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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연구의 대전환: 우리가 타자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꿀 3가지 원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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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사람노해인 · 진행 / 차우진 ·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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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의 위기가 논의될 때마다 아시아 전공자들은 유독 곤혹스러운 질문을 마주하곤 합니다. "그래서, 아시아를 연구해서 어디에 쓰나요?" 이 질문 뒤에는 실용주의적 회의론이나 단순한 호기심이 깔려 있습니다. 도널드 R. 데이비스(Donald R. Davis) 교수 역시 자신의 수업에서 전공자들이 느끼는 이러한 '무력감(helplessness)'을 목격했습니다.

그는 학술지 《아시아 연구 저널(The Journal of Asian Studies)》에 발표한 논문 〈아시아 인문학을 위한 세 가지 원칙(Three Principles for an Asian Humanities)〉을 통해, 아시아 연구가 단순히 지리적 정보를 수집하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다움(Humanity)을 회복하는 윤리적 선언문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우리가 타자를 대하는 태도에 근본적인 균열을 낼 3가지 혁신적인 원칙을 소개합니다.

1. 원칙 1: 아는 것보다 '아끼는 것'이 먼저다 (Care First)

아시아 인문학의 첫 번째 윤리는 '먼저 아끼는 것(Care First)'입니다. 여기서 '아낀다'는 것은 대상에 대한 지적인 관심을 넘어, 그들의 안녕을 살피는 윤리적 책임을 뜻합니다. 데이비스는 에마누엘 레비나스(Emmanuel Lévinas)의 철학을 빌려, 지식 습득보다 윤리가 우선되어야 함을 역설합니다.

우리는 흔히 상대를 '안다'고 자부할 때, 상대를 자신의 지적 틀 안에 가두는 '전체화(Totalization)'의 함정에 빠집니다. 하지만 진정한 타자는 결코 지식으로 완전히 점유될 수 없는 '깊은 타자성(Deep Alterity)'을 지닙니다. 레비나스는 타자의 '얼굴'에서 '무력한 영아의 취약함(vulnerability of a helpless infant)'과 같은 원초적인 부름을 봅니다.

"지식과 존재 사이의 상관관계, 즉 관조적 주제화는 차이를 드러내면서도 그 차이가 결국 '진리' 안에서 극복됨을 보여준다. 여기서 알려진 대상은 지식에 의해 이해되고 점유되며, 말하자면 그 타자성으로부터 박탈당하게 된다."

이 관점에서 언어 학습은 단순한 스펙 쌓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타자의 목소리(Saying)에 귀를 기울이고 그들의 존재 권리를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데이비스에 따르면, 타자의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연구자가 타자에 대해 말할 권리를 얻는 과정이자, 자신의 존재를 윤리적으로 '정당화(justification of being)'하는 치열한 노력입니다.

2. 원칙 2: '대해서' 배우지 말고, '로부터' 배워라 (Learn From)

기존의 지역 연구는 서구의 제국주의적 목적이나 정책 수립을 위해 정보를 수집하는 '~에 대해 배우는(Learn About)' 시스템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데이비스는 아시아를 지적 파트너로 삼아 '~로부터 배우는(Learn From)' 인문학적 태도를 강조합니다.

오늘날 대학은 흔히 '아테네와 예루살렘의 후예'라 불리는 '그리스적 혈통(Greek pedigree)'에 경도되어 있습니다. 이 속에서 플라톤은 현대 정치를 사유하는 필수 파트너지만, 인도의 카우틸랴(Kautilya)가 쓴 《실리론(Arthaśāstra)》은 그저 고대 유물로만 취급되곤 합니다.

Learn About (대상화): 카우틸랴의 텍스트를 과거의 데이터나 박물관의 전시물처럼 분석하는 것.

Learn From (내면화): 카우틸랴의 통찰을 빌려 오늘날의 국가론과 통치 술책을 다시 고민하는 파트너십.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Hans-Georg Gadamer)의 '지평의 융합'처럼, 진정한 배움은 자신의 편견을 인식하고 타자의 진리에 의해 스스로가 변화될 준비를 마칠 때 일어납니다. 아시아의 사상을 현대적 사유의 도구로 받아들일 때, 인문학은 비로소 서구 중심주의라는 '좁은 지평'을 넘어 확장될 수 있습니다.

3. 원칙 3: 역사는 고립된 상자가 아니라 '연결된 실'이다 (Connect Histories)

세 번째 원칙은 산자이 수브라마냠(Sanjay Subrahmanyam)의 '연결된 역사(Connected Histories)' 개념을 수용하는 것입니다. 아시아를 고정된 지리적 단위나 폐쇄된 문화적 '상자'로 보지 말고, 끊임없이 이동하고 상호작용하는 관계망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지역 연구가 특정 지역의 특수성만 강조하며 고립될 때, 그것은 '프랑켄슈타인 괴물'과 같은 박제된 지식이 됩니다. 실제 역사는 부서지기 쉬운 수많은 '연결된 실'로 촘촘히 얽혀 있습니다.

구체적 연결성: 근대 유럽의 풍요와 국가 형성 이면에는 대서양 노예 무역(Atlantic slave trade), 계약직 아시아 노동(bonded Asian labor), 그리고 초국적 기업(transnational corporation)의 활동이 복잡하게 얽혀 있습니다.

윤리적 책임: 우리가 타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단순한 지식의 확장이 아닙니다. 그것은 타자의 고통과 과거가 곧 나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는 윤리적 책임감을 일깨우는 과정입니다.

특별한 통찰: 함께 기뻐하는 마음, '아누모다나(Anumodana)'

데이비스는 논문의 마지막에서 자이나교의 개념인 '아누모다나(Anumodana)'를 소개합니다. 이는 타인의 선행이나 성공을 곁에서 함께 기뻐하고 찬탄한다는 의미입니다.

"아누모다나를 실천하는 것은, 아시아의 사상이 서구 인문학 사유의 순수한 혈통을 오염시키지 못하도록 그들을 별도의 방에 가두어 두었던 '격리(quarantining)'의 장벽을 허무는 일이다."

타자의 뛰어난 성취를 나의 일처럼 기뻐하는 습관은 인종적, 문화적 장벽을 허무는 강력한 도구가 됩니다. 인문학은 지식을 소유하는 장소가 아니라, 타인에 대한 '칭찬의 공적 역할'을 회복하고 서로의 탁월함을 찬탄하는 장소가 되어야 합니다.

결론: 인문학은 결국 '우리가 누구인가'를 묻는 과정

아시아 인문학의 세 가지 원칙—아끼고, 배우고, 연결하는 것—은 결국 진정한 '인간다움'의 회복으로 귀결됩니다. 아시아를 연구한다는 것은 단순히 '저들'에 대한 정보를 모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인간성의 새로운 국면을 발견하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누구인가'를 끊임없이 재정의하는 작업입니다.

데이비스는 이런 인문학이야말로 "어떤 방어도 필요하지 않은 교육의 본질"이라고 말합니다. 지식은 타자를 지배하는 권력이 될 수도 있지만, 상대를 향한 깊은 책임감이 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의 지식은 지금 어느 방향을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타자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들을 준비가 되었습니까?

Source: Donald R. Davis,Three Principles for an Asian Humanities: Care First ... Learn From ... Connect Histories, The Journal of Asian Studies , Feb 2015, Vol. 74, No.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