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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세상을 다 안다고 착각하는 이유: '덜 멍청해지기' 위한 조셉 히스의 5가지 통찰

필자 Econ Blog_K의 공개 원문을 허락받아 자동 수집했습니다. 문장과 이미지 순서를 보존하고 지면 폭만 조정했습니다.

이야기하는 사람노해인 · 진행 / 차우진 ·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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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덕적 우월감이라는 함정

우리는 종종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하며 자신의 도덕적 확신을 전시하곤 합니다. 하지만 그 뜨거운 분노가 사실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지독한 무지를 가리기 위한 가림막이라면 어떨까요? 철학자 조셉 히스는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나는 젊었을 때 완전히 헛소리(full of shit)로 가득 차 있었다"고 서늘할 정도로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는 단순히 정치적 노선이 바뀐 것이 아니라, 시간이 흐르며 자신이 ‘덜 멍청해지는 과정’을 겪었다고 말합니다. 이 글은 우리가 지닌 근거 없는 도덕적 우월감을 해체하고, 세상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냉철한 자기 객관화와 지적 성숙에 관한 기록입니다.

2. 불의(Injustice)라는 이름의 새로운 원죄: 세속화된 종교적 세계관

히스는 젊은 시절 자신이 가졌던 세계관이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60년대 반문화 이데올로기와 가톨릭 사회 교리의 기묘한 결합이었다고 분석합니다. 두 세계관은 세부적으로는 달랐지만, 인류의 상태를 '깊이 타락하고 부도덕한 것'으로 상정한다는 점에서 일치했습니다. 가톨릭이 이를 '원죄' 탓으로 돌렸다면, 히피들은 이를 '시스템'의 탓으로 돌렸을 뿐입니다.

무신론자가 된 후에도 히스는 이 부정적인 세계관의 '틀'을 유지했습니다. 그는 기독교적 '죄'라는 단어를 '불의(Injustice)'로 치환하고, '천국'이 차지하던 자리에 '좌파적 유토피아'를 끼워 넣었습니다. 이는 세상을 구원할 구체적인 방법론 없이도 타인을 비난함으로써 손쉽게 도덕적 우월감을 얻게 해주는 장치였습니다. 즉, 지적 탐구 없이 도덕적 낙인찍기만으로 세상을 다 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나는 세상이 왜 그렇게 돌아가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했으면서도, 사회에 대한 강렬한 도덕적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 나의 도덕적 우월감은 그 어떤 노력으로도 획득되지 않은, 전적으로 부당한 것이었다."

3. 아나키스트의 사각지대: "그래서 화폐는 누가 관리하는데?"

대학 시절 히스가 선택한 정체성은 아나키즘이었습니다. 당시 아나키즘은 "기존 시스템을 다 불태워버려라!"와 같은 급진적인 포즈를 취하면서도, '그 시스템을 무엇으로 대체할 것인가'라는 복잡하고 고통스러운 질문을 회피하기에 아주 유용한 도구였습니다. 대안의 부재를 급진성으로 포장한 셈입니다.

이 지적인 나태함은 직장 동료였던 레바논 출신의 미셸 하비브가 던진 짧은 질문 하나에 무너졌습니다. "정부가 없다면 화폐는 누가 관리하느냐?"는 질문이었습니다. 중앙은행이나 통화 시스템에 대해 단 1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히스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정치적 질문들을 전혀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음을 깨달았습니다. 진지한 사람이라면 대안 시스템의 실제적인 작동 방식에 대해 답을 가지고 있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4. 비판 이론의 오만과 게임 이론의 겸손: '계산 문제'의 발견

아나키즘을 버린 히스는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비판 이론'에 매몰되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원 시절, 정치학자 짐 존슨은 철학도들의 허세를 단칼에 베어버렸습니다. "너희는 도구적 이성을 비판한다면서 정작 그게 뭔지도 모르지 않느냐. 가서 의사결정 과학(게임 이론)이나 제대로 배워와라."

실제로 게임 이론을 공부하며 히스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마르크스가 사회적 주장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행위-이론적 기제(action-theoretic mechanism)'를 결코 제공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또한 알렉 노브(Alec Nove)의 저작을 통해 사회주의 체제에서의 '계산 문제(calculation problem)'를 이해하게 되면서, 단순히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것보다 시스템이 작동 가능하게 만드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인간 상호작용의 논리를 무시한 비판은 그저 공허한 외침일 뿐이었습니다.

5. "그 기업이 어떤 종류죠?": 채권도 모르는 경영 윤리 교수

토론토 대학교에서 경영 윤리를 가르치게 된 히스는 인생에서 가장 '창피한' 순간을 마주합니다. 자본주의를 매섭게 비판해 온 철학 교수였음에도, 정작 경영 전공 학생들의 아주 기초적인 질문에도 답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결코 "가장 똑똑한 학생들(not the sharpest pencils)"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질문은 치명적이었습니다.

학생들은 물었습니다. "교수님이 비판하시는 그 '기업'은 어떤 형태인가요?", "주식은 어떤 클래스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히스는 주식 시장의 작동 원리도, 채권(bond)이 무엇인지도, 기업공개(IPO)나 이사회의 역할도 몰랐습니다. 19세기 정치경제학의 낡은 도식에 갇혀 현대 자본주의의 실체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는 대상을 도덕적으로 심판하기 전에, 그 대상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수평적 통합이 무엇인지, 기업 제어 거래가 어떻게 일어나는지 등) 공부하는 것이 '덜 멍청해지는' 핵심 단계임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6. 믿음의 동기는 이유보다 중요하다: 지적 수용성의 형성

히스는 사람들이 특정한 가치를 믿는 이유가 논리적인 '근거' 때문이 아니라, 특정한 결론에 도달하고 싶어 하는 '동기' 때문일 수 있다는 최종 통찰을 제시합니다. 그는 젊은 시절 존 스튜어트 밀의 저작을 읽었을 때 그가 모든 면에서 틀렸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자신의 무지를 인정할 준비가 되고 나서야 밀이 대부분 옳았음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지식이 부족해서 잘못된 믿음을 갖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불합리함을 인정하기 싫은 마음이나, 비판을 통해 얻는 도덕적 쾌감을 유지하려는 욕망이 눈을 가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적 성장은 더 많은 지식을 쌓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수용성(receptivity)'을 키우는 과정입니다.

"지식의 습득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불합리함을 직시할 수 있는 용기다."

7. 결론: 당신은 무엇을 모르는지 알고 있는가?

조셉 히스의 여정은 우리가 세상을 향해 던지는 냉소와 도덕적 비난이 얼마나 허약한 기초 위에 서 있을 수 있는지를 폭로합니다. 진정으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시스템의 작동 원리에 대한 성실하고 고통스러운 탐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인정하고, 복잡한 현실의 메커니즘을 파헤치는 '지적 겸손'을 갖출 때 비로소 우리는 조금씩 '덜 멍청한' 상태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오늘 당신이 내뱉은 확신 가득한 비판 중, 그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단 10분이라도 진지하게 탐구하고 내린 결론은 얼마나 됩니까? 도덕적 분노라는 쉬운 길 뒤에 당신의 지적 나태함을 숨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Source: Joseph Heath, On becoming less full of shit, In Due Course, Jul 25,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