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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마약의 지독한 공생: 우리가 몰랐던 역사적 반전 5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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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사람노해인 · 진행 / 차우진 ·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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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마약과의 전쟁(War on Drugs)'이라는 표현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합니다. 대개 국공권력이 불법 마약 조직을 소탕하는 정의로운 싸움을 연상하곤 하죠. 하지만 역사의 페이지를 한 꺼풀만 들춰보면, 마약과 전쟁은 단순히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 수천 년 동안 서로를 먹여 살리며 발전해 온 '지독한 공생 관계'였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브라운 대학교의 정치학자 피터 안드레아스(Peter Andreas) 교수는 마약이 단순한 범죄의 영역을 넘어, 국가가 전략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핵심 도구이자 '국가 건설(Statecraft)'의 연료였다고 분석합니다. 때로는 전쟁의 자금을 대기 위해, 때로는 군대의 전투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국가가 직접 마약의 확산을 주도했던 역사의 아이러니를 다섯 가지 반전을 통해 짚어보겠습니다.

[반전 1] 보드카가 세운 제국, 술 때문에 무너지다: '전쟁의 연료'가 된 독주

러시아 제국은 마약을 국가 재정의 핵심으로 삼았던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이러한 전통은 일찍이 1474년 이반 3세가 보드카 전매제를 도입하며 시작되었습니다. 러시아는 보드카 판매 수익으로 얻은 막대한 세금을 바탕으로 유럽 최대 규모의 육군을 육성하고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전쟁을 위해 술을 팔았던 이 전략은 정작 전장에서 비극적인 부메랑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1904년 러일전쟁 당시, 만주 벌판의 참호 속 러시아 군대의 상태는 처참했습니다. 비틀거리는 병사들은 물론이고, 지휘관부터 수병들까지 제정신인 자를 찾기 힘들 정도로 만취해 있었습니다. '전쟁의 연료'였던 보드카가 정작 실전에서는 병사들을 무력하게 만들어 패배를 자초한 것입니다.

"주류 판매 수익은 러시아 국가 전체 운영 예산의 무려 3분의 1을 차지했으며, 이는 유럽에서 가장 큰 상비군을 유지하는 비용을 충당하기에 충분한 액수였다."

[반전 2] 합성 마약이 만든 '전격전': 2차 세계대전의 숨은 동력, 메스암페타민

제2차 세계대전은 인류 역사상 '최초의 대규모 합성 마약 전쟁'이었습니다. 특히 나치 독일의 초기 승리 뒤에는 '페르비틴(Pervitin)'이라는 이름의 메스암페타민(필로폰)이 있었습니다. 1940년 5월 프랑스 침공 당시, 독일 전차 부대는 아르덴 숲을 통과하며 11일 동안 단 한숨도 자지 않고 진격했습니다. 연합군이 상상조차 못한 이 '전격전'의 속도는 사실 약물이 만들어낸 광기 어린 각성 상태 덕분이었습니다.

나치 정권은 마약 중독자를 '열등한 존재'로 비난하며 탄압했지만, 전장의 군인들에게는 '슈퍼 솔저'가 되기 위한 도구로 마약을 적극 권장했습니다. 나치 정권의 이 지독한 모순은 다음 데이터를 통해 명확히 드러납니다.

독일군의 마약 보급량: 1940년 4월에서 7월 사이, 독일 군인들에게 3,500만 알 이상의 메스암페타민 정제가 보급되었습니다.

[반전 3] 아편을 팔아 찻값을 대다: 영국의 기묘한 마약 경제학

흔히 '아편전쟁'이라 불리는 이 사건의 이면에는 '아편'과 '차(Tea)'라는 두 마약성 물질의 경제적 충돌이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인들은 중국산 차에 완전히 중독되어 있었고, 영국 왕실은 차 수입을 통해 얻는 관세 수입에 중독되어 있었습니다. 즉, 제국 자체가 '찻값'에 중독된 상태였습니다.

