우리가 서로를 견디지 못하면서도 함께 살 수밖에 없는 이유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노해인 · 진행 / 차우진 ·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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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아침 거대한 사회라는 기계 속으로 뛰어듭니다. 복잡한 지하철 노선도를 읽고, 이름 모를 이들과 어깨를 맞대며, 난해한 법 규정을 준수하죠. 하지만 냉정하게 자문해 봅시다. 우리는 과연 이 거대한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고 있을까요? 조셉 히스(Joseph Heath)는 우리가 처한 상황을 아주 도발적인 비유로 설명합니다. 우리는 지금 작동 원리조차 모르는 '외계 기술(alien technology)'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중이라고 말입니다.

1. 우리가 다루는 '외계 기술', 사회라는 미스터리

과거 계몽주의 사상가들은 인간의 이성을 통해 사회를 완벽하게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카를 마르크스 역시 역사의 법칙을 과학적으로 규명하여 사회주의를 '과학적 토대' 위에 세우려 했죠. 어둠 속에서 아무렇게나 총을 쏘는 대신, 정교한 이론을 통해 어떤 개입이 해방을 가져올지 미리 계산하려 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떠했나요? 마르크스의 이론은 빗나갔고, 인류 문명의 위대한 진보는 정교한 설계도보다는 수많은 시행착오와 비극적인 전쟁을 거치며 얻어진 '운 좋은 결과물'에 가까웠습니다. 우리는 문법을 완벽히 설명하지 못하면서도 유창하게 말을 하듯, 사회를 운영하는 법은 알지만 그 근본적인 메커니즘은 여전히 안갯속에 가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기계의 내부 구조를 모른 채 투입과 산출만을 관찰하며 간신히 레버를 돌리고 있는 셈입니다.

2. 첫 번째 통찰: 인간은 '반사회적 사교성'을 지닌 존재다

이 미스터리의 중심에는 임마누엘 칸트가 명명한 '비사교적 사교성(unsocial sociability)'이라는 기묘한 이중성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인간은 협력 없이는 살 수 없는 사교적 존재인 동시에, 끊임없이 타인에게 저항하고 제멋대로 행동하려는 반사회적 본능을 타고났습니다.

"인간의 '비사교적' 성향이 없다면, 모든 재능은 그 싹도 틔우지 못한 채 영원히 잠들어 있었을 것이다. 인간이 그저 온순한 양처럼 지내기만 했다면, 그들의 삶은 가치를 얻지 못했을 것이며 사회는 정체되었을 것이다." - 임마누엘 칸트

칸트는 이 지독한 긴장 상태야말로 인류 진보의 엔진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는 지식의 진보와도 닮아 있습니다. 만약 모든 과학자가 완벽하게 합리적인 '베이즈주의자(Bayesian)'라면, 주류 학계가 거부하는 엉뚱한 이론에 매달리는 '비합리적인' 행동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학의 역사는 바로 그 소수의 집요하고 비합리적인 이단자들에 의해 도약했습니다. 즉, 집단적인 진보를 위해서는 구성원 중 일부가 시스템에 순응하지 않는 '부적응자'여야 한다는 역설이 성립합니다.

3. 두 번째 통찰: 우리는 '반쯤 길들여진' 유인원들의 사회에 살고 있다

인류학자 리처드 랭엄(Richard Wrangham)은 인류가 공격적인 개체를 집단에서 제거하는 '알파 처단(offing the alphas)' 과정을 통해 스스로를 가축화해 왔다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조셉 히스는 우리가 완전히 순해진 존재가 아니라, 고작 '반쯤 길들여진 유인원(semi-domesticated primates)'일 뿐이라는 점을 지적합니다.

문명이란 결국 이 야생성이 남은 유인원들을 통제하기 위해 덧대어진 정교한 '임시방편(kluges)'이자 '속임수(tricks)'의 집합체입니다.

문명은 규칙을 명문화하고 폭력을 독점한 전문가 집단을 동원합니다.

익명의 거대 사회에서도 우리가 선을 넘지 않도록 감시와 처벌을 배치합니다.

위계질서를 통해 반사회적 충동을 억누르고 가짜 도덕성을 유지하게 합니다.

우리는 일대일 관계에서는 타고난 협동심을 발휘하지만, 사회 규모가 커지면 그 본능은 즉각 바닥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과 사회적 기대 사이의 거대한 간극을 메우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을 억누르고 '문명인'인 척 연기해야 하는 고통을 감수합니다.

