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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은 정말 근대의 '발명품'일까? 우리가 몰랐던 민족주의의 깊고 오래된 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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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사람노해인 · 진행 / 차우진 · 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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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민족은 18세기에 만들어졌다"는 상식에 대한 도전

오늘날 지성계에서 민족주의를 근대 산업화와 인쇄 기술이 낳은 '인위적 구성물'로 보는 것은 하나의 거대한 도그마가 되었습니다. 베네딕트 앤더슨이나 에르네스트 겔너 등이 정립한 이 '모더니즘 패러다임'은 민족을 근대 국가가 대중을 동원하기 위해 '발명'한 신화적 장치로 규정합니다. 그러나 역사학자 아자르 가트(Azar Gat)는 이러한 시각이 1945년 이후 나치즘의 광기를 경험한 서구 자유주의 학계의 편향된 사상사적 풍토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합니다. 민족은 근대의 표면적인 조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수천 년 전부터 국가라는 정치적 실체와 결합하여 인류 역사를 움직여 온, 지극히 오래되고 깊은 뿌리를 가진 현상입니다.

2. 정치적 에스니시티: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본능의 정치학

아자르 가트는 '정치적 에스니시티(Political Ethnicity)'라는 개념을 통해 민족주의의 기원을 인간 본성에서 찾습니다. 그에 따르면 민족주의는 근대의 기획자들이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류의 진화 과정에서 생존을 위해 각인된 '친족-문화적 유대감(kin-culture affinity)'이라는 본능적 토대 위에 세워졌습니다. 인간은 가족과 부족을 넘어 자신과 문화를 공유하는 집단에 편향된 유대감을 느끼도록 진화했으며, 이러한 에스니시티는 정치가 시작된 이래 언제나 강력한 정치적 동력으로 작용해 왔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국가와 민족의 관계입니다. 가트는 국가가 민족을 일방적으로 만든 것이 아니라, 민족과 국가가 서로를 강화하는 '변증법적 상호작용'을 거쳤다고 설명합니다. 이미 존재하는 민족적 토대 위에서 국가를 건설하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월등히 수월(exceedingly easier)'했습니다. 즉, 민족적 동질성은 통치의 정당성을 부여하고 결속력을 높이는 핵심 자산이었으며, 국가는 이를 다시 제도적으로 공고히 하며 민족 정체성을 강화해 온 것입니다.

3. 침묵하는 다수의 외침: 농민들은 왜 '외국인 통치자'에 저항했는가?

모더니즘 이론가들은 전근대 농민들이 고립된 마을에 갇혀 민족 의식이 결여된 상태였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가트는 이를 역사적 실체를 왜곡한 희화화라고 비판합니다. 문자 기록을 남기지 못한 민중들은 '문자 기록의 공백을 실천적 저항의 궤적으로 메우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증명했습니다.

역사적 사례를 보면, 민중들은 단순히 지배층이 바뀌는 것에 무관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억압할지언정 '미운 우리 주인(own hated masters)'을 선호했지, 침략해 온 '잔인한 외지인(bloody foreigners)'의 통치를 결코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목숨과 재산을 걸고 벌인 수많은 봉기는 단순한 침략에 대한 반발을 넘어, 자신들의 집단적 정체성을 지키려는 '집단적 자유(Collective Freedom)'를 향한 투쟁이었습니다.

4. 인쇄기 이전의 '상상된 공동체': 구비 문학과 종교의 힘

베네딕트 앤더슨은 인쇄 기술이 민족이라는 공동체를 상상하게 만들었다고 보았으나, 가트는 인쇄기 이전에도 민족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대중문화 체계가 존재했음을 강조합니다. 바로 방랑 시인(wandering bards)들이 읊조리던 구비 서사시와 종교적 의례입니다. 마을 곳곳에 뻗어 있는 종교적 네트워크와 설교는 문맹인 민중들에게도 민족적 정체성을 전파하는 핵심 통로였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잔 다르크(Joan of Arc)는 시골 마을에서 자란 소녀였음에도 불구하고 강력한 국가적 사명감을 품었습니다. 이는 당시의 종교적 네트워크가 이미 민중의 언어(vernacular)로 민족적 메시지를 전파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가트는 앤더슨이 놓친 전근대적 '상상된 공동체'의 실체를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민족은 널리 상상되었으며, 거룩하고 신의 선택을 받은 것으로 여겨졌다."

5. 유럽 중심주의를 넘어서: 기원전 3000년의 이집트와 동아시아의 사례

민족주의가 근대 유럽의 전유물이라는 생각은 협소한 시각입니다. 역사적 데이터를 살펴보면, 기원전 3000년경 통일된 이집트는 이미 문화와 민족, 영토가 일치하는 세계 최초의 영토적 민족 국가였습니다. 고대 근동의 이스라엘, 모압 등도 민족 국가의 형태를 띠었으나, 아시리아와 같은 '제국이라는 거대 병기(imperial juggernauts)'에 의해 그 흐름이 중단되었을 뿐입니다.

동아시아의 사례는 더욱 독보적입니다. 한국, 중국, 일본은 수천 년 동안 민족과 국가의 경계가 일치해 온 드문 사례입니다. 특히 전근대 중국은 이미 전국적인 유교 학교 시스템과 징병제를 운영하며 현대 민족주의의 기제와 유사한 '민족주의의 작업장'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가트는 이러한 민족적 뿌리가 없었다면, 수천 년에 걸친 이들 국가의 독자적인 문화적·정치적 지속성은 설명될 수 없다고 분석합니다.

6. 단어의 역사: 1416년 콘스탄츠 공의회에서 발견된 'Natio'

'Nation'이라는 단어가 근대의 신조어라는 주장 또한 문헌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1416년 콘스탄츠 공의회(Council of Constance) 기록을 보면, 당시 유럽인들은 이미 현대적인 의미의 민족 개념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영국 대표단은 민족(Natio)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습니다.

"혈연 관계와 일치된 습속, 혹은 언어의 특이성으로 구분되는 인민"

무엇보다 놀라운 점은, 당시 이들이 민족을 '군주의 지배 범위를 넘어서는 개념'으로 파악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스페인이라는 한 민족 안에 여러 국왕이 존재하더라도 그들이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는 민족이 군주의 주권에 종속된 부속물이 아니라, 혈연과 문화로 결속된 독립적인 실체임을 이미 600년 전에 간파하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7. 결론: 민족주의, 미래를 향한 성찰

민족주의는 근대에 갑자기 발명된 인위적인 신화가 아닙니다. 그것은 인류 역사와 함께해 온 오래된 본능적 뿌리가 현대의 인민 주권 개념과 결합하며 변형되고 강화된 것입니다. 가트의 통찰처럼, "상상된(Imagined) 공동체가 반드시 조작된(Invented) 공동체인 것은 아닙니다."

민족주의가 가진 폭발적인 에너지는 그것이 인간 본성의 깊은 곳을 건드리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우리가 민족주의의 깊은 역사적 뿌리를 부정하는 것이 과연 이 강력한 에너지를 통제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까요? 민족이라는 본능적 유대를 배제한 정치가 과연 지속 가능할 수 있을까요? 민족주의의 실체를 직시하는 것은 현대 사회의 갈등을 이해하고 더 나은 공동체를 설계하기 위한 필수적인 성찰의 시작입니다.

Source: Azar Gat, Premodern Nations, National Identities, National Sentiments and National Solidarity, The Roots of Nationalism: National Identity Formation in Early Modern Europe, 1600-1815(2016), ed. by Lotte Jensen