문제는 중국이 차 대금으로 은(Silver)만을 요구했다는 점입니다. 영국의 재정이 바닥을 드러내자, 그들이 선택한 해결책은 남아시아에서 재배한 아편을 중국에 밀매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영국은 중국인들을 아편에 중독시켜 얻은 수익으로 자신들의 찻값을 지불한 셈입니다. 안드레아스 교수는 이를 두고 "영국 국가 자체가 차 수익에 중독되었기에 아편전쟁을 일으켰다"고 분석합니다.

[반전 4] 전쟁이 바꾼 우리의 입맛: 커피와 담배가 일상이 된 이유

전쟁은 사람들의 기호품을 바꾸고, 특정 물질을 일상의 문화로 정착시키기도 합니다. 여기에는 치밀한 경제적 필연성이 숨어 있습니다.

애국적인 커피와 위스키: 미국 독립전쟁 이전까지 미국인들은 홍차를 즐겼습니다. 하지만 영국 통치에 저항하며 '영국적인' 홍차 대신 '애국적인' 커피를 선택했습니다. 또한 당시 미국인들은 영국산 당밀로 만든 럼주 대신, 국내의 잉여 곡물을 활용해 생산할 수 있는 위스키를 선택했습니다. 수입품에 의존하지 않는 위스키는 자립과 독립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담배의 대중화: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담배는 공포와 지루함을 견뎌야 하는 군인들에게 필수 보급품이었습니다. 전쟁의 스트레스를 잠재우는 신경 안정제로 활용된 담배는 군인들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갔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 묻는다면, 나는 총알만큼이나 담배가 필요하다고 대답하겠다. 담배는 일일 배급량만큼이나 필수적이다." — 미 육군 사령관 퍼싱 장군

[반전 5] 경찰의 군대화: '마약과의 전쟁'이 남긴 현대적 유산

현대의 '마약 금지 정책'은 국내 치안 시스템을 군사화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본래 군대는 외부의 적을 향하고 경찰은 내부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마약과의 전쟁이 시작되면서 이 경계가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미국에서는 19세기 남북전쟁 이후 군대의 국내 법 집행 개입을 금지했던 '포세 코미타투스법(Posse Comitatus Act)'의 취지가 약화되면서 경찰이 군대식 장비와 전술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1980년대 연간 300건에 불과했던 특수기동대(SWAT)의 투입 건수는 1995년 3만 건으로 폭증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국가 기관들이 해외의 전략적 이익을 위해 우방국의 마약 밀매를 묵인하는 '급진적 실용주의'를 택하기도 했습니다. 냉전기 CIA가 반공 세력을 지원하기 위해 동남아시아나 아프가니스탄의 마약 자금줄을 외면했던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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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끊을 수 없는 습관, 전쟁과 마약의 미래

역사는 "전쟁은 마약을 만들고, 마약은 전쟁을 만든다"는 사실을 증명합니다. 마약은 전쟁의 자금을 대고 군인의 수행 능력을 높이는 도구가 되었으며, 전쟁은 새로운 마약을 탄생시키고 전파하는 경로가 되었습니다.

안드레아스 교수는 전쟁 자체를 일종의 '아드레날린 중독'으로 봅니다. 격렬한 전투가 주는 고조된 흥분은 실제 마약 복용 시와 유사한 뇌세포의 변화를 일으킵니다. 전쟁터에서 돌아온 군인들이 느끼는 허무함과 일상의 부적응은 마약의 '금단 증상'과 닮아 있으며, 이 고통을 잊기 위해 다시 약물을 찾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인류가 전쟁이라는 이 지독하고 오래된 습관을 완전히 끊어내지 못하는 한, 마약과의 기묘한 공생은 앞으로도 계속되지 않을까요? 전쟁이라는 거대한 '하이(High)' 끝에 찾아올 인류의 금단 증상을 우리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까요.

Source:Peter Andreas, Drugs and War: What Is the Relationship? Annual Review of Political Science No 22,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