4. 세 번째 통찰: '악마들의 경주'를 이용하는 영리한 시스템

인류가 발명한 가장 영리한 '속임수' 중 하나는 구성원 모두를 성인군자로 만들려 애쓰는 대신, 그들의 이기심을 역이용하는 것입니다. 칸트는 만약 충분히 지능적이기만 하다면, '악마들로 이루어진 민족'조차도 국가를 조직하고 평화를 유지할 수 있다고 단언했습니다.

"국가를 조직하는 문제는 아무리 어려워 보여도 지능적인 악마들이라면 해결할 수 있다. 그들이 각자 사적인 의도에서는 법망을 피하고 싶어 하더라도,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게끔 헌법을 세운다면 그들의 공적 행위는 마치 그런 사악한 의도가 없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 임마누엘 칸트

시장과 같은 '대립적 제도(adversarial institutions)'가 바로 이 원리로 작동합니다. 이 시스템은 개인에게 숭고한 도덕적 의지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각자의 이기심이 서로를 견제하게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공공의 이익을 창출합니다. 이는 개개인이 짊어져야 할 '동기 부여의 부담(motivational burden)'을 획기적으로 줄여주면서도, 거대 사회의 협력을 가능케 하는 탁월한 사회적 기술입니다.

5. 네 번째 통찰: 두 가지 디스토피아, '벌집'과 '매연'

오늘날 세계는 사회를 바라보는 두 가지 극단적이고도 매력 없는(unattractive) 모델 사이에서 요동치고 있습니다.

중국: 공리주의적 '벌집' 모델

사회를 거대한 기계로, 개인을 부품으로 취급합니다.

코로나19 당시 '방역 요원(Big White)'들이 보여준 압도적인 통제처럼, 전체의 효용을 위해 개인의 삶을 가차 없이 희생시키는 '공리주의'의 극단입니다.

위계질서를 통해 친사회적 행동을 극대화하지만, 권력층의 부패와 경직성이라는 치명적 결함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미국: 반사회적 '매연(Rolling Coal)' 모델

반사회적 행동에 대한 과도한 관용을 '자유'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환경 규제를 조롱하며 일부러 검은 매연을 뿜어내는 '롤링 콜(Rolling coal)'처럼, 공동체의 요구에 대해 "좆이나 까(Fuck you)"라고 외치는 것을 훈장처럼 여깁니다.

밴드 '레이지 어게인스트 더 머신(RATM)'의 잭 드 라 로차(Zack de la Rocha)가 노래했듯, 어떤 합당한 이유가 있든 "시키는 대로 하지 않겠다"는 반사회적 충동이 좌우를 막론하고 미국인의 심저에 흐르고 있습니다.

중국이 개인의 고유성을 지워버린 숨 막히는 '벌집'이라면, 미국은 시스템을 고치기보다는 복잡한 우회로를 찾으며 서서히 기능이 정지되어가는 '난장판'입니다. 두 모델 모두 인류의 미래로서 그리 달가운 선택지는 아닙니다.

6. 결론: 우리에게는 여전히 '무임승차자'가 필요하다

조셉 히스의 결론은 우리에게 당혹스러운 질문을 던집니다. 만약 우리가 한 알의 약으로 완벽한 도덕성을 갖게 되어, 모두가 규칙을 칼같이 지키고 갈등이 사라진 사회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이러니하게도 인류의 진보는 거기서 멈출 것입니다. 과학의 도약이 '나쁜 베이즈주의자'를 필요로 하듯, 문명의 진화는 시스템에 균열을 내는 '부적응자'와 '무임승차자'를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질서와 혼돈, 친사회성과 반사회성 사이의 이 아슬아슬하고 역동적인 긴장이야말로 우리가 문명이라 부르는 기계를 돌리는 진짜 연료입니다.

결국 우리는 중국식의 가혹한 위계질서와 미국식의 난폭한 무질서 사이에서, 인간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대규모 협력을 유지할 '제3의 사회적 기술'을 발명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만약 갈등과 반항이 거세된 완벽하게 도덕적인 사회가 가능하다면, 여러분은 그 세상을 꿈꾸시겠습니까? 아니면 그 평온함 속에 감춰진 정체를 두려워하시겠습니까? 인류의 진보는 어쩌면 우리가 서로를 견디지 못하는 그 괴로움 속에서 계속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Source: Joseph Heath, The Outliers Torn between two unattractive models of human civilization, In Due Course, Mar 06,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